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5. 16;00
동창회 명부를 보다가 숫자를 세어봤다.
하나~둘~71에서 내 눈은 멈췄다.
사망 숫자가 무려 71명이나 되다니,
그 숫자가 가슴을 짓누르며 답답하게 만든다.
고교를 졸업한 지 어느덧 55년,
중학교 동창회장은 10년째이고,
고등학교 동창회장을 6년째 하다 보니
친구들의 건강과 웬만한 사연들이 머릿속에
많이 저장되었다.
고등학교는 421명이 졸업하여,
현재 연락이 유지되는 동창이 150여 명이
되고 사망 기록에 잡힌 숫자가 무려 71명
이나 되는 거다.
한 명 한 명씩 이름으로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분류를 해본다.
뜻밖에도 59명은 나의 기준으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동창회 참석이나 각종
모임에 나서지 않았던 동창이었고,
친구들과 소통을 잘하고 사회적인 관계가
원만했던 동창은 12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소통이 잘되고 관계가
단절 없이 이어졌던 동창은 13%에 불과하고,
87%는 지난 55년간 관계가 거의 단절 되었
다는 숫자니 그만큼 소통과 관계 유지가 중요
했다는 통계가 아닌가.
나 홀로 고독사도 여러 명이나 되는데,
서로 소통을 잘하고 만남이 많은 친구들은
여전히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기에 그 숫자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고 중요하지 않다.

< 새벽노을 >
뜻밖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특히 성격이 내성적일수록 여러 사람과
만나고 어울릴 때 쉽게 피로감을 느끼면
그다음부터 '사람과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사람이란 서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가.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이로움과 대단함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편하게 만나 그냥 허심탄회하게 삶의 이야기를
나누면 되는 건데 말이다.
나는 주택은행에 입행한 후 인사부에서 1년여
근무기간 외에는 30년 넘게 고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다가 지점장으로 정년퇴직을 하였다.
영업점에서 고객을 상대할 때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자신이 가진 편견을 없애고 상대방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차장 때나 지점장 때 KPI 성적이 좋아 포상도
많이 받았고,
지점장으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국은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지점 경영과 영업에 자신이
있었다.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거래선에게 질책을
당했다.
은행 영업은 돈과 사람을 대하는 영업인만큼
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잠시
오만(傲慢)에 빠졌었나 보다.
삼성휴대폰에 은도금을 해서 납품하는
거래선 사장은 "그렇게 눈치가 없으니
본부장으로 진급도 못하고 지점장으로 눌러
앉아있다."라는 말을 한다.
내용의 요점은 자기 자식의 혼사에 "은행장
명의 축하 화환을 보내지 않고 지점장 명의
화환을 보내서 서운했다"는 말을 들으며
조금 당황했다.
물론 농담였지만 내가 그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했나라는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었고,
그 후로는 고객이나 친구, 지인을 대할 때
마다 말을 경청하고 진심으로 대하려 노력을
했다.
은퇴 후 어느 날 가깝게 지내던 친구에게
네 번이나 질책을 들었다.
내가 모르는 일과 관계없는 사항까지 싸잡아
시비를 거는데 그동안의 좋았던 관계를 깨기
싫어 싸우지는 않고 꾹 참았다.
그 친구가 잠시 우울증이 왔었다며 한참 후
사과를 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서로 소원
(疏遠)한 관계가 되었고 회복되지 않았다.
평생 영업을 하며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했던 자부심이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나는
사람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것이었다.
이제 나이가 점점 더 들다 보니 사람의
아름다움과 마음을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과 사고를 존중하게
되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학연과 지연, 직장연은 서로 엄청난 기적이
아닌가.
사람이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사람을 안다는
것,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위 통계에서 보듯이 누구든지 사회적 관계
단절이 되면 신체와 마음이 약해지고,
삶의 의미마저 퇴색하게 되면서 건강은 점점
멀어진다.
따라서 늙어 아파지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아프니까 점점 늙어 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스스로가 제일 중요하지만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오전 내내 맑았던 하늘에 먹구름이 쌓이더니
가을비를 한바탕 쏟아내고,
창문을 두드리는 요란한 빗소리는 나 자신의
지난날 소홀했던 틈을 메워준다.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물론 다른 친구, 지인
들도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여러 사람과
많이 어울리며 소중한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졸필을 끄적인다.
2025. 10. 15.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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