2024. 2. 25. 03;00
번쩍!
번개가 쳤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내가 죽은 걸까?
꿈에서 임사체험(臨死體驗)을 한 모양이라,
잠에서 깨고 혼돈(混沌)의 세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창밖 어둠 속에 눈이 내린다.
땅에 쌓이든 말든 눈송이는 하염없이 나풀거리며 지상으로
떨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한 친구의 돌연사로 며칠간 삶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며칠 전 심근경색으로 친구가 죽었다는 비보를 받고 잠시
멘털(mental)이 붕괴되었다.
그 친구는 작년 11월 양평에서 가을음악회가 끝난 후
가슴통증이 심하고 토할 것 같다며 대형버스에서 내려
내가 탄 승용차에 동승을 했다.
음악회 식사 메뉴로 나온 생선초밥을 먹었다 해서 식중독이
의심되어 강동성심병원 응급실을 향해 달렸다.
지금이나 그때나 응급실은 환자들이 많아 대기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지고,
기다리다 못해 24시간 운영하는 동네병원으로 옮겨 '급체'
라는 진단과 약을 먹고 좋아졌다며 친구들에게 점심을
샀다.
그후 아무 말 없다가 불과 한 달 전부터 몸에 힘이 없어
당구 치는 것도 버겁다 했으며,
2주일 전 당구장에 들린 친구의 안색(顔色)이 파리하고,
어깨가 아파 당구를 못 치겠다며 한쪽 의자에 앉아있다가
귀가를 한 게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막상 친구가 심근경색으로 작고(作故)를 하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얼굴이 파랬으면 분명 심장계통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신문 기사에서 봤는데 그걸 간과(看過)한 거다.
심장마비의 전형적인 전조증상을 요약하면 가슴통증 또는
불편감, 심장박동 불규칙, 갑자기 약해지거나 쓰러짐,
얼굴과 손의 차가움, 호흡곤란과 과다한 땀이 발생한다고
했다.
친구는 그날 가슴의 심한 통증과 구역질, 11월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을 많이 흘렸으니 기사 내용대로
심장병의 전형적인 전조증상이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평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친구라 몸이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를 잘 받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잠시지만 내가 무관심했나 보다.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나는 동네병원보다 대형병원을
선호한다.
동네병원 의사의 안진(眼診)과 촉진(觸診), 문진(問診)은
감기증세 등 비교적 가벼운 병의 치료는 가능하겠지만,
종심이 지난 노년의 심장병, 암과 뇌질환 등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대형종합병원을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친구도 물론 병원에 다녔지만 동네병원에서 시간을 허비
하였고, 내가 대형병원을 이용하라고 더 강력하게 추천을
하지 못한 게 자못 아쉽다.
아무리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해도 종심의 나이가 된
우리는 분명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에 불과하다.
조금만 더 주변에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이런 참담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자괴감을 느낀다.
삼성병원행 16번 버스 안에서
살다 보면 후회할 일도 반성할 일도 끊임없이 생기고,
반복해서 후회하고 반성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스스로 위로를 한다.
친구 영정 앞에서 두 번의 작별 인사를 하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어 반성을 하고 또 반성을 하는 나,
새벽 슬픈 시간에 잠에서 깨어 눈 내리는 창밖을 응시하며
회한(悔恨)에 젖는다.
2024. 2. 25. 새벽 3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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