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25. 04;30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가
숲 속에서 들린다.
손에 든 등산용 스틱을 길게 펴자,
아기 너구리 두 마리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
풀숲으로 숨는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할 때,
이곳에서 어미 너구리와 새끼 7마리를 처음
만났고 그 이후엔 어쩌다 만났는데,
그 새끼들이 커서 다시 새끼를 낳은 모양이다.
아기 너구리를 만나자 그 옛날 골목길에서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할 때 신나게
부르던 전래동요가 생각난다.
♬넉넉 너구리야 왜 우니 바람도 안 부는데
왜 우니, 너의 어머니가 전차에 전차에 갈려서
나불납작공♪ ,
'무찌르자 오랑캐 몇천만이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라는 동요였던가.
우리의 전래동요는 반복해 부르면 부를수록
'오빠는 강남 스타일'처럼 중독성이 강했다.
상산국민학교 운동회를 하는 날에는 아침부터
끝날 때까지 2/4 박자 행진곡을 틀었는데
그중 한곡은 '너구리야 왜 우니'라는 노래였다.
그 외에도 행진곡은 '콰이강의 다리', '머나먼
저곳 스와니 강물' 등으로 기억난다.
밥 짓는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나오고,
땅거미 내려앉은 저녁이 될 때까지 차 없는
세상의 동네 골목길은 어린이의 천국이었다.
사내놈들은 딱지치기, 자치기, 말타기, 구슬
치기, 막대기로 총싸움을 하다 지치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 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조금 극성맞은 친구는 잠자리를 잡아 꼬리를
자르고 강아지풀을 끼워서 날려 보내기도
했다.
계집아이들은 주로 고무줄놀이, 땅따먹기와
사방치기,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죽었니 살았니♪"라는 생존게임과
손바닥으로 토닥토닥 모래집을 지으면서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동요를 부르면서 신나게 놀았다.
산길에서 만난 아기 너구리 덕분에 나는 타임
머신을 타고 수십 년 전 어릴 때 같이 놀던
동무들곁으로 돌아갔다.

05;00
너구리가 산길가로 다시 나왔다가 숲 속으로
숨었다.
오소리는 주둥이가 뾰족한 편으로 사납게
보이는데 반해 너구리는 귀엽게 생겼어도
다소 둔해 보여 사람들은 의뭉스럽고 미련한
동물로 묘사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너구리는 의외로 영리하다.
위험에 빠지면 죽은 척 능청을 떨기도 하고,
"너구리도 들 굴, 날 굴이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게 준비가 된
개과의 영리한 동물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걷는 황산숲길은 사방이 길과
주택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이 된 산이다.
다른 개체가 들어오기 쉽지 않은 곳,
개나 멧돼지 등 천적이 없어도 어느 날
청설모가 다 사라졌다.
너구리가 이곳에서 오래 살며 청설모의
빈자리를 채워 주려나.
2025. 7. 2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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