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10 넉 넉 너구리야 왜 우니♬

김흥만 2025. 7. 27. 13:46

2025.  7.  25.  04;30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숲 속에서 들린다.

 

손에 든 등산용 스틱을 길게 펴자,

아기 너구리 두 마리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

풀숲으로 숨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이곳에서 어미 너구리와 새끼 7마리를 처음

만났고 그 이후엔 어쩌다 만났는데,

그 새끼들이 커서 다시 새끼를 낳은 모양이다.

 

아기 너구리를 만나자 그 옛날 골목길에서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신나게

부르던 전래동요가 생각난다.

 

♬넉넉 너구리야 왜 우니 바람도 안 부는데

왜 우니, 너의 어머니가 전차에 전차에 갈려서

나불납작공♪ ,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라는 동요였던가.

 

우리의 전래동요는 반복해 부르면 부를수록

'오빠는 강남 스타일'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상산국민학교 운동회를 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끝날 때까지 2/4 박자 행진곡을 틀었는데

그중 한곡은 '너구리야 왜 우니'라는 노래였다.

 

그 외에도 행진곡은 '콰이강의 다리',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등으로 기억난다.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나오고,

땅거미 내려앉은 저녁이 될 때까지 차 없는

세상의 동네 골목길은 어린이의 천국이었다.

  

사내놈들은 딱지치기, 자치기, 말타기, 구슬

치기, 막대기로 총싸움을 하다 지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등으로 시간 가는 

몰랐고,

 

조금 극성맞은 친구는 잠자리를 잡아 꼬리를

자르고 강아지풀을 끼워서 날려 보내기도

했다.

 

계집아이들은 주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와

사방치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라는 생존게임과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모래집을 지으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신나게 놀았다.

 

산길에서 만난 아기 너구리 덕분에 나는 타임

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 어릴 때 같이 놀던

동무들곁으로 돌아갔다.

 

05;00

너구리가 산길가로 다시 나왔다가 숲 속으로

숨었다.

 

오소리는 주둥이가 뾰족한 편으로 사납게

보이는데 반해 너구리는 귀엽게 생겼어도

다소 둔해 보여 사람들은 의뭉스럽고 미련한

동물로 묘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구리는 의외로 영리하다.

위험에 빠지면 죽은 척 능청을 떨기도 하고,

"너구리도 들 굴, 날 굴이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게 준비가 된

개과의 영리한 동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걷는 황산숲길은 사방이 길과

주택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이 된 산이다.

 

다른 개체가 들어오기 쉽지 않은 곳,

개나 멧돼지 등 천적이 없어도 어느 날

청설모가 다 사라졌다.

 

너구리가 이곳에서 오래 살며 청설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려나.

 

               2025.  7.  2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