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11. 08;00
5월의 하늘이 저랬을까?
구름 한 점 없는 9월의 쪽빛하늘은 5월 하늘
보다 높고 찬란하게 빛난다.
47일 이상 이어진 열대야, 9월이 되었어도
기온은 35도를 넘나들었고 습도가 90%
이상인 무더위가 계속되어 가을이 영영
사라진 줄 알았다.
이틀 연속 새벽온도는 17도까지 떨어졌고
습도는 30%이하라 팔에 소름이 돋는다.
살다 보니 이렇게 시원한 날도 오는구나.
무더위에 지치기 싫어 그늘만 찾아서 걸어
다녔는데, 모처럼 찾아온 선선한 날씨를
만끽하며 여유롭게 걷는다.

< 사데풀 >
내가 자세히 보지 못했던 뜨거운 여름날,
주변에 무엇이 태어나고,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하고현상(夏枯現象)을 빌려 사라
졌을까.
미음완보(微吟緩步)까지는 아니지만
사무실을 향해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식물을
관찰한다.
작은 쪽문 울타리엔 주먹보다 큰 '대봉시'
(大峯枾)가 홍시가 되기를 기다리고,
100일간 30도 이상되는 독한 술에 숙성시켜
잠자기 전 정력제로 마셨던 '비수리(夜貫門)'
가 제법 자랐으니 어느 누구를 즐겁게 해 줄
것인가.
백일 간 피어 지칠 때로 지친 '배롱나무꽃'이
처연하게 매달려 있고,
가을바람 타고 '소루쟁이(소리쟁이)'가 제법
큰 소리를 낸다.

< 배롱나무꽃 >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도랑에선 '방동사니'와
'졸'이 '큰 고랭이'와 뒤섞여 한바탕 세력다툼을
하는 중이다.
물속에선 부드러운 '억새풀'이 나풀거리기
시작했고, 억센 '갈대'도 이에 질세라 꽃이
피기 시작했다.
'붉은서나물'도 백발만 남겼으니 가을이 오긴
온 모양이다.

< 붉은서나물 >
물가에는 '이삭여뀌', '쑥부쟁이', '부처꽃'이
곱게 피었다.
서양토끼풀꽃도 피었고, 입술 주변을 까맣게
물들이던 '까마중' 열매도 달달하게 익어간다.
저 까마중에선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
얼마나 나올까.
농부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왕바랭이' 사이로
'금강아지풀'이 가을햇볕을 받아 영롱하게
빛난다.
서너 걸음 앞에 '방가지똥'과 사촌인 '사데풀'이
노란 꽃을 피웠고,
그 아래엔 파랑새가 앉을까 두려워했다던
'녹두'도 노란 꽃을 피워 청포장사와 녹두장군
전봉준을 그리워한다.

< 녹두 >
풍산역 입구에 말(馬)을 때리던 '말채나무'도
하얀 꽃을 피웠고, '왕고들빼기'도 여러
송이가 피었다.
역 근처 근린공원엔 가을장미와 '호박꽃',
나라가 망할 때인 개화기에 들어와 밉상을
받는 '개망초꽃'이 여기저기에 피었으니
어쩌면 봄보다 더많은 식물이 꽃을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생김새 때문에 외래종 대접을 받는 토종
'수크령'이 부드러운 털을 날리고,
담장밑엔 '닭의장풀'이 작지만 요염한 꽃을
피웠는데 '계요등(鷄尿藤)꽃'은 끝내 찾지
못했다.
이밖에도 이 길에서 만난 나팔꽃, 좀씀바귀,
왕씀바귀, 지칭개 등의 이름을 불러본다.
행복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이렇게 꽃과 풀의 이름을 불러가며 이야기를
나누면 행복이지.
개미 한 마리라도 밟을까 발밑을 조심한다.
부지런히 기어 다니는 일개미가 페로몬향을
풍기지 않고 산개(散開)해서 각자 갈 길을
가니 오늘 비는 오지 않겠다.
2025. 9. 11. 08;2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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