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68 낯선 얼굴

김흥만 2025. 2. 1. 16:07

2025.  2.  1.  06;00

매월 1일이 되면 샤워하기 전 면도기날과

칫솔을 바꾸느라 조금 부산스럽다.

 

손바닥에 비누거품을 만들어 턱에 바르고

칼면도를 하기 위해 얼굴을 거울 가까이에

댄다.

 

누구 얼굴이지?

오동통하게 살찌고 낯선 얼굴이 거울에

꽉 찬다.

 

추운 날씨와 눈 쌓인 길에서 낙상(落傷)을

피하고자 운동을 게을리했더니 체중계에

올라서기가 겁날 정도로 체중이 불었다.

 

평소 79~80kg을 오르내리다가 84kg까지

늘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늘까.

 

술도 마시지 않고 먹는 음식과 주전부리를

많이 줄였는데도 저울 눈금은 나를 매일

실망시킨다.

 

동네 병원장은 볼 때마다 체중을 줄여야

한다며 잔소리를 해대고,

성심병원 주치의는 술을 마시지 말고

체중이 줄면 빨리 찾아오라고 주의를

주는데 어느 의사의 말이 맞을까.

 

그러고 보니 술을 제대로 마셔본 게

2년이 넘었다.

 

어제는 친구들이랑 점심 식사를 하며

소주잔에 막걸리를 따라 딱 두 잔을

마셨는데 금세 얼굴이 불콰해진다.

 

술 생각도 별로 나지 않고 혹여(或如)

라도 술맛을 잃을까 소주잔에 부어진

막걸리를 혓바닥으로 음미하며

산정 특례기간이 끝나는 3년 후에 내 술

취향은 어떻게 변할까 상상을 해봤다.

 

술도 나이를 먹어가며 취향이 달라진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사복으로 갈아입고

금호동 금남시장 주점의 목로에서 오징어

볶음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다.

 

고향에서는 덕산 막걸리를

군대에서는 강원도산 경월소주를 마셨고,

 

30대에는 드라이진에다 토닉워터를 탄

'진토닉'이 좋아서 사무실옆 백록 카페에

'진'을 키핑(keeping)할 정도로 즐겼으며

소주 중에서는 '참나무통 맑은 소주'가

그렇게 좋았다.

 

그 후 '청하'를 즐기다가 '산사춘'과 '화랑'

에 이어서 소주와 맥주를 1대 3으로 탄

'소맥'을 즐겼고, 은퇴 후엔 주종(酒種)이

'장수 막걸리'로 바뀌었다.

 

08;00

청소를 마치고 매립용 쓰레기와 버릴

음식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온다.

 

눈 쌓인 주목나무와 편백나무 가지에서

주둥이를 박고 열매를 따먹던 까치들이

갑자기 짹짹거리며 시끄럽게 떠든다.

 

저 까치들이 나를 알 텐데,

살이 쪄 큰 바위얼굴이 되었으니

오늘은 몰라보는 모양이다.

 

학자들 말을 빌리면 까치는 워낙 영리해

동네사람들 얼굴을 다 기억하며,

까치가 아침에 울면 손님이 온다고 했다.

 

이놈들이 사람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는데

내 살찐 얼굴을 보고 평소 못 보던 낯선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경계하는 목소리를

내는가 보다.

 

백수의 연휴 9일 중 이틀이나 남았다.

아침 식사 전이니 서둘러 스쿼트(squat)로

스트레칭과 절운동이나 해야겠다.

 

               2025.  2.  1.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