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26.
우리나라의 오천 년 역사 중 인조 임금이 항전하다 청나라에 항복하여 세 번 절하고,
9번이나 맨땅에 조아리는 치욕을 겪었던 남한산성을 오른다.
평일이라 지하철 마지막 칸에는 나 혼자 만이 있고 텅 빈 객실은 썰렁하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다 급경사를 피해 성불사 옆의 완만한 등산로를 택한다.
나무에 연둣빛이 살짝 비치는데 얼굴과 손은 시리고,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어깨가 움츠려든다.
성불사 옆 자락을 돌아 나가니 배드민턴장이 나오며, 지나가는 등산객 앞에 담배연기를
내뿜는 사람 때문에 잠시 기분이 상하고,
약수터에선 늙은 할머니가 물을 잔뜩 뜨며 잠시도 틈을 내주지 않는다.
다 시들어가는 늙은 할망구 몸에 어찌 저런 욕심이 많이 서렸을까.
잠시만 비켜주면 약수 한 모금에 갈증을 해소할 텐데,
저 혼자만 욕심내는 탐욕스런 할망구의 얼굴이 상상 속에서 보던 마귀할멈의 형상이다.
이곳 쌍바위 약수터는 석천(石泉) 즉, 석간수이다.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나오며 지나는 이의 목마름을 없애준다.
먼 옛날 고교시절에 난 호를 '石泉'이라고 스스로 지었다.
집 앞의 남산 기슭에 옻샘이라는 유명한 샘이 있었으나, 난 상산초등학교 시절 소풍지였던
봉화산 자락의 '석간수'를 더 좋아했다.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갈증을 풀어주고 싶었나?
그래서'石泉'이라 지었나 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자연인데, 언제나 자유롭게 떠나는 산행이 너무나 좋다.
32년이 넘는 세월을 은행이라는 조직의 굴레에서 다람쥐가 좋아하는 체바뀌 돌아가듯
변함없는 일상에서 행복을 추구하였지.
승진, 돈, 명예도 좋지만 어쩌다 영업실적이 떨어지면 근심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고,
실적이 좋으면 몸과 마음이 가벼워 콧노래도 나온다.
이어지는 술자리, 접대자리, 회식자리에 뱃속은 엉망이 되어가며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았나 보다.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직원들의 마음을 다 보듬어주지 못하고,
승진하여 좋아하는 직원에게 승진에서 누락된 다른 직원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축하도 못해주지 못한다.
지점장으로서 다 승진을 못시켰다는 자책감에 괜히 미안하기도 했다.
나중에 은행장까지 오른 민 본부장이 말한다.
출세의 비결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의전이며,
즉 인사권자의 눈에 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확한 조언을 한다.
그러나 난 주위에 대한 배려와 역지사지(易之思之)라고 생각한다.
입장을 바꿔서 한번쯤은 생각하고, 주변을 배려할 수 있는 여유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젠 자연인이다!" 라고 신나게 외치건만 은퇴한 지 2년이 지나감에도,
이번 승진 인사에 누락된 직원들이 꼭 내 책임인 것 같으니 아직도 은행원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며칠 전 모 지점장이 속상해하는 소리를 들으며 위로한답시고,
"지나면 다 아무 것도 아니고~'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하면서도
내가 과연 그렇게 이야기를 말 할 자격이 있을까?
이젠 정말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KB에 대해선 꿈도 꾸지말자!
언론에 기사가 나와도 눈길을 주지말자 하면서도 KB 주가부터 챙겨보고 강행장이 잘렸나
안 잘렸는지 궁금하니 죽을 때까지 굴레를 벗어나긴 글렀나보다.
모처럼 편한 숲길이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나무들이 나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엄동설한에도 꿋꿋이 지낸 나무들에 어느새 물이 올랐는지 엷은 연두색 빛이 수줍은 듯
비치기 시작한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의 사면에,
생강나무의 노란 꽃망울이 지나가는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난주에는 폭설, 어제도 눈비, 오늘 아침기온은 영하 3도인 겨울날씨인데도
오지 않던 봄이 한꺼번에 왔나보다.
