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3.
남쪽부터 시작해 오늘 내일 큰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순천만~향일암~소록도~선암사~조계산~송광사로 이어지는 '남도여행'을 연기한다.
10여 년 전 정상의 군부대 철조망만 보고 온 용문산 정상이 개방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불현 듯 올라가고 싶다.
용문으로 들어서며, 머리에 흰 눈을 이고 보이는 정상이 장엄하다.
경기도에서 4번 째 높은 산으로 '미지산'이었다는데, '이성계'가 조선왕으로 등극하면서
용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용문산은 풍수학상으로는 봉황을 닮았다고 한다.
정상이 봉황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고, 왼쪽 부리 부분으로는 장군봉, 함왕봉,
부리 끝이 백운봉이고, 오른쪽 몸통이 폭산, 꼬리는 봉미산이라 한다.
왼쪽 날개가 용문봉, 중원산, 싸리봉, 도일봉이고, 오른쪽 날개가 유명산, 어비산, 소구니산,
대부산, 중미산이라고 하는데,
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용 룡(龍)자를 쓰는 용문산(龍門山)인데 봉황의 산이라니?
풍수장이들 말도 믿을 수 없으니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용문사~상원사 절고개 3거리~능선~정상~마당바위~용문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산행을
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산행을 시작한다.
현재 주차장 고도 120m이니 정상인 1,157 m까지 1,000m이상 고도를 높여야 하는 만만치
않은 산행이다.
10여 년 전에 혼자 천천히 올라 정상 부근까지 갔다가 마당바위로 내려선 추억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 울울창창한 소나무 숲을 지난다.
지구 온난화로 나무의 성장속도가 2~4배 빨라진다는데, 깊은 숲에서 자연의 향기를 맡는다.
이 순간을 바라볼 수 있고,
이 속을 걸을 수 있음은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고 은혜이다.
길가에 <서산대사>의 시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 모든 것은 꿈이다
주인이 손을 보고 꿈을 말하니
손 또한 주인에게 꿈을 말하네.
꿈을 말하는 주인과 길손이여
어느 때 날을 잡아 꿈에서 깨어날고. ]
난 그저 부담이 없는 순수를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은데, 무지한 중생이라 고승의 깊은 마음을
알 길이 없다,
신라 선덕왕 때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또는 이보다 앞선 서기 649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용문사 바로 앞에 천연기념물 제30호인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에 분포해 있으며,
가을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어 가로수 및 정자나무로도 많이 심는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67m, 뿌리부분 둘레 15.2m로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은행나무로서는 최고의 높이와 나이를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제30호이다.
1,100년을 넘게 버틴 이 은행나무는 거칠게 하늘에 치솟으며 강력한 기운으로 이 산을 지배한다.
이름은 분명히 용문산인데 누가 이산을 봉황의 산이라 했을까?
용(龍)의 기상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은 이 엄청난 나무는 분명히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의
밖에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에 가던 도중에
심은 것 이라고도 하고, 또는 신라시대의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이만큼 성장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세종 때 당상관인 정3품의 직첩을 받기도 하였으며,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위윙 하는 소리를 내 '천왕목'이라고도 한다.
물론 정2품을 받은 속리산 '정2품송'보다는 아래 직급이지만 대단한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전설에 의하면 정미년 일본군이 사찰을 불태울 때 이 나무는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하며,
일본 놈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 자리에서 피가 나오고, 하늘이 흐려지며
천둥소리가 커 중지하였고, 고종 승하 시에는 큰 가지 한 개가 부러졌으며 해방과 6.25전쟁 때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고 한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을 맞고 서거하였을 때도 큰소리가 났었을까?
신라의 망함이 큰 사건이었음은 틀림없는 거 같다.
명성산에도, 포천 국망봉에도, 금강산에도, 소백산 국망봉에도 곳곳에 '마의태자' 전설이
서렸다.
은행나무는 폐의 기능을 원활하게 해주며 간놀, 히스티딘, 단백질, 지방, 당분 등이 있어
기침과 가래를 줄게 해준다.
또한 글로불린, 인, 철분, 비타민 A, B1, B1 등이 있어 영양분도 보충해준다.
전에 은행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든 '징코민'이란 약도 있었는데 지금도 나오려나?
등산로 주변에 귀릉나무, 느티나무, 당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복자기나무, 신나무, 들메나무가
보이고 밤나무도 보이며 회화나무도 보인다.
눈 쌓인 등산로가 처음부터 가파르다.
숨은 차고 목덜미 속으로 눈이 떨어져 들어간다.
바람도 없고 온도가 올라가니 눈길이래도 덥기에 옷을 갈아입고 함께 오른다.
용문산같이 높은 산에 오를 때는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다.
나는 대자연에서 어린이가 되고 눈 위에 눈사진을 찍으니 즐겁기만 하다.
상원사~장군봉~백운봉으로 오르는 절고개 3거리 길이 나온다.
현재고도 340m,
한참 올라온 거 같은데 고도를 200m 밖에 올리지 못했으니 저기 보이는 정상까지 언제
올라가려나.
능선을 넘어서니 산자락 구석구석이 보인다.
