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43 낙엽 밟는 소리

김흥만 2025. 11. 23. 10:31

2025.  11.  23.  04;30

 

사각~사각♬

낙엽 쌓인 숲길을 걸으며 가슴을 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찬 공기가 폐부(肺部)를 청량하게 만들고

머리까지 맑게 해 준다.

 

이른 새벽 숲 속엔 오롯이 나 혼자뿐,

내가 낙엽 밟는 소리만 들리고 자주 나타

나던 고양이와 너구리는 보이지 않는다.

 

가을 냄새는 참 묘하다.

나뭇잎이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길고 긴 겨울을 대비하는 땅의 냄새

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쓸쓸한 낙엽의 냄새는 어느새 내 코에

익숙해지고, 냄새를 음미하며 천천히 산길을

걷는다.

 

바스락~바스락♪

밟을 때마다 낙엽은 비명을 지르고,

당단풍이 빨갛게 익어가는 경사진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을 오르며 20대에 읽었던 소설 '폭풍의

언덕'을 머릿속에서 꺼낸다.

 

도입부(導入部)였던가.

[ 거센 바람이 언덕을 휘감고,

  하늘은 늘 낮게 드리워 있고, 땅은 축축하게

  젖어있다.

 

  거칠고 잿빛의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느릿

  하고 차갑게 움직인다.~] 

 

영국 작가 '엘리스 벨'이 쓴 '폭풍의 언덕'은

1973년 군에 입대하기 직전 다리 골절상으로

진천 박기수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을 때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망'과 함께 읽은 책 중 하나였지.

 

바람이 분다.

소슬바람이 불자 낙엽이 어두운 허공에서

흩날리며 우수수 떨어지고 아직 살아남은

나방이 한 마리가 가로등을 향해 날아간다.

 

'이브 몽땅'도 저 낙엽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을까.

문득 그가 부른 '고엽 Autumn Leaves'가

생각나

폰으로 들으며 흥얼거린다.

 

~차가운 망각의 밤 속으로~날아가는 고엽

더미~이별한 연인들의 발자국들을 ♬~

 

낙엽은 소멸의 단계가 아니다.

또한 우리의 생도 덧없는 삶의 찰나가 이어

지고 또 이어지는 거에 불과하고,

 

나무는 혹한에 살아남기 위해 떨켜층을

가동하여 이파리를 떨쳐내고 내년봄의

소생을 위해 깊은 겨울잠을 자는 거다.

 

바람의 언덕 위에 올라 붉게 타기 시작하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심호흡을 한다.

 

십 년 전 이 나무를 처음 보는 순간 운명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단풍나무는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자신을 불태워 가고 나도 나무 아래에서 잠시

나 자신을 불태워 본다.

 

우리나라엔 '고엽'이라는 샹송 못지않은

낙엽에 관한 노래가 많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박일남의 '부모'는

시인 김소월의 시(詩)였고,

이찬원의 '낙엽처럼 떨어진 너와 나',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

남일해의 '낙엽'이 있다.

 

특히 배호의 '파란 낙엽'은 가을과 사랑의

끝자락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그리움을 

낙엽에 비유해서 표현한 곡이다.

 

낙엽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별과 시간의 흐름

이기에 예전부터 낙엽과 가을바람은 음유

시인(吟遊詩人)이나 가수들의 단골소재가

되었다.

 

가을에 부는 바람, 단풍과 낙엽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센티멘탈(sentimental)해지고

시인이 되려 한다.

 

전엔 산행 중 가끔 시(詩) 한수를 남겼는데

요즘엔 시상(詩想)이 떠오르지 않으니 감성이

점점 메말라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가끔 시인의 흉내를 내고 싶고,

노랫말도 작사하고 싶은데 내 짧은 실력으론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니 답답하다.

 

나의 재주 없음을 탓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기에 그냥 졸필이나 끄적일 수밖에~~

 

              2025.  11.  23.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