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4. 18;00
와! 첫눈이다.
바람을 타고 소록소록 내리는 첫눈이
순식간에 설국을 만들어가며 겨울은 성큼
다가왔다.
지나가는 사람의 우산에도 수북하게 눈이
쌓여가고,
짚 앞뜰 평화의 종을 지키는 소년도 눈사람
으로 변해간다.

강추위가 매섭게 찾아온 날,
송년회엔 영하 9도까지 떨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구리 장자호수 공원에 80여 명이나
모였다.
졸업 후 단일 행사로는 최대의 인원이
모였고 다들 스웨터에 두꺼운 패딩, 장갑과
목도리, 털모자로 완전무장을 하고 텃새가
된 가마우지가 장악한 호숫가를 걷는다.
겨울의 호숫길은 쓸쓸하고 황량하다.
그러나 여러 친구와 동행하는 길은 삭막
하지 않아 좋다.
추위로 손발이 오그라들고 얼굴이 시리지만
오랜만에 만나 나누는 대화가 오히려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 촬영자 大舟선생 >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가로수 사이로 난 흙길에
뽀얀 먼지가 휘날린다.
겨울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노구(老軀)의
목덜미 사이로 파고드는 시린 바람이 더
매섭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송년회를 세 번을 치렀으니 5회
정도가 더 남은 셈인가.
얼마 전 이금회 송년회에는 23명,
11월 22일 진천중학교 송년회에는 27명,
11월 24일 43 당구 모임에는 27명이 참석
하였고,
고교 송년회에는 81명이나 신청을 하고
78명이 모였으며 회가 거듭될수록 참가
인원은 점점 늘어난다.

며칠 전 어느 친구가 올린 '60살이 넘으면
필요 없어지는 것 3가지'에 대한 글을 읽으며
공감을 했다.
1위는 불필요한 '자존심 싸움',
2위는 '자랑질',
3위는 쓸데없는 '고집(固執)'을 말한 글인데
구구절절(句句節節) 맞는 말이다.
요점정리를 하면
작은 오해에도 사과를 하지 않고 질질 끌며,
체면과 이기려고만 하는 노년의 자존심,
가진 것, 자녀와 과거의 성취를 반복해서
자랑하는 행위는 외로움과 고립을 빨리
불러오게 한다며 노년의 고집을 경계하는
내용이다.
나는 거기에다 4번째를 추가해 '사소한
이득'을 경계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나이 먹어 사소한 이득을 탐하면 소탐대실
(小貪大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송년회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여러 친구의 현금과
상품권의 찬조 덕분에 더욱 풍성한 송년회가
되었고,
모처럼 참석한 야구선수출신 사업가 동창은
식사대 전액을 계산하여 친구들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버리고 버릴수록 삶이
가벼워지며 관계가 편해지고, 나누고 소박
하게 살수록 삶의 가치는 올라간다.
자존심과 자랑, 고집은 감정조절 곤란(Emo
tion Dysregulation)이라는 심리상태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냥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의견을 조율하며
조용하게 자기의 삶을 살면 훨씬 편안해지고,
자존심을 내려놓는 순간 인간관계가 부드러
워지고 마음이 안온(安穩)해지는 건 사실이다.
흔히 혈연, 학연, 지연을 삼대인연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60년이 다돼가는 학연(學緣)은
대단한 인연이 아닌가.

사랑과 우정은 같은 맥락일까.
우정(友情)이 친구 사이의 정(情)이라면,
사랑이란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또 보고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
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 아닌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해피엔딩(happy
ending)보다는 새드엔딩(sad ending)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우정도 원수로 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제 무엇으로 살까.
우정도 사랑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남은 여생(餘生)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르고 해가 저물어간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우리는 늙어간다.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고 정을 나누고 살아
가기에도 짧은 삶은 소멸(消滅)과 유한
(有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 글을 마무리하던 중,
개실, 탈장, 복막염 등으로 수년간 고생한
친구가 이번엔 '육종암' 진단을 받았다며
"인생 참 힘드네요"라고 보낸 문자 메시지가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적설량이 5cm를 넘어 8cm가 넘었다.
이렇게 함박눈 내리는 긴긴 겨울밤 내가
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2025. 12. 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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