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84 인생은 미완성 서산 팔봉산<361.5m>

김흥만 2017. 3. 25. 20:04


2012.  5.  5.  07;20

인생은 여행이다.

그리움이 있는 여행은 더욱 설렌다.

친구들과 같이 하는 여행은 정감이 있어 더욱 좋다. 

 

10;30

팔봉산이 엷은 산안개 속에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이름처럼 8개의 암봉이 능선으로 이어진다.

 

본래는 9개의 봉우리라는데 가장 작은 것이 빠지고 8봉이라 한다.

가장 작은 봉우리는 ‘서러운 마음’에 매년 12월 말이면 울음소리를 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흐르는 능선을 바라보다가,

다시 산행지도를 쳐다보는 친구들 얼굴을 둘러본다.

 

 

텅 빈 사무실에서 가끔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사람이니까 외롭다?

사람의 외로움은 존재론일까?

 

학습기(學習期)엔 스승과 부모에 의존하고, 가주기(家住期)인 어른이 되어서는 지나치게

돈과 명예에 집착을 했지.

이젠 이순(耳順)의 나이이니,

다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임서기(林棲期)를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친구와 산이라는

대자연에 의존을 해야겠지.

의지할 것이 많고 잃을 것이 많을수록 외로워지는 게 세상의 순리이니까.

 

차라리 숲 속의 거처까지 버리고 무소유의 걸식, 편력의 생활에 들어가는 유행기(遊行期)로

바로 들어갈까?

 

한없이 이어지는 산객들의 행렬.

봄의 찬가를 부르려는 모양이다.

 

아기가 지나간다.

풀 한 포기에도 불심이 있다 했거늘 스치는 애기의 얼굴에서 부처의 모습이 어린다.

 

봄이 실종된 걸까.

불과 한 달 전 영하였던 기온이 겨우 영상으로 오르더니 지난 일주일은 30도를 넘나드는

초여름 날씨이다.

 

겨울이 유난히 길었던 걸까.

겨우 찾아 온 봄은 아쉬워 할 새도 없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어느새 시간의 느낌마저 흐트러지고,

삶에 지쳤는지 오랜 세월 한자리에 서 있는 소나무들이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숲 속은 곧 세상이다.

풀, 나무, 이름 모를 벌레들이 각자 살기 위해 처절한 경쟁을 하고 있다.

 

넓은 산책로를 지나 산행 들머리인 계단이 이어진다.

 

무심해지자.

오직 자연만이 주인이고 나는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길손일 뿐,

계단도 소나무도 무성하게 이끼 낀 바위에 햇살이 강하게 떨어진다. 

 

여기저기 만발했던 진달래꽃잎은 떨어지고,

소나무가 울창한 숲 길로 들어서니 거북이가 물을 토하며 산객을 반긴다.


오감(五感)이 살아나는 봄이다.

봄꽃과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데, 한쪽에선 벌써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나무도 보인다.

 

연두색을 보니 너무나 싱그럽다.

겨울산의 속살이 아름답다 생각했는데 지금은 연둣빛이 더 좋으니 나도 변덕이 심한 모양이다.

 

언제부터인가 연둣빛이 참 좋다.

연두색 새싹들을 보며 설렘을 느끼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칙칙한 갈색을 벗어난 숲 속은 생명의 에너지가 꿈틀거린다.

 

연두색은 청춘의 색인가?

화려한 가을의 향연, 칙칙했던 회색의 겨울보다 연둣빛 녹색이 좋음은 아직 생명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겠지.

 

산의 품속에 들어가 행복을 느끼는 삶이 계속되어야 할 텐데

인생의 황혼에 새 계절이 왔으니 만끽해야겠지.



고도가 높아질수록 지상의 세계는 아득해자고 감춰졌던 천상의 세계가 올려다 보인다.

 

제1봉 감투봉(노적봉)이 하늘을 가린다.
생김새가 감투를 닮아 소원을 빌면 부귀영화를 얻을 수 있다는데,

권력과 부귀영화란 세월이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 아닌가?


엷은 해무 속에 서해바다의 모습은 감춰졌고,

산허리에 걸린 한줄기의 연무는 고향집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는지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나와 산허리를 감싸는 듯하다.


뛰어난 조망과 산정의 암릉미는 금강산에 견줄만한 풍경이다.

서해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과 만, 너른 들판은 해무에 살짝 숨었다.


만세팔봉(萬歲八峯)이라는 빗돌도 보이고,
돌계단을 힘들게 오르자 왼쪽으로 거대한 바위덩어리들이다.

뿌리부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주능선에 오르니 제법 넓은 길이 산자락으로 이어진다.

 

힘센 용사의 어깨를 닮아 '어깨봉'이라 불리는 제2봉으로 오른다.

