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은퇴는 신의 은총이다." 라고 나는 자신 있게 말 한다.
조직생활에서 얻어지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은퇴는 '신의 영역'이 아닌
'백수의 고유 영역'이다.
군대생활을 포함해 거의 40여 년 동안이나 조직생활을 한 셈인가.
직장 다닐 때와 은퇴 후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나는 한참 멀었고 은퇴는 남의 일이려니 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막상 내게 닥치면 혼란스럽다.
은퇴 후 해야 할 일을 미리부터 챙기고, 준비한 사람들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허둥댄다.
[전화]
"술 한잔하자, 밥 먹자." 하던 주변사람들, 수많은 거래선들, 동료들과의 만남도
뜸해지며 전화도 뜸해진다.
그나마 간혹 만나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사람들도 2달 지나, 2년 지나니
전화하기가 오히려 민망해진다.
배터리가 부족할 정도로 걸려오던 전화도 적막강산이다.
직장에 남아있는 후배직원들이 어쩌다 전화해 "전화 좀 하시라."고 한다.
그들은 현역이라 바쁘고 난 백수인데 바쁜 사람들에게 밥이나 사라고 하는 거 같아
막상 전화를 할 수 없다.
나도 현역 시엔 지인과 선배들에게 그런 전화도 해봤지만 막상 약속을 잡으면,
공교롭게 거래선과의 중요한 일, 본부회의, 교육 등 스케줄이 겹쳐 실수도 많이 했다.
[언어]
지인 한 사람은 분노를 표한다.
"그 놈은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전화 한번 안 한다." 라고
데리고 있었다니? 누가? 누굴?
난 이 말이 무척이나 싫다.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도 당연한 말로 '데리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직급이 아래였던 사람들도 자기가 상사보다 나이가 좀 많았으면 '데리고'
있었다고 표현하는데 이들은 그 사람들을 욕 할 자격이 없다.
<데리고>가 아닌 <동료로 같이 근무했던 사이> 정도로 표현을 하고,
진즉부터 마음가짐을 그렇게 가졌더라면 그 사람들이 아무리 바뻐도 안부전화 정도는
할 정도로 이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욕]
웬걸 한수 더떠 직장을 욕한다.
"청춘을 바쳐, 목숨을 바쳐 평생을 일했는데 서운하다 XXX 들!" 이라며~~
이건 아니다.
웬 청춘을 바쳐?
직장은 은퇴하기까지 우산이 되어 주고, 그늘이 되어 주고, 방패가 되어 주고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린 신성한 곳이었는데 욕을 하다니?
더욱이 두둑한 퇴직금까지 주어 풍족하진 않지만 노후생활을 하게 해주고,
그동안 반반씩 부담했던 국민연금도 타게 해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직장이냐.
[명절선물]
일 년에 두 차례 오는 명절선물은 내가 할 곳은 줄지 않았는데, 우리 집엔 선물상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깝게 지냈고 자주 만나는 후배직원들의 사과상자만 덩그러니 보인다.
[돈과 통장잔고]
통장잔고는 줄어 드는데, 청첩장은 나이와 지위에 걸맞게 점점 더 쌓인다.
웬걸?
생각도 하지 않았던 지역의료보험 청구서가 제일 먼저 날라온다.
그것도 팔리지 않은 APT 덕분으로 1가구 2주택에 승용차 2대라고 몇십만 원 고지서가
날라오니 기가 막히다.
그 다음에 날라 오는 것이 국민연금 고지서이다.
내 기준으로 최저 108,000원이었는데 요즘은 얼마인지 모르겠다.
주식도 해보고 이것저것 신경을 많이 쓰는데 100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
억대가 넘는 연봉시절에 100만 원 쓰기란 참 쉬웠는데, 씀씀이를 줄이는 것 만이
재테크가 되니 가슴이 콩알만해진다.
[대출]
아들 혼사로 비상자금 확보차 은행문을 두드리니 은행 지점장 출신인데도 DTI 규제로
대출한도가 나오지 않는다.
