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0. 04;00
영상 17도까지 떨어진 새벽,
노출된 팔의 피부에 소름이 살짝 돋는다.
그렇게도 뜨거웠던 여름의 시간이 폭우를
맞고 물러났다.
이에 놀란 풀벌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매미들도 일제히 숨을 죽였다.
볏과의 피 한 포기가 가을바람에 흔들리고,
여름의 시간들이 영원히 머무르지 못하고
소리 없이 흘러갔다.
머리 위로 툭툭 떨어지는 도토리,
산길가에 무수히 밟히는 밤송이들로 여름은
자기가 머물다 간 흔적을 남겼다.

< 피 >ㅣ
논 벼작물 사이에서 잘 자라는 '피',
농부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피 한 포기가
적막한 숲 속을 지킨다.
도시의 소음을 삼켜버린 숲 속,
고요가 숙명처럼 되어버린 숲 속,
익어가는 이삭은 피를 꾸부정한 노인으로
만들어가고 나는 피를 바라보며 "뜨거운
여름을 잘 버티었노라"라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를 하면 서로에게 답을
구하고 간섭을 하지만,
이렇게 식물과 대화를 하면 답을 구하지
않아서 좋다.
말이 없어도, 서로에게 답을 구하지 않아도
뜻이 통한다면 무욕(無慾)의 정적이 아닌가.
주머니 속 휴대폰이 바르르 떨린다.
새벽 5시도 안 된 시간에 웬 안부톡인지,
횡설수설대는 문자에 평정심이 사라졌다.
나무와 피, 그리고 나 사이에 침묵이 공존
하고, 사유(思惟)의 숲을 묵묵히 걸으며
얻었던 평화로운 마음이 깨진 거다.
할 말을 줄이고,
하고 싶어도 줄이는 덕목이 필요한 세상,
이 꼭두새벽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카톡문자에 마음을 닫았다.
과잉이 서로를 상처 입히는 시대에 자중
(自重)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지 않을까.
2025. 9. 2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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