정상을 향해 봄 내음은 서서히 올라간다.
가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왔는데 자연의 신비로움과 생명력에 감탄하며 항상 넉넉한
친구들과 호젓한 산행을 즐긴다.
부드러운 능선이 보인다.
매서운 북풍한설에 독야청정하며 숨죽이고 버티어온 노송이 우뚝 서있다.
산이라는 대자연은 숨 막히는 일상을 딛고 잠시 쉴 수 있는 쉼터이다.
숨을 크게 몰아쉬니 공해에 찌들었던 폐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며 호강한다.
이름 없는 봉우리지만 한눈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에 잠시 넋을 빼앗긴다.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다.
바람도 쉬어 가는지 적막만 흐른다.
자연이 주는 넉넉함에 도심에서 찌들었던 일상은 말끔이 씻기며 묻혀 지나간다.
"삶의 기준이 없었더라면 아무렇게나 살았을 것이다." 라는 법정스님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은퇴 후 직업은 없지만,
좋은 친구들과 산이라는 대자연에서 수시로 호흡을 하니 축복받은 인생이다.
친구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
괜찮은 친구를 다시 사귀려하기 보다는, 친구에게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된다면
그는 더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만남이란 참으로 소중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자기 일생의 삶에 큰 영향을 받을테니까,
17살에 만나 40여년이 넘는 긴긴 세월 속에 변함없이 만남을 이어가니 혼자만이 아닌
서로가 행복할 수 있다.
같은 곳을 향하여 함께 걸어가지만 남이 대신 걸어 주는 건 없다.
철저히 나 혼자만의 걸음이다.
내 귀에 들어오는 건 내 숨소리뿐이다.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며, 참새 과에 속하는 소형 겨울 철새인 콩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카메라를 들이대도 날아가지 않는다.
로프를 잡으며 된비알을 오르니 겹겹이 쌓인 능선이 보인다.
얼마 전 보수를 끝낸 날림공사의 성벽을 눈으로 보며 이제껏 평화스럽던 내 마음이 분노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이런 부실공사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갔으며, 눈감아 준 공무원은 얼마나 뇌물을 챙겼을까.
문득 돈 받아 처먹고 구속된 탐욕으로 얼룩진 얼굴의 공정택 전 교육감과
골프를 잘 치면서도 못 친다고 사기 치며 오만 달러 이상 받아먹어 수사 재판 중인 한명숙
전 총리의 뻔뻔스런 얼굴이 생각난다.
위정자들이 뇌물 받아 먹는 걸 즐기니 이런 공사들이야 말할 것도 없으리라.
법은 엄중, 엄정하게 집행하여야 하며 특히 공무원은 가중 처벌하여 비리를 철저히 없애야
한다.
정상 근처 노송들의 아름다운 자태가 보이기 시작한다.
멀리 남봉이 보이며 왼쪽으로 벌봉과 객산, 검단산 , 앵자봉, 양자산, 무갑산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고스락의 바위가 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벌봉은 청나라 태종이 남한산성에 있는
우리군사들의 상황을 살폈고, 이 벌봉의 정기를 깨뜨리기 위하여 폭파하려 했다는 전설도
있으나, 이 산성에서 흔하지 않은 암봉으로 바위틈에 굴도 있어서 기도처로 이용된다.
몇 년 전 벌봉에 올랐을 때에는 마침 입시철이라 무지몽매한 여인네들의 치성으로 수많은
촛농과 썩은 과일, 썩은 돼지머리 등이 추접하게 널려있어 지나는 사람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였다.
객산은 '옛날 마귀할멈이 한양땅에 남산을 만들려고 이천의 도드람산(猪鳴山 저명산)
일부를 치마폭에 싸서 올리다 힘에 부쳐 떨어뜨린 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나즈막한 산이지만 그 모습이 독특하고 산자락에 옛 백제 건국의 도읍터로 알려진
춘궁동이 있다.
내 생태 사부의 말로는 전형적인 토성이라는데 조만간에 가봐야겠다.
400여 년 전의 병자호란 치욕과 우리 조상들의 꿈과 역정을 그려보니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이
있는 것만 같다.
