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63 어둠 속에서

김흥만 2025. 1. 11. 11:54

2025.  1.  11.  04;00

수 십 년 된 습관은 어쩔 수 없는지

새벽 4시가 되자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오줌으로 가득 찬 방광을 시원하게 비우고

서재에 들어와 현재 온도를 확인하니 영하

12도로 강추위가 이어진다.

 

어제 이 시간에는 영하 18도였고 오늘은

영하 12도,

 

6도가 올랐어도 새벽운동 나의 기준치인

영하 5도와 차이가 많이 나 밖으로 나가지

않고 Tv를 켠다.

 

이 시간 Tv 영화채널에선 대부분 19금(禁)

저급 영화를 상영한다.

오늘은 필리핀 B급 에로 영화로 여배우의

벗은 몸을 보는 것도 진부(陳腐)해 Tv를

끈다.

 

가로등 꺼진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주차장 쪽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주차장 벽과 캐노피 사이 공간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작은 생명들이 애처롭다.

 

낮의 세상은 환하고 온갖 색으로 알록달록

했는데 밤엔 검은색 일색이다.

 

구름사이로 상현달이 삐져나오고,

상현달을 닮으려는 듯 아기 주먹만 한

샛별이 열심히 달을 쫓는다.

 

달빛이 나오자 하늘은 녹색을 띤 짙은

파랑으로 변했다.

 

가로수와 정원수, 주차장 캐노피

(canopy)제각기 다른 색으로 변하고,

까치밥이 매달린 감나무는 거대한 거인이

되었다.

 

겨울밤 구름 장막이 살짝 걷히고,

하늘은 달과 큼지막한 샛별을 통해 얼음

같은 한기(寒氣)를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

 

Tv와 전등을 끄자 내 서재는 어둠 속 침정

(沈靜)의 세계로 변했고 안마기에 올라타

눈을 감는다.

 

사위(四圍)는 조용하다.

안마기 진동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고,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엄니가 칼국수 먹을래라고 말씀을 하신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나는 10대 중학생이 되어 엄니랑 아버지가

계신 과수원길을 걸었다.

 

그 길은 엄니, 아부지랑 함께 바람과

구름이 흐르던 세월의 길이었다.

 

먼 훗날 엄니, 아부지를 차디찬 과수원

땅바닥 한 자락에 묻던 날,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울음 삼키며 뒤돌아보던

그날 그 길은 슬픔의 길이었다.

 

꿈속에서 만난 송두리 박말 고갯길은

꾸불꾸불 이어지다 서서히 가늘어지고,

엄니, 아부지 없는 텅 빈 과수원은

쓸쓸하기만 했다.

 

누구나 벗어날 수 없는 인생살이 길,

흐르고 흘러 사라진 세월의 길을 걷다가

잠에서 깨어나 눈물 흐른 눈가를 닦고

정적명상에 잠긴다.

 

나는 지금 내 인생길에서 얼마쯤 오고,

얼마나 남았을까,

명상 속에 깨달음과 정답을 구하는

어리석은 중생(衆生)이 되었다.

 

05;00

난 이렇게 깜깜한 밤이 좋다.

 

어두운 밤이 되면 산호 선생은 나를 만화

주인공인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라이파이가 되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

공공의 적인 국회의원들에게 처절하게

응징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엄니, 아부지를

만나서 더 좋다.

 

                    2025.  1.  1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