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885 미친 놈의 세상

김흥만 2025. 4. 14. 18:52

2025.  4.  14.  02;00

새벽 두 시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눈이 떴다.

 

비가 오더니 세시부터 눈이 오고, 네시

부터는 싸락 우박으로 변했다.

 

황사도 몰려오고 강풍이 불어 창밑 소나무

가지가 위태롭다.

가로등불도 흔들리고, 벚꽃잎과 청매화가

맥없이 흩날린다.

 

싸락 우박이 떨어진다.

어느 것이 꽃잎이고 어느 것이 우박인가.

뒤숭숭한 마음을 접고 다시 잠이 들었다.

                          <   조팝나무꽃   >

 

08;00

뜰안의 소나무 가지가 부러졌다.

벚꽃은 조금만 남고 조팝나무꽃은 간신히

버티었다.

 

검단산, 예봉산 정수리가 하얗다.

4월 중순인데 산 정상이 후지산처럼 하얀

눈으로 덮이다니 자연이 미쳤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명자나무 꽃잎도

힘없이 떨어져 핏빛으로 나뒹군다.

 

강풍과 0.6cm의 눈, 싸락 우박과 비가

동시에 오고 추위와 함께 다시 겨울이

왔다.

겨울복장을 했어도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고 종아리가 썰렁하다.

 

원래 봄비 소리는 자분자분하다.

또한 거칠지 않고 찬찬히 내리며, 만물을

소리 없이 적시기에 어느 시인은 봄비를

윤물무성(潤物無聲)이라 표현했는데

이번에 내린 봄비는 차원이 다르다.

 

작년엔 너무 뜨거워 많은 과일나무들이

화상(火傷)을 입어 금사과가 되었고, 수해

(水害)를 많이 당하기도 했다.

 

금년엔 산불로 인해 아랫녘 산과 밭이

많이 타더니 이번엔 강풍, 폭설과 꽃샘

추위로 꽃눈들이 어는 냉해(冷害)로

치명타를 입었겠다.

 

온 세상이 화재(火災), 수재(水災)와 풍재

(風災)는 물론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신음

한다.

 

이만하면 삼재팔난(三災八亂)이 아닌가.

덩달아 인간세상도 미쳐 돌아가고 나라

꼴도 엉망이니 말이다.

 

탄핵으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그 자리를 노리고 미친놈, 덜떨어진 놈,

범죄자, 전과자, 배신자는 물론 개나 소나

말이 다 대통령 되겠다고 설친다.

 

이또한 인재(人災)를 뛰어넘은 국지불국

(國之不國)이 아닌가.

 

응달쪽 늦게 핀 청매화 꽃잎에 눈이 살짝

얹혔다.

카메라를 두고 나왔기에 아쉽게 설중매

찍지 못한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 잎이 땅바닥에

하얗게 깔리고 떨어진 백목련 이파리는

누렇게 변해 세상을 지저분하게 만들었다.

 

꽃사과나무, 복숭아꽃도 떨어졌다.

시인 두보(杜甫)가 말한 춘야희우(春夜

喜雨)어디로 갔는고.

 

성질 더럽게 변한 봄비와 싸락 우박은

봄꽃을 완상(玩賞)시간을 주지 않으니

어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늘은 미쳐 돌아가는 인간세상을 산불로

경고를 했고 이번엔 날씨로 응징했다.

 

인간들이 분수를 모르고 미쳐 날뛰면

자연이라도 계절을 차분하게 다스려 주기를

바랐건만 나만의 바람이었던 모양이다.

                               <   미사리 당정섬  >

 

16;00

지하철에서 빠져나왔을 때 빗방울은 '는개'

였다.

소강상태를 멈추고 다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거실창밖으로 보이는 앞산 산벚나무에

연둣빛이 제법 비친다.

 

꽃잎이 떨어졌어도 연두색 잎을 뾰족하게

밀어 내놓기에 나는 사월의 나무가 좋다.

 

날씨가 고약해도 묵묵히 제할 일을 하는

나무의 왕성한 생명 에너지를 보며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고사성어

이환위리(以患爲利)를 생각한다.

 

살다 보면 마음을 접어야 할 때와 손을

떼어야 할 때가 자주 생긴다.

꽃이야 어차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아니던가.

 

삼일을 피나 십일을 피나 때가 되면 떨어

지는 게 자연의 섭리다.

 

아쉽지만 광풍(狂風)에 꽃이 떨어지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다른 꽃이 필 때까지

오롯이 기다리련다.

 

                2025.  4.  14.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