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30. 20;30
1주일 만에 컴퓨터를 켠다.
좌안(左眼)의 시력은 점점 사라져 가고,
아직은 멀쩡한 우안(右眼)이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에 컴퓨터를 열기가 점점 무서워진다.
송승환 예술감독은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사물이 5cm 이내로 가까이 와야 형체를
겨우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나도 왼쪽눈이 황반변성으로 5cm 앞에
사물이 와도 분간하기 어렵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참 난감한 노릇이다.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 18여 년
동안 거액을 지불하며 숱하게 맞았던
'아일리아' '아비스탄' '루센티스' '아멜리뷰'
'바비스모' 등 눈주사약 이름이 생각난다.
다행히도 작년에 '바비스모' 4번을 맞은
이후 유지관리가 되는 편이라 추가로
맞지는 않았다.
일본에선 줄기세포로 치료를 한다고 하고,
여러 제약회사에서 희망의 소식을 수시로
발표하지만 나에겐 너무 먼 당신인지 희망
고문에 불과하니 참 딱한 노릇이다.
은퇴 후 혈압과 당뇨병이 없는데도 불구
하고 황반변성이 시작되었다.
주치의는 책을 너무 많이 보고, 등산이나
야외활동을 할 때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아 자외선을 많이 받은 영향이라 했다.
처음엔 절망도 했고 스스로에 대해 원망도
해봤지만 다 쓸데없는 생각일 뿐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익숙해졌다.

오늘도 당구를 치며 초점이 맞지 않아
두 번이나 cue miss를 냈다.
큐질은 조금 좋아졌지만 공이 가까울수록
초점이 맞지 않으니 난감할 때가 많다.
이젠 눈으로 본다기보다는 몸의 근육이
기억하는 대로 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눈이 더 좋아질 순 없지만 더 나빠지지
않고 현상유지 중이니 말이다.
인체에서 눈이 두 개요, 귀가 두 개요,
콩팥도 두 개요, 손과 다리도 두 개라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가.
내 인생 사전에 번아웃(burnout)은 없다.
독서는 수년 전에 포기를 했지만 안 보이는
걸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씩 찾다 보면 적응하지 않을까.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를 잃으면 다른
하나를 얻는 모양이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도 기억력은 예전보다
더 좋아졌는지 애쓰지 않아도 기억이 필요
하다면 한 번만 보고 들어도 memory가
되기에 마음으로 보려 노력한다.
눈을 감고 있으면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도,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도 주마등
처럼 생각난다.
한쪽 눈으로 간신히 읽은 신문이나 습득한
정보가 바로바로 메모리가 되고 필요할 때
마다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20;42
자판을 두드린 지 10여분이 지났다.
눈에 피로가 살짝 몰려와 지그시 눈을 감고
정적명상에 들어간다.
어릴 때 놀다 다쳐서 한쪽눈이 거의 실명
상태로 평생을 살아온 둘째 형과 수많은
시각 장애인들은 어려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이제 글은 주제와 무관하게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쓰는 게 익숙해졌다.
오늘도 630만 원짜리 김장조끼에 대해서
글을 쓴다는 게 엉뚱하게 눈(眼) 타령이나
하는 글을 쓰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후엔 제법 강한 된바람이 불더니 밤이
되자 잠시 멎었다.
바람소리 사라진 사이에 친한 친구가
'갑상선암'으로 서울대병원에 예약을
하였다고 소식을 전한다.
친구나 지인들에게서 아프다는 소식이 들어
올 때마다 가슴이 휑해진다.
나에겐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인가.
2026. 1. 30.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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