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4. 08;00
눈과 비가 자주 와서인가,
길가 풀숲이 점점 파래진다.
쑥과 쇠비름, 월동초로 불리는 황새냉이가 제법 자랐고
소루쟁이도 웃자랐다.
담벼락 사이 작은 물 웅덩이를 향해 긴긴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 한 마리가 비몽사몽간에 폴짝 뛰어간다.
삼월이 되자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의 문이 열렸다.
봄냄새를 맡은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땅밖으로 튀어
나와 부산을 떤다.
기어 다니는 파충류(爬蟲類)인 뱀, 물과 뭍을 번갈아 가며
사는 양서류(兩棲類)인 개구리와 나비(蝶), 벌(蜂), 달팽이,
개미, 파리, 모기 등도 일제히 나왔겠다.
벌레도 사람만큼이나 따사한 햇살이 반갑겠지.
수양버드나무 위에서 직박구리, 개개비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울어댄다.
봄은 혹한(酷寒)의 겨울에서 '졸업'한 모든 생명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계절이라 이제부터는 수많은 동식물이 축복받은
생명을 노래하리라.
어느새 3월이다.
1월은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사라졌다.
2월은 내가 무엇을 했을까.
가장 짧고 희미하고 불투명했던 2월 어느 날,
매주 서너 번씩 당구장에서 만나던 친구가 불귀(不歸)의 객이
되는 바람에 허둥지둥 대던 2월 또한 순식간에 지나갔다.
언제부터인가,
수년 전부터 세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의 수는 늘지 않고 점점 줄어들지만
그래도 남는 사람은 남는 게 인생이 아닌가.
11;30
15분 정도의 청력검사를 마치고 주치의 앞에 앉는다.
늘 다니는 병원이라도 의사 앞에만 앉으면 '흰가운 증후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말이 나올까 살짝 긴장한다.
청력검사결과 왼쪽귀는 7db, 난청이 왔던 오른쪽 귀는
25db로 수치는 정상 기준치에 해당하며,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발의 위험성이 없고,
달팽이관에 약간의 흠집이 남았을 수 있다며 자상하게
설명을 한다.
주치의는 돌발성 난청이 꽤 까다로운 병이고 이 정도까지
치료 효과를 본 사례가 매우 드물다며 난청에서 '졸업'했으니
축하를 한다는 거다.
이 나이에 의사한테 축하를 받았고 '기넥신' 처방이 나오지
않아 복용할 약이 줄었다.
난청(hearing loss)이라는 병고(病苦)에서 졸업한 날,
하늘을 날 것만 같이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2024. 3. 1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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