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24. 11;00
백수 된 지 18년,
오늘 두 번째 야단을 맞았다.
근무 시간이 끝난 11시 정각,
사무실에서 나오는데 복도에서 마주친
옆방 아주머니가 이 시간에 나가면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다.
당구장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점심식사 후 귀가를 한다고 했더니
"아직도 한창 일할 나이에 놀 생각만
한다"라고 핀잔을 주는 거다.
아직 농담을 주고받을만한 사이도
아니고 평소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례
정도만 하고 스쳐 지났는데,
오늘은 놀 궁리만 한다고 농담 비슷한
면박을 주니 참 난감하다.

< 박태기나무 >
정년퇴직 후 2008년 검단산 곱돌 약수터
에서 어떤 아주머니한테 "멀쩡한 사람들
이 일은 안 하고 평일에 산에 왔다"라고
핀잔을 들은 지 18년 만에 비슷한 야단을
맞은 거다.
평소에 나를 눈여겨본 모양이라,
이럴 때는 웃어야 할까, 아님 울어야
할까 난감해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따지고 보면 아직도 이 나이에 마음은
이팔청춘이라 예쁜 여인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불의(不義)나 지는 운동경기
를 보면 씩씩대기도 한다.
나이에 비해 기억력도 쓸만하고,
내 블로그 '느림의 미학'은 방문자가
15만 명이나 될 정도로 늘었고,
황반변성 등 고질병만 빼면 감기 한번
걸리지 않는 체질이요,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머리카락을 너무 까맣게
염색을 하고 턱수염을 깔끔하게 밀었나,
아니면 젊은이들이 잘 입는 청바지를
입고 다녀서 나이를 잘못 보았는지 여러
생각이 들었다.

2008년 병원에서 장애판정을 받고
'국민연금 강동지사'에 들려 장애연금을
신청했더니 담당 여성 책임자가 정장을
한 내 외모만 보고 멀쩡하다며 서류접수
를 거부하였다.
종합병원에서 발급한 '신경학 검사
결과지'를 추가로 제출하면서 접수거부
를 했던 직원에게 사과를 받았고,
많은 기간이 흐른 후 장애연금 대상자로
결정이 났지만 이미 국민연금을 받고
있어 이중으로 받을 수 없다는 규정에
의하여 장애연금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또 비슷한 야단을 맞았으니
나이를 밝히기도 난처하고 그냥 웃어
넘기자니 조금 부담스럽다.
앞으로 마주칠 때마다 내가 빈둥거리며
'놀궁리만 하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대할 테니 말이다.
정년퇴직 후 18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지점장실에서 서류결재를 하는 꿈을
자주 꾼다.
일자리 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봉급쟁이 출신으로 망팔(望八)의
나이가 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자영업을 하기에도 너무 벅찬 나이가
아닌가.
도전할 목표 없이 단순하고 느리게
살고싶어 bucket list도 없앴는데
이름도 모르는 그 아주머니가 말
한마디로 백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2026. 4. 2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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