원시의 자연미를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는 백수의 삶이 계속 이어질까.
순백의 청순한 눈길을 걸으며 정상의 모습은 어떠할까 설렌다.
힘겹게 오르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과 지나온 시간이 뚜렷이 전해진다.
숲은 하얗게 채색이 되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답다.
고사목에도 상고대는 피고 앞으로 걸어 가야할 길이 분명하게 보이는 산이다.
나뭇가지에 눈꽃은 피었지만 속은 얼어붙은 인고의 시간이리라.
북풍한설이 휘몰아쳐 간 흔적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음은 겨울 산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한 폭의 수묵화처럼 멋진 자태를 말없이 쳐다만 본다.
너무나 곱고 멋지다며 시선을 떼지 않으니 낙엽도 나뭇가지도 외롭지 않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흰 설화로 변신을 하고 산속은 눈꽃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나는 겨울의 눈꽃은 참으로 화사하다.
주능선에 올라서니 수많은 골짜기와 물골, 연봉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눈꽃은 봄꽃보다 더 눈부시고 상고대의 서리꽃이 보석처럼 빛난다.
상고대와 설화가 핀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며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바다 속의 흰 산호천국 같은 눈꽃 터널을 지나니 내가 용왕의 아들이 된 기분이다.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뒤돌아본다.
시야가 트이며 감춰졌던 선명한 정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마음이 급할수록 발걸음은 더디다.
성급하게 다가갈수록 정상은 저만큼 달아나니 정상에 이르는 길은 멀고 힘겹다.
이제부터 암릉과 너덜지대로 매우 가파르고 위험한 길이다.
설악산 '용아능선'이나 '공룡능선'의 축소판 같은 암릉과 암봉을 타고 30여 분 오르니
용문산의 또 다른 풍광을 만끽하게 하는 암봉의 연속이다.
오랜 세월동안 모진 바람과 눈과 비에 견디어 온 눈 덮인 노송들이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송과 바위가 어우러진 암릉길을 계단과 로프를 잡아가며 오른지 한 시간 여,
마당바위 갈림길이구나.
잠시 숨을 몰아 쉬자.
800고지에서 용문봉과 도일봉이 멋지게 조망된다.
멀리 구름 띠 아래 치악산도 아슬아슬하게 보이며 소백산도 보인다는데 방향을 모르겠다.
정상까지 0.5km 남은 안내판이나 이건 잘못된 안내판이다.
거의 1km를 더 가니 비로소 0.3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오니 말이다.
까악! 까악! 하며 까마귀가 울어대니, 문성이 까악! 까악! 하며 대꾸를 하고,
멀리까지 구슬픈 메아리가 울려 퍼진다.
현재 고도 940m,
정상까지 고도를 217m 올리는데 350m의 거리라니 급경사임에 틀림없다.
눈쌓인 너덜지대를 지나며 엷은 구름 띠 위에 태양의 거대한 불꽃이 보인다.
2008년 2월 20일 오전 01:40분 이 근처 950봉 아래에서 뇌출혈증세를 보인 윤모 상병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이송한 헬기가 추락하여, 군의관과 간호장교, 위생병 등
소중한 장병 7명이 순직한 장소 같은데 흔적은 없다.
저 앞의 능선 뒤일까?
지형도로 봐서는 이곳과 '장군봉'사이인 것 같아,
충성! 삼가 명복을 빈다.
어제도 F5 전투기 두 대가 선자령에 떨어져 비행대장인 모 중령 등 3명이 순직하였고,
오늘도 500MD 헬기가 추락하여 두 명이 순직하였다.
국토방위를 위해 훈련 중 순직하여, 조국의 파란 하늘아래 영면에 들어간 장병들에게 깊은
애도 및 유가족에게 위로와 용기를 보낸다.
950봉에 올라서니 눈덮인 백색의 산과 파란하늘이 열리며 순간 현기증이 난다.
저 눈 쌓인 길을 올라야만 정상인데,
산이 늘 그렇듯이 정상을 오르기엔 신중과 인내를 요한다.
눈 덮인 정상이 신비롭고 정상이 가까울수록 가파르다.
정상은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올라야만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가 보다.
힘들지만 높이 오를수록 멋진 풍경이 기다리니 말이다.
휴! 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
숨겨진 비경은 어디에 있을까?
전부가 다 비경이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니 힘이 들어야 행복함을 누릴 수 있는 모양이다.
세미클라이밍을 하며 암릉 길을 올라 급경사로 된 철 계단을 올라서니 더 이상 올라설 데가 없다.
정상이다!
탁월한 높이로 주변의 산들을 단숨에 제압하니 용문산은 이 지역에서 당연한 제왕 아니 황제이다.
통제했던 정상은 목재 데크로 말끔하게 전망대 시설이 되어있고 망원경도 있다.
구름이 능선을 넘어가며 하늘이 열린다.
산 넘어 산, 저 산 넘어 또 산이다.
겹겹이 쌓이는 하늘 금 위로 태양이 눈부시고
구비 구비 장엄하게 늘어진 설산(雪山)의 산군을 보며 잠시 마음을 빼앗긴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맑은 공기와 산군(山群)넘어 구름바다의 매력에 푹 빠진다.