육중하고 높은 송전선의 철탑이 산줄기를 딛고 줄줄이 서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큰 줄기에 인간의 발전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망가지는 대자연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수백 년을 연연히 이어온 빈틈없이 다져 놓은 본성의 성곽이다.
급경사로 치고 올라온 구간에도 기초가 뒤틀리지 않았고, 급히 굽어진 구간이 가벼워 보이며,
성벽은 산의 높낮이를 따라 출렁거리며 지형을 이끌고 나간다.
평탄한 구간에서는 바깥쪽으로 옹성을 길게 내밀고 밖을 드러내면서 안을 감추었다.
안에서 밖을 향해 쏘는 사각을 넓게하니 총안이 구멍마다 살아 있다.
이 성은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땀과 피를 먹었을까.
청나라 군사들과 일진일퇴하며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피를 흘렸을까.
무능한 임금과 위정자들을 위하여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한 병사들이 굶주림과
추위 속에 무수히 죽어 갔을 것이다.
이 글을 정리하며 쓰는 이 시간에도 침몰한 1,200톤급의 초계함인 천안함의 장병들 46명이
아직도 기상악화 속에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SSU팀이라는데 어떠한 기상이라도 갇혀있는 장병들을 필사적으로
구출하겠지.
문득 중국의 대지진 참사 때 현장에서 여진으로 겁을 먹고 물러나는 병사들에게
"명령이다 물러나지 말고 한 명이라도 더 구하라"라고 호령하던 '원자바오' 총리의 노기
어린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 대통령과 총리는 회의만 주재하고 있으니 대비되는 장면이다.
엷은 안개 속에 서울 시내가 조망되며 치욕의 '삼전도 비'가 있는 삼전동도 보인다.
1.청(淸)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행할 것.
2.조선왕의 장자와 차자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대신들의 아들을 볼모로 청에 보낼 것.
3.청이 명나라를 정벌할 때는 지체 없이 원군을 파견할 것.
4.가도(假島)를 공취할 때 조선은 배 50척을 보낼 것.
5.청 황제나 황후, 태자 생일 등의 경조사에 사신의 파견은 명나라에 하던 구례대로 할 것.
6.압록강을 건넌 후 인질자 중 도망자가 있으면 즉시 되 돌려보낼 것.
7.내외 제신과 혼인을 맺어 화호(和好)를 굳게 할 것.
8.조선은 성(城)과 그 담을 보수하거나 쌓지 말 것.
9.조선은 다음 해인 1639년부터 해마다 조공 물을 보낼 것.
무고한 백성 50만 명이 개 끌려가듯이 잡혀가서 온갖 만행을 당하고,
청나라의 성(性)노리개가 되었다가 돌아온 여인이 화냥년(還鄕女)이라는 어원도 되었다.
전쟁에 패한 우리의 임금이 청나라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을
당하며 위와 같은 항복 조건으로 밭 한가운데 앉아 진퇴를 기다렸다는데,
어느새 세월은 훌쩍 흘러 서울의 비싼 땅이 되었으니 역사는 비싼 교훈을 내려준다.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세종시나 사대 강 가지고 싸움질만 하는 국회의원들, 조례 한 건도
제대로 발의 못하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이나 하려는 지방자치의원들, 돈 먹는 국무총리,
교육감, 공무원들이 줄줄이 있는데도 북한은 틈틈히 이 나라를 노린다.
남한 친북좌파, 시민단체, 종교단체, 노동단체 , 교원단체들은 꼴갑들을 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꼴이 어찌될까, 통한의 세월이 될까 두렵기만 하다.
깊은 상념 속에 전망대에 이르니 잠잠했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온다.
골짜기에서 산등성이로 불어오는 골바람이 가슴을 파고들며 얼굴이 시리다.
보수를 끝낸 서문이 역사의 흔적을 지웠는지 말끔히 단장되었다.
저 절 이름이 무엇이더라? 국청사?
갑자기 생각이 안 난다.
봉은사의 직영 문제를 놓고 싸움질하는 중들 모습을 보며 정이 떨어진 모양이다.
