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3. 새벽 5시 반 영하 2도
문을 나서니 제법 쌀쌀하다,
버스에서 오늘 변산의 산행 안내도를 받아보니,
당초의 남여치~쌍선봉~낙조대~ 재백이고개~내소사 코스가
사자동~봉래구곡~직소폭포~재백이고개~내소사 코스로 바뀌었다.
집행부측에선 많은 인원의 통제와 안전, 궁평항 저녁식사 시간 등을 고려하여 짧은
등산로를 택하였다고 한다.
오늘 월명암과 낙조대에 들려 월명무애(月明霧靄) 분위기를 맛봐야 할 텐데
단체행동이니 아쉽다.
전날의 숙취에 뱃속은 불편하고 두통이 심하니 소화제와 두통약인 펜잘 한 알로 해결한다.
대둔산 태고사, 백암산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영지(靈地)라 하는'월명암!!
변산팔경 중 월명무애(月明霧靄)라는 게 있다.
월명암 뒤편 낙조대(落潮臺)에서 조망되는 풍경의 파노라마를 일컫는다.
일출은 동해 낙산이요, 일몰은 서해 월명이라 하였으니 저 멀리 서해의 일몰과 고군산군도,
굽이치는 산물결의 풍치를 오늘은 볼 수 있으려나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아쉽게도 보지 못하니,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행부의 의견을 따른다.
나중에 낙조대는 입산통제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니 서운한 마음이 조금은 없어진다.
난 가끔 장마철에 검단산아래의 팔당대교에서 낙조를 본다.
낙조를 보노라면 늘 가슴이 막막해진다.
붉게 타오르는 빛의 신비에 끌려 들떴다가도 이내 슬픔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어쩌면 나이든 청승일까 싶어 머리 수술 후 요즈음은 일부러 보지 않는데,
월명암 낙조대에서도 그런 느낌이 올까?
천안함 침몰사건이 궁금하여 DMB로 뉴스를 보니 우리의 영웅 <고 한주호 준위>
영결식이 한창이다.
총리, 장관, 참모총장들이 다 모였고, 가족과 참석부대원들의 눈물 속에 엄숙히
진행되고 있다.
연평해전 전사자 때는 장관. 참모총장들이 아무도 안 왔었는데 세상이 바뀐 것을 새삼
실감한다.
33년 군 생활을 하면 위관급 이상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광복장을 추서하려다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는데, 대통령의 적절한 재검토 지시에 의해 <충무무공훈장>이 추서 된다고
한다.
무공훈장은 '태극, 을지, 충무, 화랑, 인헌'으로 5개 등급인데 충무는 3등급에 해당된다.
죽을 줄을 알면서도 목숨 바쳐 작전을 수행하다 순직했는데 보다 높은 태극이나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어도 그의 숭고하고 높은 뜻을 보상하지 못할 텐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잠시 눈을 감고 묵념으로 고 한주호준위의 영면과 명복을 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천안함의 침몰로 지휘부는 우왕좌왕하며 국민의 신뢰는커녕 의혹과 불신만 키우고
있고, 정신 빠진 한나라당 공성진의원은 빈소에서 낄낄대며 기념촬영하다 개망신 당하고,
북한 대변인인지 민주당 국회의원 놈들은 북한의 개입설을 적극 배제하고 북한의 무죄임을
주장한다.
돈 받아 처먹고 감옥살이하다 노무현 정권에서 겨우 사면을 받아 국회의원 짓을 하는
박지원이는 "북한체제가 무너지면 우리도 망한다." 하며 "북풍의혹을 정략적으로 조작한다"
라고 대놓고 말한다.
아직도 좌파 10년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DJ식 햇볕에 연연하는 구태에 머물고
있으니 이런 덜 떨어진 인간들을 위해 우리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하는지 의문이 든다.
조심스러운 건지, 비겁한 건지, 용기가 없는 건지,
대통령과 장관은 "증거가 없다, 조사중이다."라고 원론적인 말만 하고 있으니,
국민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엉망이다.
물론 명백한 증거도 중요하지만 북풍 드라이브에 끌려가기엔 우리 국민들이 너무 성숙해있다.
이럴 때 자신감을 갖고 국민과 전 세계에
"누구든지, 어느 나라든지 명명백백한 증거가 드러나면 충분한 보복을 할 것이다. 우린 충분한
군사적 능력이 있다"라고 당연한 말을 하면 얼마나 국민들의 사기가 올라갈까.
일주일동안 힘든 뉴스에만 귀를 기울여서인지 두통이 심하다.
운전기사의 지리와 운전 실력이 별로인 듯, 네비게이션에 의존해도 되돌아 나오기 서너 번
예정시간보다 늦은 11시 반부터 등산을 시작한다. .
