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5.
하석이 타계로 심란하여 8월 이수회에서 소주를 한잔하며 예봉산 산행을 한다고 하니
아예 예봉산에서 운길산까지 종주를 하자고 한다.
약수터가 없으니 식수와 간식을 충분히 준비해야 이 더위에 6~7시간 산행을 할 수 있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산행을 시작한다.
'예봉산'은 남양주 와부 팔당지역에 한북정맥에서 가지를 친 능선 끝머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 683m이다.
주변에 있는 검단산과 운길산보다, 약간 높으며 계속 남릉으로 이어지는 산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치는 양수리 방면과 팔당댐에서 북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에서 여맥들을
가라앉힌다.
본래 이름은 운길산 또는 조곡산, 예빈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은 수종사가 있는 조곡산이
운길산이고, 이 산을 예봉산이라 하며 원주민들은 '사랑산'이라고도 한다.
옛날 벼슬아치나 길손들이 영월, 정선 등을 가며 삼각산이 마지막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임금에게
예를 갖춰 예봉이라 하며, 또는 손님을 관장하는 예빈시에 나무벌채권을 줬는데, 예봉산의 산림이
울창하여 한양의 목재수요를 꽤나 많이 감당해 '예빈산'이라고도 했다.
그간에는 접근이 나빠 아는 등산객만 다녔으나 지난 봄 팔당전철역이 개통되어 꽤나 인기 있는
산이 되었다.
팔당은 옛날 산수가 너무 수려해, 하늘에서 여덟 선녀가 내려와 살았다고도 하나,
이곳은 팔당댐이 생기기 전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수되는 곳으로, 물길이 아주 험해 많은 사람이
죽어,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한 당집이 여덟군데 있었으며, 그중 위의 지역이 '상팔' 아랫지역 '하팔'
이라 그래서 '팔당리'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등산로는 다양하다.
도곡리에서 철문봉~정상,
상팔에서 계곡을 타던지, 천주교 공원묘지에서 직녀봉, 승원봉, 율리봉을 타는 길도 있지만
오늘은 예봉정에서 남서릉 오른쪽 계류를 타고 오르기로 한다.
이 길은 조용하고 호젓하여 꾼들만 찾는다.
철길 굴다리를 건너 가져간 막걸리를 분배하고, 싸리나무식당을 지나 계류를 건너는데 물이
꽤 많다.
어제 비가 많이 와서 수량이 많아 보기좋지만 중태미나 꺽지를 보지 못한다.
물이 적을 때는 가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계류를 두 번 건너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든다.
이미 땀으로 온 몸은 젖었고, 폭포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는데 배터리가 다됐다.
카메라에 아직 서툴러 충전을 안했더니 낭패다.
이마에 흐른 땀을 닦고 올라가니 먼저 올라간 친구들이 기다린다.
이수회~하석이 문상~또 광명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며칠간 퍼마셨던 술이 오늘 나를 무척이나
괴롭힌다.
계류에 흘러가는 물소리, 매미소리가 귀를 때린다.
이쯤에서 노랑망태버섯이 작년에는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어제 비가 많이 와 다 녹은 모양이다.
이 버섯은 식용으로 프랑스에선 최고로 치며, 집사람이 사진공모전에서 이 사진으로 입상하기도
했으며 귤망태와 같다.
아직도 정상은 멀었는데 너무 습하고 선두는 보이지 않는다.
문성이가 어느 쪽으로 가느냐고 위에서 소리쳐 오른쪽 하고 대꾸한다.
초콜릿을 하나만 먹었더니 시장기가 심해 동행하는 친구가 얼린 바나나를 준다.
친구들아!
우린 벌써 지천명의 나이며 이순의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제발 좀 천천히 가자.
때로는 느림이 더 좋을 때도 있단다.
계곡 삼거리부터는 단풍나무와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군데군데 두릅나무도 보이고, 20분 후 율리 고개에 도착한다.
밤이 많이 난다고 해 율리 고개라 하는데 실제 오른쪽 율리봉, 직녀봉, 옥녀봉, 승원봉 쪽으로
밤나무가 많다.
여기서 정상까지 500m는 본격적인 깔딱이다.
한 시간 반 만에 정상에서 내려오는 꾼들에게 "호랑이 봤느냐고" 농담도 하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왼쪽 경사면에는 두릅나무와 더덕이 많은 곳이지만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2008. 8. 15. 09;40
30분 후에 예봉산 정상(683m)에 올랐는데 배터리가 부족해 한 장밖에 못 찍는다.
정상주변은 옛 성터다.
돌무더기가 군데군데 있고 예전에는 산령단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헬기장이고
삼각점과 정상표지석이 있다.
오늘의 조망은 약간 뿌연 안개 속에서 서쪽으로 한강과 동부지역아파트들이 장난감같이
보이며,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 수락산이 조망된다.
북동으로는 천마산, 서리산, 축령산, 깃대봉이 보이며, 오른쪽으로는 뾰루봉, 화야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오늘의 목표인 운길산이 보인다.
그 오른쪽으로는 중미산, 유명산, 용문산이 조망된다.
주변에 닭의장풀이 많이 피어있다.
아주 흔한 꽃이지만 나도 요즘에서 알았다.
자리를 잡고 얼음 장수막걸리 5통을 마신다.
종래의 주먹밥, 수박, 김치, 빵, 복숭아 등이 나의 배를 채워준다.
재영이 종주하자고 계속 꼬신다.
종래와 한 친구가 내려가고, 네 명이서 종주를 하기로 한다.
다시 정상에 올라 철문봉 쪽으로 종주를 시작한다.
율리 고개 쪽은 시원한 바람이라 약간 추웠는데 이쪽은 더운 바람이다.
철문봉에 도착한다.
웬 아이스케끼?
한 개에 천 원인 비비빅이 너무 얼어서 쉽게 먹지못하고 빨기만 한다.
적갑산(561 )정상이다.
너무나 멋진 소나무다.
이 산에서만 볼 수 있는 수령은 300년 이상으로 싯가 억대로 추정된다.
철쭉나무가 너무 커 서리산 철쭉능선과 분위기가 흡사하다.
원추리 꽃이 요염하게 피어있다.
푸른 숲속에서 노랗게 피어있는 모습이 처연하기도 하다.
아름드리 금강송을 뒤로 하고 새우젓고개로 내려선다.
벌써 산행시간 네 시간째 먹을 건 충분한데 식수가 부족하다.
이 고개는 옛날 새우젓장수가 넘던 고개로 임도와 연결되어있다.
운길산 정상은 여기서 3.5km 정도로 앞으로도 세 시간 이상 산행을 해야한다.
좀 무리일 거 같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세정사 진중계곡으로 탈출하기로 한다.
두릅나무, 개복숭아, 감나무 등이 지천이다.
계류에 물이 엄청 많아 발을 담가 피로를 푼다.
이제부터 진중계곡 4km 시멘트 길을 걸으려니 한심하다.
식당이 나와 들어가니 장어집이다.
막걸리 한잔하고 복분자로 하산주를 마신다.
장어 맛도 좋고 이제 막 쏟아지는 빗소리가 너무 정겹다.
운길산으로 곧장 종주했으면 비를 많이 맞았겠다.
운길산까지 종주는 못했지만 날씨가 좀 선선해지면 다시하기로 약속하고, 아쉽지만
그래도 오늘 5시간 이상 산행을 했으니 만족을 하는 것이 바로 느림의 미학이 아닐까.
2008. 8. 15. 예봉산~운길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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