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3. 04;00
바람이 분다.
몇 장 남지 않은 단풍잎이 삭풍에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텅 빈 나뭇가지 틈
사이로 가로등이 빛난다.
숲은 지난여름 무더웠던 시절의 무거움과
가을의 풍성함을 비웠고, 그 비운 틈으로
적막(寂莫)이 조용히 머무른다.
바스러진 낙엽을 바라본다.
아직 바스러지지 않고 남은 단풍잎은 지난
여름날의 상처로 구멍이 뻥뻥 났고 빛이
바래지기 시작했다.

< 25. 12. 13. 04;00 >
봄이 탄생과 소생의 기쁨을 주었다면,
여름은 초록의 왕성함으로 환희를 주었고,
가을은 풍만한 열매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배부른 즐거움을 주었다.
그래도 나는 배고픈 겨울이 더 좋다.
나뭇잎과 풀잎이 사라진 숲은 욕심 없이
속살을 내어주기에 참 좋은 거다.
어쩌면 텅 빈 숲 속에는 위선과 가식이 없어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평생 산과 나무를 사랑했고, 산과 들에
핀 야생화를 사랑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들을 사랑했다.
풀 한 포기, 이름 모르는 들꽃을 사랑했고,
사람과 사람을 사랑했고 사람을 배신하지
않으려 했다.

< 25. 11. 30 >
아무도 없는 새벽의 숲 속에서 나뭇잎을 다
떨군 미선(尾扇)나무를 안고 귀속말을 했다.
지난봄 예쁜 꽃을 피워줘서 고맙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이다.
식물은 뇌가 없어도 감정을 느끼고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식물 및 곤충생태학자 '릭 카번'은 식물은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내뿜어 다른 식물과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명금류(鳴禽類)는 위험에 처했을 때 소리로
다른 새들에게 경고를 하고,
가까이 자라는 해바라기는 보통 서로를 공격
한다.
그러나 친족관계의 해바라기는 아무리 빽빽
하게 심어도 다른 친족 해바라기에 그늘을
주지 않으려 서로 엇갈리게 줄기를 구부리며
사는 지혜를 발휘한다.
완두콩 새싹은 밀폐된 곳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물이 있는 방향으로 뿌리를
뻗고,
기생식물인 새삼덩굴은 땅에서 솟아오른
직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토마토 등
과즙이 많은 식물을 표적으로 선택한다니
선택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에 뇌가 없다고?
식물은 몸 전체 그 자체로 뇌와 비슷한
존재가 아닐까.
나무에 거짓말탐지기를 달아놓고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를 했더니 그래프가
묘하게 변하며 감정표현을 했다는 사실은
'식물엔 뇌가 없다'라는 과학계의 통념을
뒤집는 연구결과라고 할 수 있다.

< 25. 11. 20 >
말라비틀어진 꾸지나무잎에 벌 두 마리가
붙어있다.
첫눈이 왔고, 며칠간 영하의 날씨였는데
아직 살아있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벌은 낙천적인 동료가 옆에 있으면 감정전염
(emotion contagion)이 되어 긍정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마리가 붙어있었기에 살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브라질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질병과 싸우는 모기'인 '월바키아' 모기를
매주 8000만 마리 이상, 연간 50억 마리를
생산하여 다른 모기와 교미를 시켜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지 못하게 하는 이이
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기도 한다.
까마귀는 가족 중심으로 집단생활을 하고,
기러기는 동료애와 가족사랑이 대단하다.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에서는 까마귀를
훈련시켜 담배꽁초를 줍게 한다는 기사를
보고 많이 놀랐다.
도심 적응력이 뛰어난 까마귀가 수거장치에
담배꽁초를 주워다 넣으면 먹이를 준다는
보상체계를 이해하고 담배꽁초를 주워다
놓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거다.
비용이 꽁초 1개당 약 25원 수준으로 인력
대비 1/10 정도면 된다는데,
그렇다면 발암물질인 담배꽁초를 입에 물고
다니는 까치에게 별일이 없을까.
동물복지를 외면하는 그들이 이상해졌다.
사람의 성품은 잘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머리수술 후 인생관이 확
바뀌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난 후 동식물을
막론하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경이
(驚異)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존중하고 사랑
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낚시를 수술 후 바로 끊었다.
붕어, 피라미의 생명에도 소중함과 사랑을
느끼고 땅바닥에 지천으로 자라는 바랭이,
쇠비름도 가급적 밟지 않을 정도로 변했다.
요즘엔 TV 뉴스에 염증이 나 '세계테마기행'
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 '여행에 진심' 등
여행에 관련된 프로를 즐겨본다.
사람이 '양' 또는 '돼지'등 동물을 잡는 장면과
동물의 세계에서 포식자가 다른 짐승을 잡아
먹는 장면이 나오면 다른 채널로 돌리던지
Tv를 끈다.
사랑에 이유가 있던가.
자연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식물이 참 사랑
스러워도 쉽게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자연의 신비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점점 많아진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그 신비를 알 수가 없기에
답답해도 그냥 자연을 사랑하고 즐겨야겠다.
2025. 12. 13.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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