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23. 16;30
아산병원 소화기 내과 1번 방 앞에서 두
시간 반의 기다림 끝에 이름이 떴다.
주치의는 췌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며
이제는 아산병원에 오지 말고 건강검진이나
빼먹지 말라며 웃는다.
성심병원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췌장암
암코드가 부여된 날로부터 6개월 단위로
CT, MRI 검사 등을 받게 하며 계속 긴장
하게 만들었고,
예전 어느 의사가 "암(癌)이 선고되면 3군데
이상의 대형병원에서 확실히 진단을 받는 게
좋다."라고 신문에 기고(寄稿)했던 글이
생각났다.
20여 년 전 담도를 수술했던 아산병원에서
재검사를 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해
드디어 췌장암의 공포에서 벗어난 거다.
9. 24. 04;30
숲은 깊은 침묵을 지키고,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이곳을 맴도는
지박령(地縛靈)의 명령을 받았는지 누군가의
음택(陰宅)이었던 곳을 떠나지 않고 지킨다.
금세라도 비가 쏟아지려나,
다시 후덥지근해진 기온으로 재킷을 벗고
숲길을 걷는다.
입추, 처서가 진즉에 지났는데도 여름은 웬
미련이 그리 많이 남았는지 쉽게 떠나려
하지 않는다.

낮과 밤의 시간이 균형을 이루는 추분(秋分)
인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더위가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래도 추분이 지나면 자연은 제행무상(諸行
無常)의 법칙을 지키겠지라며 스스로 위로를
한다.
추분은 여름과 가을을 구분하는 계절의
경계선으로 자연의 변화와 유연성을 보여
주는데,
입춘, 입하, 입추, 입동보다는 춘분, 하지,
추분, 동지로 계절을 구분되는 게 더 낫겠
다는 생각이 든다.
생육성쇠(生育盛衰)의 과정에서 쇠(衰)에
해당하는 이 가을엔 어떤 아픔이 기다리고
있을까.

추분이었던 어제는 낮과 밤의 균형이 맞았
겠지만 오늘부터는 밤이 조금씩 늘어나며
자연의 조화를 보여주겠지.
동이 트려면 아직도 두 시간이 더 남았다.
어둠 속에서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자연과 인간의 존재와 균형을
생각해본다.

< 루드베키아 >
가로등 밑에 '루드베키아' 한송이가 피었고
'서양등골나물'과 '벌개미취', '감국', '산국'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추분이 지났으니 동지가 될 때까지 낮의
풍요로움은 점점 짧아지고 밤의 고요는 점점
늘어나겠지.
꽃과 나무, 그리고 인간의 존재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맞추려는 자연의 제행무상을 생각하며
숲 속에서 벗어났다.
2025. 9. 2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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