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118 인생의 쉼표와 마침표

김흥만 2017. 3. 24. 22:39


  식사 후 하남시청 앞 가로공원에 들리니 공무원들이 나와서 온갖 상담을 하는데

눈에 띄는 것이 '경기일자리센터' 상담 창구다.

2년여 백수생활이니 미모의 여직원에 끌린 점도 있지만 혹시나 하고 상담을 한다.


  작성한 구직 신청서를 대충 훓어본 직원이 이것저것 물어본다.

  59살이시네요?

아닌데요?~58세 2개월이라고 정정을 한다.

그 나이에 체력이 되겠느냐?

은행지점장 생활만 10년이 넘은 고급인력인데 힘들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물론 나이가 문제 되겠지.

누군가는 자기 나이에 70%를 곱해야 한다는데 그럼 나는 40대 초반인데 말이다.

정신연령은 20대 초반이고 체력도 30~40대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쌓여진 인생의 연륜이 문제로다.

 

쉴 때도 되었는데 하는 표정이 살짝 엿보인다. 

  물론 인생은 산과 많이 닮았다.

   높은 산의 정상을 쉬지 않고  단숨에 오르기는 힘들다.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천천히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오르기만 하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춰 서게 된다.

  쉬어야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성공이라는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갈길이 멀었는데 좀 쉬어간들 어떠리.

새들이 하늘을 날다가 힘들어 잠시 나무에 앉아 쉴 때,

산이 꾸짖거나 나무가 야단치지 않는다.

 

나이 60이면 다음 단계로 도약하지 말아야 하는가?

사실 은행원, 공무원, 군인, 교사들의 대부분은 은퇴 후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사기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세상에 버려진 천둥벌거숭이나 마찬가지이다.


은퇴 후 1년차까지는 사기성 유혹전화가 많이 온다.

보험회사, 산소발생기업체, 부동산, 기업체 투자요청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은퇴 후 2년차가 되니 사기나 유혹의 전화는 조금 뜸해진다.

퇴직자 명단이 공공연하게 거래가 되는 나라이니,

아차하면 사기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너무나 짧은 삶이지만,

기대수명을 다 살려면 아직도 20~3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하릴없이 빈둥거릴 수는 없고,

허구한 날 배낭 짊어지고 산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고역이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무엇을 하느라 바쁜 게 아니고~

자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소중한 일이 아닌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다.

 

이수회에서 막걸리 한잔 중 '유동순'친구가 "음악에선 '쉼표'가 있는데

인생에서도 '쉼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하는 순간 온몸이 짜릿하다.

 

<쉼표>라~~

"음악의 악보에 쉼표가 있듯이 인생에도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며,

긴 호흡으로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라고 교훈을 준다.

 

현역에서 은퇴라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도 잠시 쉼표를 찍고,

갈등이 있을 때도 잠시 쉼표,

영혼을 움직이는 침묵에도 잠시 쉼표가 필요할 듯 싶다.

 

가끔은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 보며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3년 후, 5년 후, 10년 후의 내 모습은?

 

쉼표가 있으면 <마침표>도 있어야겠지.

버스에 80대 노부부가 오른다.

꾸부정한 할아버지는 은발의 할머니를 보호하며 안전하게 오르게 하고,

좌석에 앉힌 후에서야 자신이 앉는다.

자신의 몸도 잘 가누지 못하지만 가장으로서의 보호본능이 앞서나 보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명장면이다.

 

동순이 <헌혈>한 팔에 멍이 잡혔다.

계속 할 생각이라는 말에 신선한 감동을 느낀다.

나 역시 장기기증본부에 사후 장기 및 시신기증을 하기로 등록을 했다.

머리 수술 후에 마음을 비우니 쉽게 결정이 된다.

 

목적지에 빨리 간다?

전병태 총장은 포럼에서 "혼자 가면 오래 못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친구들을 많이 만나 보폭을 함께 하라는 소중한 말이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이 나의 일이 아닌 남의 마지막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시간의 존재로서 내 삶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감동은 주지 못망정 추한 <마침표>는 찍지 말자.

마침표는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2010.  8.  11 이수회를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