벌써 4월초이니 늦었지만 변산바람꽃을 찍을 수 있을까?
들머리에 복수초 두 그루가 활짝 피었다.
"형칠"이라는 훌륭한 총각이 멧돼지에 물려 피를 흘리며, 목숨이 위태로운데도 사랑하는 영자
낭자가 있는 발치까지 와서 죽고 말았는데 이듬해 그가 흘린 핏자국마다 유난히도 빛이 나는
황금색의 노란 꽃이 피었다는 전설이 있는 꽃이며, 눈 속에서 피는 연꽃이라 하여
설연화(雪蓮花) 또는 얼음새꽃, 눈색이 꽃이라고도 한다.
또한 이 꽃은 강심작용과 진통효과에 뛰어난 효험을 가지고 있다 한다.
어둡고, 춥고, 힘든 겨울의 대지를 뚫고 강인한 생명력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보여주는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福壽草)를 보니,
침몰한 천안함의 장병들이 온갖 생사의 고초를 겪었어도 살아올 것만 같다.
이제 봄이 시작되는가 보다.
정상을 향해 봄 기운은 서서히 올라간다.
나무들이 수줍은 듯 고운 연둣빛이 비치기 시작하며, 산벚나무에도 붉은 꽃망울이 터지려
한다.
합환수인 자귀나무와 산딸나무, 후박나무가 잘 자라있고 국수나무는 지천이다.
정금나무는 꽃필 준비를 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수수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진달래가
활짝 피었다.
봄 산의 매력은 엷은 연둣빛 속에 산의 속살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는데 있다.
산과 들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천천히 많은 것을 보며 호젓한 산행을 한다.
언제나 산에 오를 때 오를 목표가 있듯이,
인생에도 도달할 목표가 있는데 산과 인생은 닮은꼴인가 보다.
마음 편한 친구들과 산에 오르니 행복하기만 하다.
바위와 흙이 적당히 어울리는 산길이 남다른 재미가 있는 산이다.
산처럼 꾸밈이 없고 항상 넉넉해야 하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 서두르는 일 없이 느리게 걷는다.
풍경(風景)이란 바람과 빛인데,
이렇게 천천히 걷지 않았더라면 저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었을까.
산과 산이 만나고, 길은 어느새 하나로 합쳐진다.
산세는 웅장하고 물이 풍부하다.
<부안>하면 떠오르는 이가 있다.
황진이하고 쌍벽을 이루던 기생 '이매창'이다.
부안 삼절로 꼽히던 매창은 부안사람들은 다 알리라.
< 이화우(梨花雨) 흩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져도 날 생각하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
때마침 하얀 배꽃이 필 때인데,
매창이도 저 앞에 보이는 쌍선봉, 관음봉을 올랐겠지.
누구랑 함께였을까,
사랑하는 천민출신 시인 '유희경'이었을까?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었을까, 아님 허균과도 친한 김제 군수 이귀(李貴)였을까?
매창의 가슴에 담은 사랑은 유희경이었고,
육체적인 정인(情人)은 군수 이귀였으며,
문학적 인간적 교류는 허균이하니 희귀한 플라토닉 러브와 우정이구나.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단순호치(丹脣瑚齒)에 섬섬옥수( 纖纖鈺手)를 가진 천하의 미인이었을까,
그녀의 검은 눈 속엔 얼마나 깊은 호수가 있었을까?
당대에 대단한 사람들을 휘어 감았으니,
잠시나마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매창의 체취를 그려보며 터벅터벅 걷는다.
조릿대 군락지를 지난다.
5~6월 여린 순을 달여 먹으면 혈압 당뇨에 좋다고 이야기 해주며 올라가니,
이 깊은 산중에 호수가 나타난다.
지자요수(智者樂水)요,
현자요산(賢者樂山)이라!!
즉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이는 산을 좋아 한다고 했다.
산은 물을 넘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과 물이 이렇게 아름답게 공존할 수가 있을까?
산과 물의 파란색이 닮았다.
선녀탕이다.
포천 명성산의 산정호수 물보다 맑다..
깊은 곳까지 드려다 보이는 맑은 물에 송사리떼들이 몰려다니며 재미난 광경을 보여준다.
작은 물고기와 올챙이들이 몰려다니는 이유는 몸집을 크게 보여 적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다.
경사진 짧은 길을 넘어서니 32m 높이에서 물을 쏟아 붓는 직소폭포가 장관을 연출한다.
유난히 힘이 있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직소폭포의 우렁찬 물소리가 적막을 깨뜨린다.
