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이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TV에서 한 어린이가 누군가의 하모니카 반주에 때 묻지 않은 맑은 목소리로
동요 <오빠생각>을 부른다.
순간 난 가슴이 울컥한다.
오빠생각은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동요이다.
1925년 11월에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처음 실렸다.
이 동요가 작곡되고 불리던 시기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 동요에 '비단 구두 사러갔다는 오빠'는 조국을 위해,
동생이 기다려도 항일운동을 떠난 아름답고 가슴 아픈 노래라는 평가도 있다.
설상화를 신었어도 발이 시려 발을 동동 굴러가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보초를 설 때
지루함을 달래가며 입 속으로만 흥얼거리던 '오빠생각'을 오랜만에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지며 37년 전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세계에서 전방보초란 철저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수시로 순찰을 도는 간부들에게 조는 모습을 걸렸다간 한참 애 먹는 건 예사라,
담배를 피울 수도 없고 소리를 낼 수도 없으니, 매서운 추위 속에 교대시간만
하릴없이 기다린다.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는 식상하니, 난 동요로 외로움과 고독을 달랜다.
입속으로만 흥얼거리던 동요는 '오빠생각, 나뭇잎배, 섬집아기, 우리들 마음' 등으로
웬만한 동요는 2절까지 부른다.
즐겨가지 않는 노래방에 오랜만에 가면 동요나 부르니 친구들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고, 신곡을 배우자니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난 대중가요 보다 동요가 더 좋으니 나이를 헛먹었나 보다.
지금도 동요를 부르면 마음과 영혼이 맑아지며 순수해지는 것을 느낀다.
산에서도 숨이 막히도록 힘들면 흥얼거리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민원이 생겨 갑갑할 때도 흥얼거렸다.
내 나름대로 엄청나게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데도,
누가 봐도 태평인체 하는 내 행동은 동료직원, 친구들, 심지어는 내 아내도 몰랐으리라.
항상 긍정적으로 처리하는 것만 봤지 조바심하고 서두르는 모습은 결코 보여주지
않았으니 바로 동요의 덕일까?
1982년 주택은행 송파지점 건물 2층에 단란주점이 처음 생겼을 때 난 마이크를 잡고
오빠생각을 부른다,
내가 봐도 구성지게 음악의 반주에 맞춰 잘 불렀던 모양이다.
같이 술 한 잔 하던 직장후배가 감동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다음에 생긴다.
나한테 결혼주례를 서달라고 간곡히 부탁한다.
내 나이 31세인데 주례라니, 물론 설 수 없다고 거절을 하지만, 그 후배는 집요하게
부탁을 한다.
다른 사람은 필요 없고 영혼이 맑은 형님한테 부탁한다며 하기에
할 수 없이 승낙하고 예복을 맞춘 후 결혼이 연기되는 바람에 주례를 서진 않았다.
'오빠생각'한곡 하고 주례를 설 번한 에피소드가 생기니,
그 이후에도 주례부탁이 많이 들어온다.
스트레스를 받을 거 같아 매번 다 거절하고 서진 않는다.
아마도 그 때가 몸이 마비되어 오던 시기였다.
구미출장 후 며칠간 밤샘 작업에 31세의 젊음도 무색하게 과로로 쓰러졌다.
다행히 다리는 무사했지만 오른 손부터 어깨, 가슴, 목까지 마비가 되었다.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순천향병원에선 <상완신경총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고,
경희대병원에서는 뇌졸증 즉, <풍>이 왔다고 한다.
당시 은행 대리라는 직책은 무척이나 바쁜 자리였다.
일부 마비된 팔로 하루에 결재도장을 3천 번 이상이나 찍으며, 몰려드는 고객에 질릴 정도로
바빠 제대로 치료를 받기도 힘들었다.
먼 훗날 <풍>이 아니고 <뇌척수공동증과 뇌종양>의 영향으로 밝혀져,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서야 서서히 정상으로 회복중인데,
정확히 밝혀지기까지 24년이 걸렸다.
그것도 손가락 마비가 심해져 걱정하는 시기에 종합검진에서 우연히 머리의 MRI검사를
옵션으로 선택하는 행운이 찾아와 밝혀졌으니 말이다.
아마도 2006년 그 시기를 놓쳤으면 전신마비에서 사망에 이르는 매우 안타까운 몸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28년간 불편한 몸을 악화되지 않게 유지하였던 것은 신앙이 되어버린 매주 산행의 즐거움과
마음을 순수하게 해주는 동요의 힘이었으리라.
난 금년 결혼한 아들의 아기 소식이 많이 기다려진다.
아기 앞에서 <브람스의 자장가>뿐만 아니라, <슈베르트의 자장가> 등 수많은 동요를
불러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뻐꾸기의 '뻐꾹뻐꾹'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깬다.
한국 농촌의 향수를 떠올리는 새인 뜸부기는 70년 이전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매우 희귀한 여름철새이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다 여름에 도래하는데,
최근엔 천수만, 안산 갈대습지, 낙동강하구 등에서 많이 보인다고 한다.
자!
우리 동요를 가까이 하자.
동요(童謠)는 어린이의 정서에 맞는 언어로 어린이의 꿈, 희망, 심리적 상황을 표현한
노래이나 우리같이 은퇴 세대에도 잘 어울리는 동요도 많다.
나이를 먹어가며 노욕과 추함, 욕심과 무거운 삶의 짐에서 해방되려면 동요에 관심을 갖자.
2010. 7. 12 무더운 날 막걸리 한잔하고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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