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65 4분 만에 반전된 췌장암 스토리

김흥만 2025. 1. 18. 21:26

2025.  1.  17. 

Epilogue)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듯이

때로는 말 한마디, 글자 한 자가 사람의

목숨줄을 쥐고 흔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권위가 있는 사람이 한 말이나 문서에

내용에 의해 피해자는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 췌장암 반전 스토리 >

작년 10월 14일 복부 CT 검사에 이어,

10월 21일 4차 위 내시경 검사가 이어졌다.

 

다행히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지만 췌장에 15mm 정도 신생성물이

발견되었다며 MRI 검사를 권유한다.

 

어이쿠!

이번엔 췌장암인가?

그것도 한국인이 많이 걸리는 10대 암

중에서 가장 독하다는 췌장암이라니,

 

통증은커녕 전조증세도 없었고 체중은

오히려 늘었으니 긴장되지도 않고 그냥

무덤덤하다.

 

2005년 철산지점장으로 있을 때 뇌종양

선고와 함께 수술을 하지 않으면 3개월

이내 전신마비가 오고 6개월 이내 사망

이며,

 

수술도중 사망률이 70%라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남의 일처럼 동요를 하지

않았었고,

 

2년 전 2022년 위암 선고를 받고

'위점막하 박리술'로 암세포를 도려낸

학습효과 덕분인지 이번에도 마음에 동요

없이 담담했다.

 

12월 5일 8시간 금식 후 췌장 부분 MRI

촬영이 진행되었고,

12월 12일 주치의는 3개월 후 채혈, 이후

매년 MRI 추적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말한다.

 

약 15cm 되는 췌장에 15mm 물혹이

가운데 자리를 잡았으며 위치와 생긴

모양으로 봐서 암(癌)은 아니라는 거다.

 

이렇게 나는 위기를 벗어났지만, 막상

아내는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내에게는 12월 13일 CT검사에서 췌장

머리 부분에 15mm 크기의 못생기고

악성으로 보이는 신생성물이 발견되었고,

암(癌) 여부가 애매하다며 주치의는 MRI

검사를 권유한다.

 

문제는 12월 20일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CT검사 세부내역서와 진단서 등을 검토

하던 삼성생명 여직원이 '암 진단비'를

청구하는 거냐고 물었다.

 

암이라니?

그것도 다른 암 대비 상대 생존율이

16.5%에 불과하고 5년 생존율이 5%

이하로 침묵의 암으로 불리는 췌장암

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주치의는 분명히 애매하다 했다.

그런데 주치의가 아닌 보험회사 직원으로

부터 진단서에 췌장암 코드번호가 기록

되었다는 의외의 말을 듣고 패닉(panic)에

빠진 거다.

 

참으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나 자신이 뇌종양과 위암진단을 받았을

때는 담담했었는데 막상 아내가 췌장암

이라는 말을 들으니 난감하다. 

 

그날 이후 아내는 초조불안과 함께 없었던

췌장암 전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등뒤와 옆구리, 아랫배 통증과 설사 등이

반복되고 체중도 서서히 빠지며 생활에

의욕이 없고 힘들어한다.

 

나 역시도 불안해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고,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찌푸려가며 췌장암에

관해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한다.

 

그동안 꾸준한 운동과 사진작가 활동으로

혈압과 당뇨도 정상이고, 음주흡연을 하지

않았으며 체중이 줄지 않았고, 가족력도

없고 전조증상이 없었으니 도대체 의심

되는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자료에는 신생성물이 췌장의 머리 부분에

보이면 남자일 경우에는 거의 췌장암이고,

여성일 경우 2~3% 정도만 암이라는 항목을

보며 일단 안심을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니

불안하기만 하다.

 

백혈병 전문교수이자 강동 경희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과장으로 근무하는 지인에게

자문을 구한다.

 

그 교수는 아직 '산정특례 신청서'를 작성

하지 않았으니 안심해도 좋다고 위로를

해준다.

 

스케줄대로 2025년 1월 10일 MRI 검사가

진행되었고, 1월 17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점점 불안해진다.

 

1월 14일 진료차 들린 안과 담당 주치의에게

상의를 하니 아내의 차트를 열어보고 검사

결과가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1월 17일 10;30

MRI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병원에 가기 전 긴장하고 불안할 때 조금

도움이 되는 '우황청심원' 1병을 사서

아내에게 마시게 한다.

 

11;00

담당교수 진료실 앞에서 호명하기만을

기다리며 연신 시계를 바라본다.

 

앞에서 진료를 마친 사람들이 검사와

수술날짜를 잡는 모습을 보니 더 긴장

되고 초조해진다.

 

만약에 췌장암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병원으로 옮겨서 재진단을 받아야

할까.

 

요즘 의료대란이 지속되고 있는데 제대로

진단과 수술을 받을 수는 있을까.

목표를 정하지 못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방황을 한다.

 

12;00

순서가 되자 심호흡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주치의는 컴퓨터 차트에 집중을 하고

나와 아내는 교수의 입을 주목한다.

 

1, 2, 3분 이렇게 침묵의 시간은 지나가고

점점 불안해지는데, 

4분 만에 '괜찮습니다'라고 주치의가 말을

하는 순간 아내는 다리가 풀려 의자에 주저

앉고 울음을 참지 못한다.

 

주치의는 좋은 결과가 나왔는데 웬 울음

이냐고 오히려 반문을 한다.

 

자기는 암(癌)으로 판정을 내리지 않았고,

애매하다고만 했는데 어떻게 암으로 생각

했느냐며 되묻는 거다.

 

삼성생명에 제출한 서류에 암코드 번호가 

부여되어 있었고 보험회사 직원이 말해

췌장암으로 알았다고 말하니

 

자기가 세부내역서와 진단서에 암으로

의심된다는 뜻으로 '의'자 한 글자를 쓴 게

발단이 된 모양이라며 "정말 미안하다"

라고 시원하게 사과를 하는 거다. 

 

뜻밖에 권위의 상징인 교수이자 주치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28일간의 마음

고생이 사라지고 그에 대한 신뢰감으로

가슴이 울컥해진다.

 

이렇게 진퇴양난에 빠졌던 28일의 고통은

4분 만에 극적으로 반전이 되었다.

 

강동 성심병원은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아산병원, 순천향병원, 경희대병원에서

찾지 못했던 나의 뇌종양을 발견해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었고,

 

아내에게 권위를 버리고 쿨하게 사과를

하는 주치의에게 무한한 신뢰와 감사를

보낸다.

 

'위'라는 글자 하나로 소동이 벌어진 췌장암

사건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나고 오랜만에

평화를 찾았다.

 

12;30

차창밖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천천히, 누군가는 빠르게 걷는다.

 

지나고 보면 마음의 고통도 다 추억이 된다.

이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머뭇거릴

시간도 별로 없으니 온전한 마음으로 평화를

누려야겠다.

 

남은 시간은 화살처럼 앞으로 달려 나가고,

지금 차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그렇게

사라져 갈 것이다.

 

                     2025.  1.  17.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