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9.
지하철을 타지 않고 단골 미용실 방향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꽉 막혀 답답한 전철을 타지 않고 가끔은
1,450원의 요금을 찍고 버스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괜찮다.
탁 트인 버스 유리창밖 겨울 거리의 풍경,
두툼한 패딩을 입은 사람들,
롱패딩 외투를 걸친 사람이 보이고,
모자를 쓰고 종종걸음을 걷는 어린이 옆
으로 어느 젊은이는 객기(客氣)를 부리는
건지 반바지 차림에 맨살 종아리를 내놓고
걸으며 인간세상의 천태만상(千態萬象)을
보여준다.
30여분 후에 미용실 대형 거울 앞에 앉아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집에서 거울을 보는 시간은 칼면도를 할 때
잠시뿐이고, 그 외에 가장 오래 볼 수 있는
시간은 미용실 의자에 앉아 맞은편 거울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바삐 움직이는 미용실 원장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고, 여기 원장이 내 머리카락의
커트를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퇴폐 이발관이 싫어 이 미용실을 처음 방문
했을 때가 주택은행 영등포역 지점장 시절
이었으니 30년이 다돼간다.
30살이 되지 않았던 원장이 어느새 60
고개를 바라보는 할머니 나이가 되었고,
40대였던 나는 종심(從心)의 나이가 지났
으니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의 무심함을
한탄해야 할까.
나는 한번 맺은 단골은 쉽게 바꾸지 않고
사람의 인연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강동 당구장과 식당을 출입한 지 10년이
넘었고,
다문화센터 알바근무도 6년차이며,
성심병원도 1993년부터 다녔으니 33년이
지났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이 쌓이고 익숙한 게
좋아서 쉽게 바꾸지 않는 거다.

그런데 요즘 변화가 생겨 인연을 버렸다.
지난주 거래은행에 들러 10여 년 동안 자동
이체로 납부하던 정당의 당비를 취소하고
탈당하였다.
Tv와 신문 등 매스컴을 대하면 대할수록
정치인들에게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의하면 구청장 5천만 원,
구의원 3000만 원, 시의원 1억 원이 집권
여당의 공천헌금 시세라고 한다.
"너 IQ 한자리야?, 널 죽였으면 좋겠다,
너 똥오줌 못 가려?"라고 막말을 한 장관
후보자는
아빠찬스, 아파트 부정청약, 영종도 땅 투기,
증여세 대납 의혹, 통일교 정치자금 후원 등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극한의
파렴치(破廉恥) 종합세트를 보여준다.
집권당 원내대표와 국회의원의 공천 헌금
수수,
부인의 구의회 업무추진비 사적 유용,
보좌관을 시킨 자녀들의 취업, 편입 특혜
의혹 등,
캐면 캘수록 점점 많아지는 빌런(villain)급
국회의원의 각종 비리와 갑질행위가 연일
터지고,
그들이 뻔뻔한 얼굴로 고개 빳빳이 들고
다니며 하는 행동과 언어를 더 이상 보기가
두렵다.
성추행 의혹, 인사 청탁, 돈으로 사는 공천,
고성과 명령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사과는커녕 교묘한 변명과 반격은 기본이고,
특권의식을 행사하면서 갑질 철폐라는
인두겁을 쓴 국회의원들의 행태에 나만이
진저리를 치는 걸까.
참으로 부끄럽다.
(전)대통령이라는 작자는 매일 밤 폭탄주나
마시고,
어설픈 병정놀이로 계엄을 선포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더니 재판에 나와 부하 탓과
변명으로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이
국회, 행정, 사법 등 삼권을 장악했고,
심지어는 방송과 언론, 특검을 손 안의
공깃돌을 가지고 놀듯이 독재(獨裁)를
마구 휘두른다.
거울 속에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바라
보며 며칠 전 작고한 고 안성기 배우를
떠올린다.
사람들은 그를 '수행하듯이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아들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정직하며 남을
사랑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랐고.
"일에는 최선을 다하고, 시간을 꼭 지킬 줄
알며, 실패나 슬픔을 마음으로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돼라"라고 했으며,
또한 "어떠한 어려움 앞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라, 그러면 나갈 길이
보인다고도 했다."
그는 겹치기 광고 출연의 탐욕을 억제했고,
출연료를 인상하지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의 국회의원 금배지 제안도
뿌리쳤다.
혈액암으로 투병 중에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거금을 기부하였고,
연기에만 전념을 하며 배우의 자긍심을
삶의 품격으로 승화시킨 안성기 배우,
캐면 캘수록 '베풀고, 배려하고, 양보하고,
나누는' 미담만 나오는 고 안성기 배우야
말로 배울 게 많은 배우요, 혼탁한 이 세상의
진정한 사표(師表)이자 '큰 바위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과 사람이라,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세상에서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을 할까.
이제 그들을 '된사람, 든 사람, 난사람'으로
구분을 하는 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살이에도 양극화 현상이 심하지만
사람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양극화
되었고 중용(中庸)을 지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세상에 필요한 건 착한 사람이다.
안성기 배우가 사라진 세상에 그 배우처럼
착하고 괜찮은 어른이 또 어디에 있을까.
2026. 1. 9.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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