거대한 산들은 아니지만 저 앞에 보이는 능선이 참 아름답다.
하늘은 망망대해라 저 쪽의 산들은 섬처럼 점점이 늘어 서있다.
발아래 펼쳐진 멋진 풍경이다.
저곳에 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을까, 끝없이 가고 싶다.
용문봉, 폭산, 봉미산, 중원산, 도일봉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거대한 산군의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통신 안테나 사이로 소구니산, 유명산, 중미산, 대부산, 어비산이 조망되고,
언젠가는 꼭 오르고 싶었던 그 곳,
그 곳이 바로 여기 용문산 정상이다.
가슴 속으로 바람이 파고든다.
산의 숨결을 느끼니 고행도 할만하다.
경이로운 대자연은 그 앞에 서는 인간들을 겸손하게 한다.
아래쪽으로 용문사 주차장과 신점리 일원이 보이며, 올라온 길이 내가 살아온 인생의
역정같이 내려다보인다.
누가 봐도 아름답고, 누가 봐도 순수하게 살았을까?
북풍에 체온이 떨어지니 정상에 오래 있을 수가 없다.
장군봉으로 돌아서 상원사로 내려가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미 오후 2시.
마당바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정강이까지 빠지는 눈길을 로프를 잡으며 간신히 하산한다.
경사 45도 이상 되는 급경사이다.
귀찮아 스패츠를 차지 않았더니 등산화 속으로 눈이 들어온다.
계곡이 협곡처럼 좁고 눈이 많아 하산 길도 만만치 않다.
급경사로에서 드디어 미끄러진다.
다행히 밧줄을 매어놓은 기둥에 배낭이 걸리며 몸이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다.
이래서 산행 시에는 반드시 배낭을 메어야 한다.
오름길보다 하산길이 더 어렵고 힘든데, 조심하며 내려와도 눈 쌓인 급경사에선 속수무책이다.
은빛의 향연에 눈이 많이 아프다.
흰 눈에 햇빛이 반사되며 눈이 부셔 선글라스로 바꿔 쓰니 눈이 한결 편해진다.
이 사람 저 사람 올라온다.
개중엔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도 있어 아이젠 있느냐고 물으니 없다고 한다.
지난 2월 15일에도 이쪽 등산로에서 24살 대학생 한 명이 얼어 죽었다고 하는데,
가급적 하산하라고 권유하지만 젊음을 믿고 힘차게 올라간다.
아무쪼록 무탈해야겠지.
팽이처럼 우뚝 선 마당바위이다.
이 산의 명물이며 바위 위는 칼로 자른 듯 반반하지만 무릎이 아파 올라설 수가 없다.
하산 길 세 시간 만에 조그마한 폭포를 만나 사진을 찍으니, 문성이 흥만 폭포로 이름을
짓자고 한다.
드디어 용문산에 <김흥만 폭포>가 생겼다.
사람은 산을 업고, 산은 사람을 업으니 몸과 마음이 산에 동화되어 산의 일부분이 된다.
눈 녹은 물은 때로는 폭포가 되고, 때로는 계곡물이 되는데, 계곡을 건너니 계곡물은
연신 발목으로 감돈다.
주능선은 눈 덮인 한겨울인데, 이곳 계곡엔 어느새 봄이 가까이 왔기에 계곡의 물소리가
콸콸거리며 굉음을 낸다.
주차장 입구 송림식당에 들어서니 오후 4시.
7시간 가까이 걸린 원점회귀 산행에 온 몸은 다 젖었고 팬티까지 젖어 티셔츠만 갈아입는다.
용문산 정상까지는 왕복 10여km 정도 되는 짧은 산행거리지만, 주차장의 고도 120m에서
1,157m까지 고도를 1,000m 이상 올려야 하고, 눈 덮인 등하산로의 계단, 암벽, 암릉 길,
너덜 길은 험하고 멀다.
6.25전쟁 당시 용문산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1년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전투에서 아군 6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을 이곳에서
궤멸시키자 한국군에 대한 유엔군의 불신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어느 노병사는
"같은 호 속에 전우의 시체가 있었고, 썩는 그 옆에서 대소변을 배출하고, 선채로 자고 먹으며
참으로 독하게 싸웠다."라고 하는 증언을 어느 책에선가 본적이 있다.
춘계 2차공세 때 사창리에서 방어전을 전개했으나, 중공군에게 전선을 돌파당해 미8군 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에게 "당신 전투할 줄 압니까?"라는 치욕적인 말까지 들었다는데 6사단 2연대는
10여 차례에 이르는 항공지원과 포병 화력지원을 받아 이틀간 방어거점을 유지했고, 다시 6사단
2개 연대가 역습을 개시해 중공군 63군 예하 부대의 절반을 격멸하는 전과를 이곳에서 거두고,
화천까지 60km를 진격하며 전과확대에 성공해 중공오랑캐를 섬멸했다는 의미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 "파로호(破虜湖)"란 글을 하사하였다 한다.
2010. 3. 3. 춘설이 내린 용문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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