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18. 06;00
어이쿠!
미끄러졌다.
난간을 잡은 팔에 상처가 나면서 80kg
의 육중한 엉덩이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최근 황반변성이 심해지면서 보행에
많은 조심을 했는데도 숲길에서 자빠
졌으니 난감하다.
좋아서 평생 신앙이 된 산행도 조금씩
줄였고,
계단길을 오르내릴 때도 조심했다.
약속도 가급적 가까운 곳으로 정하고,
익숙한 길로만 다니려 했는데 말이다.
밤새 120mm 이상 비가 내렸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의 유혹에 우화
(雨靴)를 신고 나왔으니 할 말이 없다.
사실 산책을 나가야 할지 잠을 더 자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고,
친구에겐 비가 많이 오니 산에 가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고 나는 숲 속으로
들어왔으니 전형적인 이율배반(二律
背反)이 아닌가.
맞다 나에게 빗소리는 유혹이고 실행은
습관이다.
비가 와도 평생 습관이라 유혹을 뿌리
치지 못했고 산길을 자박자박 걸으며
십여분이 지나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빗소리는 점점 더 요란해진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산책을 하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일상의 멈춤은 아니지만,
혼자서 어둠 속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자유롭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위로 접히는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우산을 접을 때 빗물에 젖을 확률이
많이 줄었지만 확연히 무게를 느낄
정도로 무겁다.
조금 빠르게 걸으며 무거운 우산을
펼치다가 몸이 미끄러지며 데크길의
난간을 잡다가 손을 놓쳐 버린 거다.
이런~
찰파상을 입은 팔에 살짝 통증이 오고,
다행히 고관절은 이상이 없어 걸을 만
하다.

사실 밤새 비가 많이 내렸고,
오늘같이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숲 속의 산책을 삼가는 게 이성(理性)
인데, 그놈의 빗소리가 좋아 감성(感性)
에만 빠졌던 모양이다.
고집과 아집의 차이,
유혹과 습관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습게도 고집과 아집, 습관과 고집은
많이 닮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스스로 미련을 떨다가
엉덩이는 다 젖었고 팔에는 상처가
넓게 생겼으니 할 말이 없다.

< 며느리밑씻개 >
난간을 잡고 일어나며 잠깐이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넘어졌어도 다친 데가 없으니 다행이
아닌가.
내일도 오늘같이 일어나고, 여전히
식사하고, 웃으며 사람을 만나고,
산책을 즐기는 소소한 행복은 변함이
없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두 개의
콧구멍으로 냄새를 맡고, 손과 발이 각
두 개씩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가.
삼십여분이 지나자 등판이 질펀하게
젖어 들어가고 내 몸의 많은 세포들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길가에 무성히 자라는 '며느리밑씻개'
를 바라보며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새벽이다
2026. 7. 18.
석천 흥만 졸필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느림의 미학 1006 테토남과 에겐녀 (0) | 2026.07.23 |
|---|---|
| 느림의 미학 1004 명징(明澄)한 세상 (0) | 2026.07.17 |
| 느림의 미학 1003 영리한 자연과 영악한 사람 (0) | 2026.07.13 |
| 느림의 미학 1002 참 교육 대상자 (0) | 2026.07.12 |
| 느림의 미학 1001 천일야화 '세헤라자드' (1) | 2026.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