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8. 09;00
사무실 베란다로 나가자 여러 잡초들이 와글
거리며 목청을 높인다.
이런 담쟁이, 왕질경이, 까마중, 개여뀌 등
엄연히 이름이 있는데도 잡초라니,
내 마음이 전해지면 잡초들이 기분 상하겠다.
고요가 고립되어 고여있는 곳,
도시의 소음을 삼켜버린 8층의 공간은
나에게 해방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베란다에 나가면 담쟁이와 까마중은
말없이 나를 반겨주고 나도 말없이 눈길을
건넨다.
몇 달 전 맹충이에게 공격을 당해 앙상한
줄기만 남았던 담쟁이가 기사회생하여
벽면을 천천히 기어오른다.

< 담쟁이 >
얘가 누구지?
너무 작아서 몰라봤던 '뽕모시풀'이 제법
자랐다.
작년엔 이 화분에 뽕모시풀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높은 8층까지 '뽕모시풀'의
씨앗이 어떻게 올라왔을까.
바람 타고 올라왔을까,
지난번 맹충이에게 담쟁이가 습격을 당한
거도 아리송했는데 참 묘하다.
물론 나의 호기심을 충족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뽕모시풀'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겠다.

< 뽕모시풀 >
정답이 없으면 어떤가.
새로운 생명이 존재함으로써 답은 충분하다.
서로 아무 말 없이도 교감이 되면 그게 바로
자연의 순리이자 섭리(攝理)가 아닌가.
유난히 뜨겁고 힘들었던 지난여름,
8층 베란다에는 빗물 이외는 수분 공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녀석들이 말라죽을까 걱정이 되어
모아둔 빗물과 수돗물을 수시로 뿌려 주기만
했는데,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성장으로
나에게 보답을 했으니 말이다.
땅과 흙이 단절된 이곳의 식물들은 말을 하지
못해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물과 햇빛은 충분한지 통풍은 잘 되는지,
자주 들여다보며 간섭 아닌 간섭을 했다.

< 까마중 >
건들바람이 분다.
다음 주부터는 온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했다.
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줄기야 말라
비틀어지겠지만 뿌리와 열매는 살아남아
내년 봄에 환생(還生)하겠지.
자연의 섭리인 생육성쇠멸(生育盛衰滅)의
과정에서 생명이 다해가는 작은 생명들에게
마음으로 위로를 보낸다.
이 공간에 이 녀석들마저 사라진다면 내 안의
작은 정원은 얼마나 허전하고 쓸쓸해질까.
공간의 여백이 남겨줄 무욕(無慾)의 정적
(靜寂)이 나에겐 또 하나의 외로움이자 욕심
인지도 모르겠다.
2025. 10. 1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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