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971 사라진 매지구름

김흥만 2026. 3. 31. 17:32

2026.  3.  31.  04;00

밤새 내린 봄비에 뜰이 촉촉이 젖었다.

조금 전엔 안개보다 조금 굵은 는개가

내렸는데 는개는 다시 보슬비가 되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빗소리와 흙냄새

아련하게 가슴을 흔든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는 이렇게 조용

내리는 비를 윤물무성(潤物無聲)이라

했고,

한유(韓兪)는 보슬비를 초춘소우(初春

雨)로 불렀다.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대지는 점점

메말라가고 산불이 수시로 일어날 때

하늘과 사람이 서로 반응하고 연결된

모양이다.

 

천인감응(天人感應)이라,

때맞춰 보약 같은 봄비가 내리니 말이다.

                   <  하남향교 만첩홍매화 >

 

사람들은 중동전쟁에도 불구하고 비를

애타게 기다렸고, 이럴 때 내리는 비를

단비, 꿀비, 약비, 복비라며 반가워한다.

 

들판의 농부는 비가 내리면 할 일이

많아지기에 '일비'라 하겠지.

 

조선에 전국적으로 큰 가뭄이 들었고

3대 태종임금이 죽던 날인

1422년 음력 5월 10일 큰 비가 내렸다.

 

해마다 그날만 되면 비가 내려 사람들은

태종우(太宗雨)라 불렀고, 작년에도 6월

5일(음력 5월 10일) 태종우가 내린 걸

기억한다.

 

요즘 관람객 15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주인공 단종(端宗)이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 가서 죽은 날

1457년 음력 10월 24일 비가 내렸고

영월사람들은 그 비를 단종우(端宗雨)라

불렀다.

 

인조반정으로 제주도에 유배된 광해군이

1641년 음력 7월 1일 죽었는데 그날 비가

내렸고 제주 사람들은 그 비를 광해우

(光海雨)로 이름 붙였다.

 

아이러니(irony)하게 광해군이 강화도로

유배 보낸 이복동생 영창대군이 죽던 날

1614년 음력 2월 10일에도 비가 내려

'살창우(殺昌雨)'라는 이름이 생겼으니

섬뜩하다.

 

왕이 죽거나 왕이 억울하게 죽으면 하늘

슬퍼해 비가 내린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장마나

저기압의 영향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맨몸으로 맞아도 차갑지 않을 것만 같은

봄비가 목련 꽃망울을 촉촉하게 만든다.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를 맞은 나무들은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고,

벚나무는 이제부터 벚꽃세상이라며 마구

함성을 지른다.

 

09;00

비를 머금었던 검은 조각구름 '매지구름'

슬그머니 사라지고 하늘은 파란 맨몸

보여준다.

 

비 그친 뒤 공기가 싱그럽다.

생명수를 먹은 나무와 풀이 내뱉는 흙냄

새가 길을 걷는 나의 몸을 가볍게 해준다.

 

목련 꽃잎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무에 앙증맞게 달려있던 벚꽃봉오리

일제히 '벙글기'시작했다.

 

이 녀석들은 따사한 봄햇볕이 닿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리며 영롱한 꽃빛발로 온

동네를 물들이다 지치면 꽃비로 변하겠지.

 

                2026.  3.  31.

                     석천  흥만  졸필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