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122 가끔은 흔들려 보는거야 과유불급(過猶不及)

김흥만 2017. 3. 24. 22:48


그래 가끔은 흔들려 보는 거야,
자신에게까지 숨길 필요는 없다.

 

여의도 이금회 점심모임 공식석상에서 유호영이 짜증을 낸다.

"김흥만이가 카페에 너무 많은 글과 자료를 올려 머리가 아프다"라고 하며,

"김흥만이 니 전용 카페가 아니니까 자제해라"라고 한다.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될 텐데, 허긴 눈치 없이 많이도 올렸지.

내 나름대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 애쓰는데

여러 친구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나도 짜증이 난다. 

 

43카페는 우리 친구들의 구심점으로 활력소가 된다.

오랜 세월 흩어졌던 동창들을 모이게 하고,

단결된 조직을 만들어주는 매우 훌륭한 역할을 해 준다.

 

카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고 이재백 친구가 불귀의 객이 되었기

잠시나마 공백을 메꾸고자 내 스스로 그 역할을 자임한다.

볼거리, 유익한 자료, 읽을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자,

내 개인메일을 열어 놓으니 여러 도우미들이 각종 자료를 보내 준다.

자료를 미처 읽어 보지도 못하고 카페에 올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영양가 없는 것을 올린다." 라는 말도 들었고,

"김흥만이가 할 지랄이 없어서 올린다."라는 말도 여러번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많은 자료와 글을 올리면서도 보고 즐거워 할 친구들을 상상하며

늦게 찾아 온 기쁨으로 힘든 줄 모르고 작업을 한다.

늦게 찾아 온 기쁨은 그 만큼 늦게 떠나가니까.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이었나?

역지사지(易地思之)인데,


말 그대로 자유게시판이라,

많은 자료로 즐거워 할 친구들만 생각했고 싫어 할 친구들은 생각도 안했다.

지천명(知天命)을 지나 이순(耳順)이 가까운데도

물이 고이면 썩어 들어가는 것 처럼,
내 스스로 비울 수 있는 힘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번은 흔들린다.

그래 가끔씩은 흔들려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

메일에 축적되었던 많은 읽을거리와 볼거리를 과감하게 삭제한다.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쌓아 둘 필요가 없기에,

욕 먹어가며 해야 될 이유가 없기에,

욕심과 집착을 버리자.

 

재백이가 생전에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매일 매일 자료를 검색해 올리는 것도 꽤나 힘든 작업이었지만,

안 좋은 뒷이야기나 악플이 달리면 마음이 상해 한동안 힘들었다고.

 

초등학교 6년을 개근하고 중학교 3년 또다시 개근을 한다.

이어지는 고교생활도 3년 개근에 점차 가까워진다.

숨이 막힌다.

12년 개근이 뭐 길래?

 

시골에서 올라오신 어머니가 성남 당시 경기도 광주에 있는 신풍제지로

출근하는 둘째 형이 이틀째 연락이 없다고 불안해하신다.

금호동 자취방 주인집 거실에는 백색전화가 있었으나 마음대로 사용을 할 수가 없다.

 

난 흔들린다.

12년간 지각 한번 없는 개근의 대기록을 목전에 두고 있어도

과감하게 결석을 하고 성남으로 둘째 형을 만나러 간다.

 

12년 개근이라는 기록의 집착에서 벗어나니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다.

모범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담배도 배우게 되고 심신이 자유로워진다.

 

먼 훗날,

중곡동지점에서 2년 연속 업적평가 1위를 하는 대기록을 세우니,

지역본부에 있던 선임차장이 밀고 들어와 상일동지점으로 발령이 난다.

 

전임 여자지점장의 계속된 빼가기, 전출 횡포에 시달리니 아무리 메꿔도

감당할 길이 없다.

너무 힘들어 포기를 하고 전국 꼴찌를 한다.

 

너무나 후련하다.

김흥만이 가는 곳엔 무조건 1등이라는 소문이 나 여러 지점장들이 눈독을 들였는데,

나도 꼴찌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고 나니 오히려 후련해진다.

이때도 많이 흔들렸나 보다.

 

물론 그 여파로 부지점장 승진에서 누락되고, 이듬해 명예회복을 하고자 발버둥을

치지만, 이번에도 승진이 어려울 거라는 모 임원에게서 사전 통보를 받고 마음을

비우려 지리산을 종주하기로 한다.

그 다음 날 승진되었다는 통보를 받아 종주 계획은 해프닝으로 끝난다.

 

다음 점포인 방이동지점에서 2년 연속 1등의 대기록을 세운 나는 다시 방배서지점에서

지점장으로 2년 연속 1등을 하며, 국민은행 직원으로서의 최고의 영예인 <국은인상>을

받는다.

 

이후 쏟아지는 나에 대한 기대감과 과중한 목표에 의해 허우적거리다가,

다시 한 번 나락에 빠져 최하등급을 받는 수모를 당한다.

또다시 올라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 이내 떨쳐 버리지만,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며 다시금 흔들린다.

 

가끔씩은 흔들려 보는 것도 좋다.

모범생? 모범적인 가장? 모범적인 직장인? 모범적인 친구?

모범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예쁜 여자를 보면 마음도 흔들려 보고,

돈 욕심에 흔들려 보기도 하며, 친구들에게 욕을 얻어 먹기도 해보자.

 

때로는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가끔씩 흔들려 보는 거도 좋다.

 

                                 2010.  9.  15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