갈라진 너럭바위 가운데서 떨어지는 폭포는 묘한 성적인 상상을 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나 보고 밝힘증이 크다고 놀린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폭포에 용이 살만한 소가 이루어져 있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물줄기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층암절벽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은 예리한 칼날로 자른 듯한
육중한 암벽단애에 흰 포말을 일으키며 쉴사이 없이 쏟아진다.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은 소를 만들며 떨어지는 대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폭포수는 아래로 흘러 소를 만들고, 내를 만들어 봉래구곡을 지나 부안호를 거쳐 바다로 간다.
폭포 오른쪽 산길을 따라 직소폭포를 넘어서니 길은 넓고 평탄하다.
깨끗한 개울 물길을 따라 올라서니 진달래가 여기저기 피기 시작한다.
등산로에서의 간단한 요기는 등산 중 즐거움의 하나이다.
허기진 뱃속에 친구가 가져온 삶은 계란 한 알이 들어가니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시장기를 느꼈던 뱃속이 평화로워진다.
최상류의 물길을 건너 된비알을 오르니 재백이 고개 삼거리이다.
재백이 고개에 올라오니 불현듯 얼마 전 작고한 '재백'이 친구가 생각난다.
49재가 얼마 안 남았을 텐데,
등산대장은 원암마을 방향으로 가지 말고, 왼쪽 능선 길을 따라 관음봉 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모진 자연의 풍광 속에 인고의 세월을 지내온 산이다.
내 나이 벌써 육십을 바라보니 세월은 물같이 흘렀나 보다.
잠시 배낭을 벗어 내려놓고 큰 숨을 쉰다.
몇몇 친구들의 얼굴색이 안 좋다.
간식과 휴식을 권하고 헉헉대며 올라가다 난 탄성을 지르며 검양옻나무를 발견한다.
옻나무 다섯 종류 중 개옻, 참옻, 붉나무, 덩쿨옻나무 등은 아는데 검양옻나무는
처음이니 말이다.
옻나무의 수피는 뺀질거리며 무늬가 약간 있는데 이 나무는 수피가 거칠다.
기암괴석과 울울창창한 숲이 마치 여러 겹의 산수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
일대 정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장쾌한 능선이 한 폭의 동양화가 되어 파노라마를 이룬다.
다시 산행을 시작 하려니 예쁜 다람쥐가 한참을 쳐다보고 나무로 올라간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너른 부안 앞바다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이래서 산해절승(山海絶勝)이구나.
산은 바다를 품고, 바다는 산을 향해 흐른다.
겉은 야산인데 속은 심산이니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안팎이 이렇게 다를 수가?
높이로는 산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하면서 신비감을 자아내는 묘한 산이다.
이리 휘고 저리 비틀리며 질서 없이 배치된 산봉들이 파격미의 극치를 이뤘다.
산에서 산과 바다를 함께 보고, 바다에서 바다와 산을 함께 볼 수 있으니,
바다와 산이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 산해절승(山海絶勝)이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세가 깊고 험해 체력소모가 많다.
오르막길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능선에 올라서니 겹겹이 쌓인 산, 기암괴석과 암벽이 장관을 이루며,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에 숨이 막힌다.
급경사로 점점 험해지니 정상이 가까워짐을 말해준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거친 숨을 내쉰다.
아름다운 바위와 봉이 보인다.
보이는 것 같이 쉽게 오를 수 없는 것이 정상이다.
봉우리에 오르니 시야가 트이고, 하늘이 열리며 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파란 하늘은 눈이 부실만큼 시리다.
시원한 바람이 내 속의 혼탁한 기를 깨끗하게 해준다.
관음봉 삼거리이다.
'쇠뿔바위봉'이라 하는 '세봉'까지 왕복 한 시간 정도 더 걸리리라.
조용히 산을 오르내리고 싶다.
지난번 한라산 등반 시부터 정상을 오르려 하는 욕심도 던졌다.
내가 산을 걸어갈 때 산도 나를 걸어 갈수록 있도록 한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걷고 싶다.
예로부터 지리산, 천관산, 내장산, 월출산과 더불어 호남의 5대 명산의 하나인 '변산'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이다.
산 안쪽의 '내변산'과 해안 쪽의 '외변산'으로 구분되는 변산반도는 최고봉인
의상봉(508.6m)을 비롯해 쌍선봉(459.1m), 옥녀봉(433m), 관음봉(424.5m),
선인봉(486m) 등 기암봉들이 솟아있고,
직소폭포, 분옥담, 선녀탕, 가마소, 와룡소등 범상치 않은 기경을 갖추고 있다.
이중 의상봉의 남서쪽 쌍선봉, 낙조대, 관음봉 일대와 봉래구곡과 낙조대에서의
월명낙조는 변산의 경승 중 으뜸으로 꼽히며 내변산에 속한다.