저 절 밑에는 수십 년 된 내복과 외투 한 벌로 정갈하게 신앙생활을 마무리한 고 '한경직
목사님'이 계셨던 곳인데, 세월의 뒤안길은 누구나 예외가 없는가 보다.
잘 어우러진 노송들이 자연의 질서를 유지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수령이 200~300년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안내판을 보니 100년 미만이다.
이곳도 오대산 자락같이 나무들이 잘 자라는 지역일까.
남한산성의 주봉인 '청량산 정상(482.6m)'에 있는 수어사의 지휘본부이며 관측소였던
수어장대에 오른다.
여기에서 일만 이천 명의 장병을 지휘하였고,
처음엔 단층이었으나 영조 27년에 이층으로 증축하였다는 기록이 안내되어 있다.
이곳 '남한산(606m)'은 사방이 평지여서 밤보다 낮이 길다하여 일장산(日長山) 또는 주장산
(晝長山)이라고도 불린다.
웅장하고 호탕한 멋은 없지만 울창한 수림 속에 둘러싸인 구릉지로 평균 표고가 서울보다 300~500m 이상 높아 천연적인 요새지가 되었으며, 온도가 서울보다 4~5도 낮아 여름철 피서지로 적당하다고 한다,
도립공원인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외침을 막기 위해 토성을 쌓았던 것을 광해군이 본격적으로 개축하였다고 전해진다,
키가 4m에 지름이 180cm로 360여 년 되었다는 보호수인 향나무가 있다.
측백나무 과로서 수명이 길어 울릉도에는 천 년이 넘은 향나무도 있다고 하며, 나무를 깎아
향으로 쓰기도 하고, 붉은 색으로 윤기가 나며, 결이 고와 고급가구재로 쓰이며, 가지와 잎은
말려 약재로 쓰기도 한다.
아래 군부대 사격장에서 간간히 소총소리가 들리고,
수어장대 주위와 성곽에 꼽힌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며 옛 군사들의 함성이 들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기념 식수한 전나무 옆의 무망루이다.
무망루(無忘樓)라!
병자호란 때 인조가 호되게 겪은 시련과 9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었다 한다.
나는 전쟁이란 미리미리 대비하여 통한의 한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치욕의 전쟁은 항상 무능하고 사치한 군주와 위정자, 간신배들이 판을 치고 있을 때였다.
해군함정의 침몰과 각종비리로 얼룩지고 싸움질이나 하는 국회 등 나라가 온통 시끄럽고
어수선하다.
정신 바짝 차려 대비할 때다.
발길을 돌리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소나무가 무수한 솔방울을 달고 있다.
죽기 전 자신의 씨를 최대한 퍼뜨리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으니 자연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더한다.
서문을 나와 등산의 맛을 처음 느꼈던 일장천길로 내려선다.
잘 정비된 하산로에 수천수만 명이 하나씩 던져 쌓인 돌무덤이다.
입시철만 되면 여기도 온갖 촛농과 썩은 음식들로 홍역을 치렀는데 오늘은 깨끗하게 정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산에 맛을 들인지 어느새 20여 년이 훌쩍 흘렀고, 몇 년 전 폐암으로 작고한 친구가 생각난다.
아마도 88올림픽 때였지?
이 코스를 오르며,
처음에는 힘들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라 하고,
두 번째는 힘든 산행을 왜 하느냐고 나한테 투정을 부렸고,
세 번째는 자기가 죽으면 책임질거냐고 화를 낸다.
네 번째는 부를 엄두가 안나 그 친구와 동행 산행을 포기했는데, 먼 훗날 폐암으로 투병하면서
"그때 자네 말을 듣고 등산을 하였더라면 폐가 이리 망가지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왜 골프에만
전념했는지 후회가 된다."라고 임종직전 하던 말이 생각난다.
지나온 삶의 무게가 허무한지, 떠나보낸 친구들 생각에 마음이 공허해진다.
인생이란 나이 들면 어차피 외롭고 쓸쓸한 건데 이젠 지난 추억이 속절없는 한잔 술의
안주가 된다.
산다는 건 스스로에게 고마움이다.
인생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니까.
2010. 3. 26. 역사의 뒤안길 남한산성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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