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8. 08;00
하늘은 파랗고 불어오는 북풍이 목덜미를
파고든다.
참으로 표독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고,
20여 일이나 이어지던 가을장마도 끝났다.
겨우 가을맛을 보나 했더니 북쪽에서 내려온
냉기는 오늘 아침기온을 영하권까지 떨어
뜨렸고, 여름 내내 옷장에서 잠자던 가을옷을
꺼낼 새도 없이 바로 겨울옷을 입게 만들었다.
기러기 떼 지어 눈 부시게 시린 하늘을 난다.
어느새 북녘땅으로 떠날 때가 된 모양이다.
너무나 짧디 짧았던 봄, 지루하게 이어지던
여름, 순식간에 사라진 가을에 몸이 제대로
따라주려나.
며칠간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집 주변에 흐르던 실개천은 물이 말랐고,
개천가 무성하게 자라던 달뿌리털, 억새,
갈대가 다 사라졌다.
실개천을 의지하며 살던 저 어린 쇠백로는
어미를 잃고 어디로 가서 추위를 버틸까.

가을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
(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했다.
변방의 말이 살찐다는 추고새마비(秋高塞
馬肥)가 언제부터인가 천고마비로 바뀌었지.
북방의 돌궐, 선비, 여진 등 강력했던 유목
민족이 가을이면 무성하게 자란 풀을 말에게
풍족하게 먹이고,
겨울이 되면 살찐 말을 타고 내려와 중국과
우리나라를 침범해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이렇듯 천고마비는 원래 전쟁의 공포가 스며
든 표현으로 가을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말이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청명한 가을을
대표하는 말이 되었다.
제비꽃도 오랑캐꽃이라 했다.
이른 봄 제비꽃이 필 때면 북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백성을 죽이고 약탈하고 온갖 만행
을 저질렀기에 가녀린 제비꽃에 오랑캐꽃이
라는 별명이 붙은 거다.
10월도 어느새 하순,
지금은 온 산이 붉게 물든 단풍으로 만산홍엽
(滿山紅葉)이 되어야 제격이다.
그러나 검단산, 예봉산 자락은 붉게 물들기는
커녕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저러다가 붉게 물드는 과정을 생략하고 말라
비틀어지며 바로 낙엽이 될까 두렵다.
일찍 들어와 책을 펼치지만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을 하고자 하나 점점
총기(聰氣)가 사라지는 눈(眼)이 따라주지
않으니 서글프기만 하다.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천고마비, 만산홍엽, 등화가친이 사라진 세상,
그래도 세월은 흘러간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어리둥절하는 쇠백로를
보며 사라진 가을을 아쉬워하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2025. 10. 28.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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