외변산은 변산반도 바깥쪽으로 변산 해수욕장, 채석강, 격포해수욕장, 내소사를 일컫는다.
산해절승인 변산반도에는 옛 부터 삼변이라 하여 세 가지 명물이 전해 내려온다.
곧고 길게 잘 자란 소나무로 선박용과 가구용으로 사용된 변재,
청초한 멋이 있는 일엽일화의 변란,
맛이 좋고 독특한 맛으로 유명한 꿀인 변청이다.
바닷가 절벽지대의 기암봉과 해수욕장으로 이루어진 외변산과는 달리 내변산은 봉우리마다
천태만상의 암봉들이 위압적인 자세로 산객들을 압도한다.
내변산의 최고봉은 의상봉(508.6m)이지만, 그곳은 군사시설물이 있어 통제를 하기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지역의 최대명소인 관음봉(424.5m)도 험하여 고스락을 밟기가 어렵다.
암봉과 호수 못잖게 이곳에는 수많은 명소들이 많은데, 우선 쌍선봉 아래의 월명암과
월명암 뒤편 서해낙조로 유명한 낙조대, 그리고 변산반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인
직소폭포를 들 수가 있다.
지나는 길에 5~6월에 흰 꽃이 피는 때죽나무, 5월에 흰 꽃이 피는 장미나무과의
윤노리나무, 달꿩나무가 보인다.
국립공원인 이 변산은 나무의 천국인가 보다.
참나무와 서어나무가 지천인 다른 산에 비해 식생구조가 다양하다.
광꽝나무 군락지도 있고, 내고향 진천에 있는 천연기념물인 물푸레나무과의 미선나무
군락지도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볼 수 없으니 서운하다.
한 구비 돌아가니 누리장나무가 보여 냄새가 고약해 강원도에선 송장나무라고도 하며,
한여름, 논두렁, 밭두렁에서 잎사귀 몇 장을 깔던지 지니고 있으면 모기가 안대든다라고
설명하니 기석인 냄새를 맡느니 차라리 모기 몇 방 맞는 게 편하지 않겠나 한다.
어른들은 괜찮겠지만 애기들은 어찌할꼬?
웅장한 '쇠뿔바위봉'이 내 시야를 압도한다.
높은 산이나 낮은 산이나 다 힘들다.
땀 흘리며 산행을 할 때 진정한 나 자신을 본다.
한 구비 넘으니 또 다른 비경이 나온다.
단체를 피해 암봉쪽으로 비켜서니 내소사의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산은 절을 품고, 절은 산을 끼고 있으니 참으로 오랜 세월 간직해온 비경이구나.
내소사는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산줄기가 좌청룡, 우백호로 감싸 처처심중의 절처럼 안온하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 스님이 창건하여 처음에는「다시 태어나서 온다.」는
뜻인 소래사(蘇來寺)로 불러오다가,
조선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 선사가 중건한 뒤부터 '내소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천년된 '회화나무'가 당목으로 내소사 경내에서 용트림을 하고 있는데 가을 노란단풍이 일
품이라고 전해진다.
달마산 '미황사' 같이 단청을 칠하지 않아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의 3칸 8문짝이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 꽃의 정교한 문양으로 조각된 꽃무늬 문살이 소박한 미를 자랑하니 오히려 화려하게
보이는 절묘한 아름다움이다.
시간이 맞지 않으니 소사모종(蘇寺暮鐘)을 볼 수가 없다.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내소사 전나무 숲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저녁 종소리가 아니라도 아침햇살 속에 엷게 피어 르는 물안개, 아지랑이와 함께
이 숲을 거니는 것도 좋으련만,
안개 속에서 거니는 상상만 해도 기분 좋은 수령 150~200여 년 된 600m 거리의 전나무숲길이다.
밭두렁에서 기침, 천식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곰보배추와 변비, 아토피에 효과가 있는
소루쟁이를 따 마이크를 잡고 설명해준다.
언뜻 천연기념물 122호로 지정된 감탕나무과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지를 지나치며,
미쳐 카메라를 꺼내지 못하고 차는 달려가니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따로 없다.
멀리 수전폭포가 보인다.
불콰해진 얼굴로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궁평항의 기막힌 일몰의 낙조를 보며,
둥기 당기 당당기!!!~~~`
부안의 명기 '이매창'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가며 한잔 쭈욱~해볼까?
취하자~노래하자~다시 술을 따르자!
가는 세월 잡을 수 없으니 한잔 술에 시름 달래며,
우리 사는 날까지 서로 챙기며 건강하게 살아보자.
뱃속에 채우는 건 술이고, 가슴을 채우는 건 우정과 사랑이라고 하지.
2010. 4. 3 산해절승 내변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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