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30.
이틀 전 병원 외래 접수창구 직원이 "생년
월일을 불러 주실께요"라고 두 번이나
말한다.
왜 두 번이나 묻느냐고 했더니 나이랑
얼굴이 맞지 않는 거 같아 환자 본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나이와 얼굴이 맞지 않다?
수사기관도 아닌 병원 직원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쓴웃음이 나온다.
직원의 '~~께요'라는 어법이 참 어색하다.
'불러 주실께요'라는 말을 '불러 주세요',
또는 "말씀 해주세요"라고 하면 되는데
병원의 고객만족(customer saitisfac
tion) 교육을 탓해야 하나.
이어서 "보호자분도 오셨나요?"
보호자'분'이라니, 그냥 '보호자'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분'자를 붙이며 애매한 화법을
쓴다.
방송에 나오는 패널과 MC도 존칭어를
쓴다며 보통명사에 '분'을 붙여서 '팬분'
'친구분' '보호자분' '남편분' '아내분'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순서가 되자 "김xx님 들어가세요"라고
하지않고 굳이 "김xx님 들어가실께요"라고
말하니 병원에선 말버릇이 그렇게 굳어진
모양이다.
소화기 내과 주치의가 컴퓨터로 췌장암
CT검사결과를 한참동안 보더니 "작년과
별 차이가 없고 암(癌)이 아닌 거 같아요,
일 년 후 다시 검사를 받도록 예약을
잡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의사도 암이 아니면 "아닙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아닌 거 같아요"라고 말을 하니
사회 전체가 책임 회피용 발언인 '같아요'
병에 걸렸으니 안타깝다.
하긴 명 MC로 손꼽히는 김 X주 MC도 복면
가왕 프로에서 출연자에게 "무대 가운데로
가실게요"라고 할 정도니 이젠 '께요'라는
비표준어가 표준어로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도
'시작합니다'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를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데 나만 어색하게 들리는 걸까.

단골식당에 4명이 들어갈 때
"몇 분이세요?"라고 물으면 장난 삼아
"세분한 놈"이라고 답할 때가 종종 있다.
오늘 중식당에서 가족이랑 식사를 할 때다.
중학생 서너 명이 들어오면서 다섯 명이라고
하면 되는 것을 '다섯 분'이라고 하며 짜장면
'5개'라고 큰소리로 주문을 한다.
더 가관인 것은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오며
"짜장면 5개가 나오셨습니다"라고 짜장면에
존칭어를 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물건의 단위를
음식은 그릇, 꽃은 송이, 나무는 그루, 달걀은
열개를 묶은 꾸러미 또는 알, 연필은 자루와
열두 개씩 묶어서 세는 다스, 공책은 권, 실은
타래, 술은 병, 안주는 접시,
담배는 보루와 개비, 신발은 켤레, 과자는
봉지, 종이는 장, 채소는 포기, 음료수는 잔,
자동차는 대, 금은 '돈과 량'이라고 배웠다.
사람들은 언제부터인지 사물이나 사람, 동물,
꽃 등 일반 개념을 나타내는 보통명사의
숫자를 '개(個)'라는 말로 통일하고, 음식을
시킬 때도 접미사에 개(個)를 붙여 ' X개'라
주문한다.
이밖에도 접두사로 '개'를 붙여 '개 추워',
'개밥맛' '개좋아''라는 말로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포괄하여 사용하는 바람에 '매우'
'엄청' '대단히' '몹시'라는 말은 점점 사라져
간다.

< 사철나무 열매 >
예전 주택은행에선 대출서류에 차주 본인이
직접 자필로 주소, 성명을 쓰게 했는데,
위변조의 위험이 있다며 이름만은 관행상
한자로 쓰게 하여 고객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영업부 직원이 한글학자에게 한자로
이름을 써줄 것을 요구했다가 야단맞았다는
설도 있었고, 나중엔 한글로 써도 감사에서
지적을 하지 않았다.
맙소사!
이렇듯 우리 일상의 표준어가 점점 소멸되어
간다.
역 문법화(文法化) 현상으로 우리의 일상
에서 점점 표준어가 사라지고, 사회통념상
표준어와 단위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신조어도 수시로 생기는데 나는 거기에
순응하고 적응할 것인가,
아니면 문법이나 따지는 고리타분한 꼰대로
계속 남을 것인지 고민을 해야겠다.
세종대왕과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께서 이런
사실을 아신다면 어떤 표정일까, 화를 낼까,
아님 웃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2025. 11. 3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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