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84 탄생과 소생(蘇生)

김흥만 2025. 4. 12. 12:48

2025.  4.  12.  07;00

여보시게!

이 꽃이 무슨 꽃인 줄 아시나?

 

북쪽을 향해 소담하게 핀 '자목련'을 보며

혼자 독백을 한다.

 

작년엔 몇 송이 피지 않았었는데 해거리를

하는 모양인지 금년엔 풍성하게 꽃이 피었다.

 

07;30

미사리 뚝방 벚꽃길로 내려선다.

 

십리 벚꽃길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팅을 하는 학생, 웨딩사진을 찍는 연인,

노인과 젊은이, 강아지도 함께 꽃비를 맞으며 

걷는다.

 

바람에 실려 훅 끼쳐오는 벚꽃 향기,

직박구리, 개개비, 물까치가 이 나무

저 나무에 주둥이를 박고 꿀의 향연을

즐긴다.

 

잠시 잠잠했던 건들바람이 다시 분다.

어제 밤새도록 피었던 꽃잎이 생(生)을 즐길

사이도 없이 떨어진다.

 

벚꽃잎이 순식간에 함박눈으로 변했다.

만개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을 고집할까.

 

샛바람 타고 꽃잎이 꽃비 되어 떨어지는 날, 

이런 꽃길이라면 미음완보(微吟緩步)가

제격이겠지.

 

벚꽃은 사실 밤에 핀다.

국가농림기상센터 김진희 박사의 논문에

위하면 벚꽃이 피기 위해선 냉각량이 -100도,

가온량이 158도라고 했다.

 

따라서 낮엔 부족한 가온량(加溫量)을

채우느라 꽃망울을 열지 않았다가 밤이 되면

사람들 자는 사이 활짝 피는 거다.

 

밤에 피는 꽃은 흰색, 연한 녹색, 담황색과

같은 밝은 색을 띠며 달콤하고 진한 향기로

새와 곤충을 유혹한다.

 

이와 반대로 개불알꽃, 자귀나무, 수련

(睡蓮)낮에 피었다가 밤이 되면 꽃잎을 

오무린다.

 

계절마다 피는 꽃 색깔이 조금씩 다르다.

초봄에는 개나리 등 노란색꽃,

4, 5월에는 흰색꽃이 주로 피는가 하면

여름에는 주황색과 붉은색 계통,

가을에는 주로 보라색 계통 꽃이 많이 핀다.

 

곤충은 식물의 색깔이나 형상, 냄새에 따라

꽃을 선택한다.

따라서 식물은 나름대로 꽃을 피우는 계절과

모양, 색깔을 철저한 계산에 의해 정한다니

대단한 생존본능이다.

 

동박새와 직박구리는 벚꽃꿀을,

나비와 등에는 흰색과 노란색을 좋아하고,

가을 늦게까지 활동하는 벌은 보라색과

자주색, 파란색을 좋아한다.

 

많은 종류의 가을꽃이 벌의 선호에 맞춰

보라색으로 색깔을 맞춘다니 자연이

신비롭기만 하다.

 

또한 산수국과 금낭화는 토질의 성분에

따라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

 

금낭화는 토질이 산성이면 흰색이나

연분홍색, 알칼리성이면 붉은색에 가깝다.

 

반면에 산수국은 토질에 산성이 강하면

푸른색으로, 알칼리성이면 분홍색꽃이 피니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신비스러운 자연이다.


어느새 4월,

봄은 깊어간다.

 

한겨울 메말랐던 나무와 풀은 칙칙한 갈색을

지워나가고 그 자리를 연두색으로 메꾸기

시작한다.

 

무언가 한참 동안 잃었던 것을 찾아가는 봄,

이렇게 또 계절의 시간이 흐르며 자연은

탄생을 통하여 번식과 성장을 하고 익어

가는데,

 

인간들은 싸움박질로 날을 지새우고 속절

없이 나이만 먹어가는 미숙아(未熟兒)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겨울 모진 바람, 독한 추위는 적막한 고독

이었다.

봄을 기다린다는 것은 자연과 사람의 겸손한

성찰의 시간이자, 하늘과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몸짓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봄의 설렘을 안고 벚꽃길을

오가며 환희를 느낀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내손에 든 카메라 셔터소리에만 집중하니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소실점(消失點)으로 벚꽃길이 사라졌다.

길이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존재인가.

 

이 세상에는 직선길, 곡선길, 꼬부라진 길,

끊어진 길,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은밀한 길

수많은 길이 있는데 나는 어떤 길을 좋아

했던가.

 

덕유산 향적봉 아래 덕유평전의 꼬부랑길,

장수 삿갓봉에 오르던 갈짓(之)자 고갯길,

흑산도 산마루에서 내려다보던 굼벵이길,

 

다람쥐와 함께 걷던 월정사 선재길,

안개와 아지랑이 그윽했던 변산 내소사

월명무애(月明霧靄) 전나무길,

 

단풍이 불타는 계방산 운두령길,

야생화 천국 함백산 만항재, 은난초와 광대

수염을 만났던 태백산 금대봉의 야생화 꽃길,

기생초를 만났던 은대봉 오르던 길, 아찔한

절벽의 금오도 비렁길이 그렇게도 좋았다. 

 

직선길은 소실점이 보여 좋았고,

곡선길은 어디로 가는지, 길이 어디로 나를

데려가는지, 그곳이 바로 보이지 않고 알

수가 없어서 좋았다.

 

꽃잎 흩날리는 나무아래에 선다.

벌들이 붕붕거리며 날갯짓을 하고 바람에

은은히 퍼지는 벚꽃향기를 몸속 깊숙하게

빨아들인다.

 

암향부동(暗香浮動)이라,

그윽한 향기가 코를 통하여 뱃속으로 들어

가자 비로소 나의 내장도 잠시 향긋해짐을

느낀다.

 

사람들은 '봄은 만물이 탄생한다'는 말보다

'만물이 소생(蘇生)한다'는 말을 많이 쓴다.

 

소생(蘇生)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거의 죽어가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남"이다.

그래서 소생이라는 말의 느낌은 늘 신선한

마법같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오후부터 태풍급 강풍과 함께 봄비가 요란

하게 내린다고 한다.

일 년 만에 소생한 저 벚꽃 잎이 모진바람에

버틸 수 있으려나.

 

                2025.  4.  12.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