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55 사라진 길

김흥만 2026. 1. 19. 16:33

2026.  1.  19.  08;00

 눈길을 걷는다.

어제도 걷던 길 오늘도 걷는다.

 

노란 민들레도, 제비꽃도 사라진 길, 

실개천의 물과 갈대, 억새, 쇠백로가

사라진 길에 눈바람과 적막만 남았다.

 

그러고 보니 사람도 사라졌다.

이 시간이면 하얀 점퍼를 입고 나타나던

여중생,

발 앞꿈치로 걸으며 보법이 이상한 여인,

 

휴대폰을 보며 팔자걸음을 걷던 여인,

강아지 두 마리와 산책을 하던 할머니,

 

폐지를 담으려 리어카를 끌던 할아버지,

내 앞에서 담배연기를 휘날리다 잔소리를

들은 사람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내 손을 노려보던 비둘기 떼가 사라진 길,

그리움도 사랑도 슬픔도 사라지고, 아픔만

남은 길에 눈만 쌓였다.

 

된바람 몰아치고 겨울이 깊어간다.

사람들은 봄을 소생(蘇生)이라 했다.

 

여름은 초록이 떨어지고, 가을은 익어가고

겨울은 깊어간다고 했는데 어느새 대한

(大寒)이 내일이다.

곡선을 따라 길이 사라졌다.

소실점(消失點)이 보이지 않는 겨울의 굽은

길은 인생길이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덕유평전으로 내려가던

길, 삿갓봉의 갈짓(之) 자 길, 속리산 말티재,

계방산 운두령, 설악산 한계령, 정선 싸리

가 엄청 구부러진 길였지.

 

수십 년 세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던가,

때로는 직선길을 걸었고,

꽃길, 들길, 산길, 거친 길을 걸으며

그나마 남겨졌던 그리움과 사랑을 음미하곤

했는데 소실점과 함께 사라진 길이 그립다.

 

지갑 속에 명함이 사라진 지 18년,

어제는 지인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려 전화를 

누르려다 멈췄다.

 

모든 환경이 달라졌고 전화를 받은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통화버튼을 끝내

누르지 못했다.

 

지금 나에게 남은 길은 무슨 길일까,

황혼의 길일까,

마음의 길일까,

영원하지 않은 길일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길에서 사라진 무수한 것들과 함께 세월도

사라졌구나.

 

모든 게 사라진 길 위에 겨우 남은 눈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어도 지금 걷는 이 길을

내일도 모레도 살아있는 한 계속 걷겠지.

 

               2026.  1.  19.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