소득이 없다나?
제기랄!! 부동산을 사는 것도 아닌데~죽일놈들!!!
[아내]
집안 서재에 박혀 버텨본다?
아내는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사내는 눈 뜨면 밥 먹고 나가는거."라고.
"평생 먹여 살리며 부양했고, 나갈 데도 없는데 나가라니?"
"누구는 놀고 먹었냐" 하며 당장 반격이 들어오며 큰 싸움이 난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직장 다닐 때 따뜻하게 대해 주던 아내는 변한다.
더 이상 아내는 남편과 가족에 내조해 주던 역할에서 벗어난다.
그 만큼 가정에서의 내 힘과 영향력은 반비례로 줄어든다.
<봉길>이는 말한다.
은퇴 후 "제1의 적은 마누라"라고,
아내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성공한 은퇴가 될 거라고 말이다.
[밥]
한 친구는 "아침 7시30분에 밥을 안 주니 눈물이 핑 돌더라."라고 말한다.
출근을 안 하니 천천히 밥을 차려주려고 하는 모양인데, 배고프면 아내의 손을
빌리지 말고 스스로 차려먹지 그 걸 못 참고 현역 때와 똑같이 하려고 하면 혼난다.
신분의 변화는 이렇게 사소한 부분부터 변한다.
그동안 끼니때만 되면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던 아내였지만,
아내도 나이 들면서 점점 할 일이 많아진다.
틈만 나면 헬스, 쇼핑, 취미생활, 모임 등 밖에 나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따라서 아내한테 붙어 다니는 신세가 되기엔 처량하지 않은가?
홀로 멍하니 거실에서 TV나 보고, 서재에서 책을 보고 있을 때,
아내는 밖에서 식사하고 들어가니 '짜장면'을 시켜 먹으라며 전화를 한다.
가장이 집을 지키고 있어도 별반 신경을 쓰지 않을 나이이다.
텅 빈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 먹으려니 괜히 심사가 뒤틀려진다.
자세히 관찰을 해보자.
현역일 때 신바람 났던 아내도 남편이 은퇴한 후에는 원기도 약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풀이 죽었다.
축 처진 어깨와 나이 드는 얼굴이 그저 안쓰러워진다.
이젠 가사노동에서 해방되어 바깥바람을 좀 쐰들 탓할 일이 아니다.
난 밥을 썩 잘한다.
고교시절부터 무려 7~8년 되는 자취생활에 소리만 듣고도 안다.
쌀을 고르는 방법, 이는 방법을 잘 알기에 냄비밥, 전기밥솥밥 등 다양하게 잘한다.
특히 아들은 내가 해주는 '냄비밥'을 좋아 한다.
가끔씩은 가족들을 위해 밥 한 끼 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등산]
외환위기시 각 등산로 입구에 있는 등산복과 장비대여점이 한동안 인기였다.
정장차림에 집을 나서서 갈 곳 없으니 빌려 입고 산에나 갈 수 밖에 없지.
난 그 심정을 그 당시엔 몰랐지만 이젠 이해가 된다.
은행 동기들과 지난 7월초 금요일 검단산등반을 하며 약수터를 지나는데,
나이가 비슷한 아주머니들이 지나치며 한소리 한다.
젊은 사람들이 "출근은 안하고 왜 산에서 서성이느냐." 라며,
민주노총에서 파업지시를 해 산에 왔다고 둘러대지만 기분이 묘하다.
은퇴 후 2년간 평일, 휴일 가리지 않고 전국의 산을 누비는 중인데,
막상 그 이야기를 들으니 순간 난 당혹감을 느낀다.
[불면증]
불면증이 온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기대수명을 다 살려면 20년 정도를 더 살아야 하는데 불투명한 장래가 불안하다.
자식들 교육, 결혼, 노후대책 등 변화된 신분에 누구든지 당황하고 불안해 한다.
잠이 안 오는 건 당연지사이다.
