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66 나에게 도장(圖章)이란~

김흥만 2025. 1. 21. 17:58

2025.  1.  21.

며칠 전 고교 동창 단톡방에 '회양목'으로

'도장'을 많이 새겼다는 내용이 올라와,

머릿속 한 귀퉁이에 저장되었던 도장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도장(圖章)이라,

문득 은행에 근무할 때 늘 지니고 있었던

내 상아(象牙) 도장을 어디다 두었지?

 

나에게 도장이란 어떤 존재였던가.

은퇴 후 십수 년간 잊고 있었던 업무용

도장을 찾아 이 서랍 저 서랍을 뒤지는

작은 소동을 벌인다.

 

은행원에게 도장은 자기 자신의 분신으로

수행한 업무의 책임 행위이자 무기였다.

 

청구서 등 지출전표에 결재를 해야 돈이

지급되었고, 대출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돈이 나갔다.

 

군대에서 전투병이나 행정병을 구분하지

않고 개인화기를 제2의 생명으로 간주

하듯이 은행원에게 도장이란 제2의 생명

이나 다름없었다.

 

아득한 옛날을 떠올린다.

1964년 2월 진천 상산국민학교 52회

졸업 선물로 내 생애 최초 나무도장을

선물로 받았다.

 

그때 받은 막도장이 회양목으로 판 걸까,

나무 재질은 잘 모르겠지만 글자체는

'고딕체'로 주판과 함께 군대생활도

같이 했다.

 

1967년 진천중학교 졸업 때도 선물로

나무도장을 받았는데 그때 받은 도장의

글자체가 '명조체'라 딱 마음에 들었다.

 

1973년 받은 육군 입영 통지서에 도장을

지참해서 입영하라는 내용이 있어서 초등

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나무도장을 가지고

입대를 했다.

 

1973년 11월 증평 훈련소를 거쳐 제21사단

66연대 S~4(군수과)에 배속이 되었고, 그

막도장은 인사과 경리계에서 일괄 보관하여

봉급수령표에 날인용으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 보급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군대

행정은 미군 행정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도장 쓸 일은 별로 없었고,

 

보급품의 불출증, 반납증, 재산대장, 소모품

대장, 할당표, 수령증엔 서명 즉 대부분 사인

(sign)을 썼다.

 

1976년 제대 후 주택은행에 입사를 했고,

중곡동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부임했다. 

 

서무주임이자 고등학교 선배 형님이

은행원은 도장이 제2의 생명이라며 전표나

각종 서류에 쓸 도장을 빨리 새기라고 한다.

 

도장을 새기려면 도장포에 갈 필요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순회하는 도장 행상이 있었고,

상아도장 가격이 부담스러워 조금 저렴한

물소뿔 '경아'로 도장을 주문하였다.

 

글자체는 중학교 졸업선물로 받았던

나무도장의 명조체가 생각나 '명조체'로

주문하였으며 명조체는 은행에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 부동의 내 도장 글씨체

였다.

 

길이가 12cm였던 경아 도장이 닳을

때마다 여러 번 개각(改刻)을 해서 쓰다

보니 9cm로 줄었고 도장의 중간까지

인주물이 스며들어 붉어졌다.

 

어느 지점이던 온라인 창구 책임자로

사무분담 명령이 나면 청구서 등 매일

발생하는 전표가 약 1~2천 매가 넘어

수천번을 찍어야 한다.

 

은행 선후배 동료들은 경아대추나무

도장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며,

오래 쓸 수 있는 상아도장으로 새기기를

권유했는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벽조목)

두 번째 도장을 장만했다.

 

벽조목이 생각보다 가볍고 단단해서

테두리가 쉽게 닳지 않기에 도장장이에게

물어보니 쇠(鐵)로 만든 도장보다 대추

나무 도장이 단단하다고 한다.

 

보통의 대추나무는 물에 뜨지만 벼락 맞은

대추나무(벽조목)는 물에 가라앉으며,

단단하기가 돌보다 더해 도끼나 톱으로도

쉽게 쪼개거나 자를 수 없어 악귀(惡鬼)를

물리치는 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사람이 이어서 말하기를

경아도장은 약 5만 번~8만 번,

상아도장은 약 8만~10만 번,

대추나무는 약 3만~5만 번,

 

쇠도장은 약 1만~2만 번을 찍을 수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윗숫자보다 서너 배

사용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상아도장은 1983년 대리로 승진했을 때

새겼는데 너무 힘 있게 빵빵 때리다 보니

테두리가 깨졌고,

 

여러 번 개각을 해서 사용했던 그 상아

도장도 행원시절 기술 감정용으로 쓰던

'스케일'로 재보니 약 3cm가 줄어 9cm에

불과하다.

 

1990년 하남지점 차장으로 부임하면서

상아도장을 또 한 개 장만을 했다.

지점장으로 은퇴할 때까지 17년을 사용

했는데 그 도장도 약 1cm가 줄었다.

 

도장의 연륜을 계산해 보니

제일 좌측 경아도장이 약 49년 정도,

가운데 상아도장이 약 42년 정도,

우측 상아도장이 35년 정도 된 모양이다.

 

훗날 지점장 5년 차가 지나면서

사무분담명령부에 서명란이 생겼고,

결재란에 등록된 sign으로 결재를 하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도장을 덜 사용했다.

 

어쩌면 나에게 도장이란 은행원 인생의

거의 전부였다.

 

인감도장은 읍면동 등 행정관서의

인감부에 등록이 되는 순간 효력이 발생

하고,

군인의 개인화기는 병기대장에 총번이

등록이 되면서 개인지급이 완료되며,

 

은행원의 업무용 도장은 사무분담

명령부에 날인하고 지점장이 결재를

하는 순간 효력을 발생했다.

 

이렇듯 '회양목 도장'  다섯 글자 덕분에

뇌리(腦裏) 속에서 50~60년 세월 쌓인

기억을 꺼내 지나간 삶의 추억을 반추

(反芻)한다.

 

                     2025.  1.  2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