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792 누군가의 일상(日常)

김흥만 2024. 3. 9. 20:29

2024.  3.  9.  05;00

지금 기온 영하 4도,

새벽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어도 우수, 경칩(驚蟄)이 지나자

공기는 사뭇 부드러워졌다.

 

산기슭 개골창에서 개구리가 운다.

다시 찾아온 꽃샘추위에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동사

(凍死)를 면할 수 있으려나.

 

황산숲길에 지난가을 밤과 도토리를 줍지 말라는 경고 현수막

앞에서도 버젓이 줍는 노인들로 인해 먹을 게 없어 청설모가

일제히 사라졌고, 아홉 마리의 너구리 가족도 본지 오래다.

 

이 녀석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망월천 천변을 따라 이성산 산자락으로 올라갔으면 다행인데

먹을 게 없어 집단폐사가 되었을까 걱정이 된다.

 

산모퉁이의 미선(美扇)나무는 꽃이 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겨울잠을 자는 중이다.

 

유난히 춥지 않은 겨울을 보냈으니 미선나무에게 냉각량

(冷却量)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따뜻한 날씨가 이대로 계속되면 가온량(加溫量)이 넘칠 텐데,

제대로 꽃이 필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 마음을 미선나무가

알아줄까.

 

겨울이 많이 추워야 가냉량(加冷量)이 충분하고, 가온량 또한

충분히 쌓아야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며

오지랖을 떠는 내 모습이 궁상맞다.

                        <  2023.  3.  21일 촬영한 미선나무  >

 

05;20

며칠 전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확대되었고 상태가 위중해져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던 친구가 밥을 먹게 되었으며 체중이

3.5kg이나 늘었다는 좋은 소식을 보냈다.

 

수년째 암투병 중인 또 다른 친구가 3kg 정도 체중이 늘었고,

주름이 사라진 친구의 얼굴을 보며 이젠 안심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모순된 세상사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이럴 때 아이러니(irony)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나는 식사를 잘해 똥배가 나오고 체중이 늘어 걱정을 하는데

내 담당 주치의는 체중이 주는 것을 경계한다.

 

또한 췌장암 등 암투병 중인 친구들은 체중이 늘지 않아

면역력 약화로 항암치료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을 한다.

 

마시고, 싸고, 놀고, 자고, 밥을 먹고, 살이 찐다는 거는 보통

사람들에겐 평범한 일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삶(生)과 죽음(死)의 갈림길에 사는 경계인에게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특별한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

 

05;30

바람이 분다.

매서운 삭풍(朔風)은 아니라도 지퍼를 올리고 옷깃을 여며

체온을 유지한다.

 

뜰안의 산수유와 매화나무의 꽃망울이 금세 터질듯 잔뜩

부풀었다.

2~3일 후에는 만개를 하려나.

 

봄은 어느새 내 턱밑까지 가까이 왔다보다.

'개불알꽃'과 '봄맞이꽃'이 어느 곳에 피었나 태양이 중천에

솟아오르면 카메라를 들고 찾아 나서야겠다.

 

                         2024.  3.  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