자려고 하면 눈은 점점 초롱초롱해지고, 성을 쌓았다 무너뜨렸다 하며 온갖 공상을
하지만 결론도 나지 않고 겁만 날 뿐이다.
[우울증]
계속되는 잠 부족에 서서히 우울증으로 들어선다.
말도 없어지고 모든 것이 짜증만 난다.
아파트 입구에서 인사를 하는 경비 아저씨도 부담스럽다.
출퇴근시간 이외의 시간에서 만나는 이웃 주민들의 시선도 부담스럽다.
은행에 가면 직원들이 알아보는 것도 부담스럽고, 알아주지 않으면 오히려 서운하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전부 나를 주시하는 것 같다.
기분 나쁘게 왜 날 쳐다보지?
낙엽이 떨어져도 다른 데 안 떨어지고, 하필이면 왜 내 머리에 떨어지나?
하필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만 떨어지나?
나만 낙오 된 인생인 것 같으니 식욕도 떨어진다.
점점 세상과 담을 쌓고 멀어지기만 하니 강물을 무한정 주시하게 된다.
오래되는 불면증은 당뇨병과도 직결된다.
잠이 안오니 술을 먹고, 수면제를 찾는다.
가깝게 지내던 직장선배 몇 사람은 자살의 길을 택하여 비극으로 생을 마감했다.
[마(魔)의 2년]
직장 선배들은 정년 후 마의 2개월~2년이라 하며 2년이 고비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 기간 중에 돌연사가 많았다.
은퇴 후 술 한 잔에 코고는 소리가 미안해 아내와 같은 방에서 자지 않고,
다른 방에서 자다가 응급조치도 못한 상태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기도 했고,
잠복하고 있었던 각종 성인병, 질병이 튀어 나온다.
정기적인 건강검진이 꼭 필요할 때이다.
건강검진에 드는 돈을 아끼지 말고 병원을 가까히 하여야 한다.
[자식에게 올인]
뇌종양 수술하고 얼마 후 과거 주택은행시절 지점장으로 모셨던 고교 대선배님이
찾아 오셨다.
'정수기' 한 대 사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난감해 본부와 상의해도 답이 안 나온다.
이미 지점에는 3대를 렌탈해 쓰고 있으며,
집에도 그간 이런저런 사정으로 3대나 있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다.
사정을 알아보니 <자식에게 올인>하여 생계자금이 막막하다고 한다.
가격은 약 3백만 원대라며,
나 역시 수술 직후라 항암단계는 아니더라도 막대한 병원비에 애를 먹고 있는 중인데
난감하다.
또 한 친구는 퇴직금과 집까지 팔아 자식을 조기 유학 시키고,
본인은 동가숙서가식(東街宿 西街食)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가 죽으니,
죽는 순간 외국에 있는 부인과 자식이 연락을 단절해 버린 황당한 일도 있었다.
제발 자식들에게 올인 하지 말자,
모든 것을 다 내주는 순간 뒷방 늙은이가 되며, 용돈이나 구걸하는 처량한 신세가 된다.
다른 놈들 다 그래도 내 자식은 안 그런다?
믿을 걸 믿어라 환상일 뿐이다.
숨이 끊어질 때까지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기지 말고, 통장을 내 주어선 안되며,
자식들이 스스로 찾아올 때 용돈을 주면서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평안]
빨리 마음의 평안을 찾아야 한다.
누구든지 한 번씩은 다 겪는 과정이기에 당연한 일에 속병을 앓지 말자.
어렵고 힘들면 친구들에 의지하고, 속내를 털어 놓고 대화도 하며,
산이라는 대자연에 온 몸을 맡겨 호연지기를 기르며 심신을 수련하는 것도 좋으리라.
[결론]
친구를 많이 만나라!
은퇴는 인생의 낙오가 아니다.
경직된 조직에서 벗어나 해방되었으니,
은퇴는 자유롭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신의 은총>이다.
2010. 7. 29 백수 2년차를 넘기며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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