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6. 19;00
아침에는 는개, 점심 때는 이슬비,
집에 들어올 때는 가랑비로 바뀌더니 지금
창밖에는 보슬비가 내린다.
종일 바람과 동반한 겨울비가 내리고 비를
바라보는 마음이 심란하다.
뜻밖에도 수십 년간 잊고 있었던 고교동창
고 한덕선의 부고(訃告)를 어제 받았고,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48년 전 1977년
5월로 돌아갔다.
육군 만기제대 후 주택은행 중곡동지점
으로 발령을 받았고,
인근 조흥은행 구의동 지점에 근무하던
고 김흥태 동창과 자주 낚시를 다녔다.
졸업 후 잠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귀향을 했던 한덕선 동창으로부터 '합덕
수로'에서 밤낚시를 즐기자는 연락이 왔다.
용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로
4시간 정도 걸려 당진에 도착하였으나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동창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예산, 당진은 초행이라 참 난감했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화물차
기사가 관심을 갖고 도와주겠다고 한다.
이름도 모르는 화물차 기사는 당진 고대면
항곡리 저수지에 우리 둘을 내려주었다.
5월이라도 밤은 추웠고 붕어 몇 수를
잡으며 홀딱 밤을 새웠다.
새벽 네시쯤 지나 먼동이 틀 무렵 그 트럭
운전사가 라면과 물을 가지고 나타나더니
우리를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너무 고마워 이유를 물었더니 항곡리
저수지에서 자살 등의 사유로 시체가 자주
떠오른다며 우리를 내려주고 밤새 걱정이
되었다며 먼동이 트기 전 나타나 라면을
끓여주는 인정을 베푼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사람은 당진 출신
사람이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이 싫었다며,
약속을 어긴 동창을 대신하여 친절을
베풀고 사과를 하는 거다.
그날로부터 48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뜻밖에도 그때 나타나지 않았던 동창의
부고를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 2025. 11. 6일 촬영한 서양 민들레 >
그때 낚시를 같이 갔던 친구도 꽤 오래전
고인(故人)이 되었고,
당진에서 약속을 펑크 냈던 동창도 어제
고인이 되었으니 세월은 전광석화(電光
石火)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사람들은 50대엔 한해한해가 다르다 했다.
60대에는 하루하루가 다르다 했고,
종심(從心)이 되고 나서는 시간시간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느 친구는 우리가 살아서 걸어 다니는 게
기적이라 했다.
기적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밤이 되면 새벽에 시작한 오늘 하루가
연기처럼 사라졌어도 우리의 하루하루는
기적의 연속이 아닌가.
그 하루하루를 애써 붙잡고 연결하고 삶이
라는 서사시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야말로
바로 기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2025. 12. 16. 밤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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