길이 제법 가파르다.

급경사를 오르니 철 계단이 이어지고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르고, 내리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미끄러지고,

팔봉(八蜂)은 우리네의 험난한 인생길과도 같다.


화려한 꽃망울은 없어도, 고고한 바위가 악산(岳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메말랐던 대지와 산은 초록으로 촉촉이 덮었다.

초록이 뒤덮인 산 속엔 수많은 생명이 기운을 차리며 봄의 향연을 즐긴다.

 

좁은 바위굴을 지난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산은 지식이 아닌 인생을 가르쳐준다.

사람에게 불편을 줄수록 자연은 더 잘 보존된 게 아닌가?

 

 

경사가 급한 철 계단을 오르며 겁이 나 아래는 내려다보지 못하고,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높이는 361.5m로 야트막하지만 암릉과 조망이 뛰어나다.

 

두통이 이틀째 계속이다.

또 비상이 걸리려나?


어느 날 밤 나는 황천(荒川)을 본다.

거친 계곡사이에 성난 모습으로 거세게 흘러내리는 흙탕물.

소용돌이치며 물보라와 함께 누런 물꽃송이가 피어오른다.

 

여러 사람들이 일엽편주에 몸을 매달리며 강으로 떠내려가고,

나 또한 몇 년 전 대장암으로 죽은 은행선배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내려가다 중간에 내려서 

절벽을 기어올라 같이 강을 건너가길 거절한다.

비는 미친 듯이 쏟아진다.

 

정말 황천이 있는 걸까,

삶과 죽음의 경계가 황천일까,

잠에서 깨어나 냉수 한잔을 들이키며 묘한 상념에 젖는다.

황천은 누런 물(黃川)인가 누런 하늘(黃天)인가.

 

하늘로 오르는 통천(通天)계단을 오르며 잠시 묘한 인생길을 생각해본다.



급경사 바위 위에 두 개의 철계단이 걸쳐 있고, 길이 약 3m의 덮개바위를 지나,

ㄴ자형으로 '굴길이 12m, 정상까지 61m'인 경사진 굴속으로 들어간다.

 

배낭을 벗고 수직으로 된 높이 4~5m의 비좁은 통천굴(용굴)을 간신히 통과하여야 하는

어려운 길이라 몸집이 큰 나는 우회한다.

우회 등산로도 바위 사이로 난 길이 좁고 가팔라 힘들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제 몫의 비탈이 있다.

 

코를 박을 정도로 급경사인 철 계단을 오르니 두 개의 암봉이 우뚝 서 나를 내려다본다.



11;40

통천문을 빠져나와 왼쪽 바위  길을 돌아서 오른쪽 철 계단을 올라 팔봉산 정상(361.5m)에

오른다.

 

지난달에 다녀온 오서산, 덕숭산이 보일만도 한데 밀려드는 인파에 자세히 볼 수가 없다.

 


툭 터진 시야는 거침이 없다.

공룡등뼈를 닮은 기암괴석이 이어진다.

잠시 어깨를 펴고 숨을 들이 마시니 팔봉산의 기(氣)가 가슴 가득히 충만해진다.

 

시원한 풍경이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바위들과 맑은 자연이 나를 들뜨게 한다.

 

이런 경치가 있었나?

사람도 물도 바위도 모나지 않은 산이다.


높이에 비해 발아래 풍광이 까마득하다.

금강산(361m)이 보이고 4~8봉이 가지런하게 이어져 있다.


혼자 가는 길이라면 더 힘든 길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어 힘들지 않다.

잠깐 동안의 해외생활에 지쳐 귀국한 친구의 상한 얼굴을 보니 안심도 되며 가슴 한구석이

아파진다.


         [   떠나간 세월 


             세월이 떠나가면 청춘이 그리워질까.

           이곳 팔봉산 정상 위에 서서

           그리워 하며 처절한 눈물을 흘릴까.

 

           시간이 떠나가면

           세월이 떠나가면 내가 또 찾아올까.

 

           언젠가

           언젠가는 내가 찾아올까.

 

           남아있는 순정을 찾으러 올까.

           허무한 세월

           순식간에 흘러버린 청춘에 눈물짓는다.       석천  흥만  ]



돌 틈 사이에 핀 각시붓꽃이 신비롭다.

편도선, 주독, 폐렴 등에 약용으로 쓰이는데 술을 많이 마셔 '주독'이 오른 친구들은

눈여겨 볼만하다.

 

짧은 철 계단 하나를 오르니 4봉이다.

정상에 너른 반석바위가 늠름한 자태로 앉아있다.


바위투성이 산이지만 부담없이 오르는 산이다.

오랜 잿빛을 벗고 신록의 옷을 입은 나무와 풀을 보며 천천히 오르내린다. 


바닷가라서 일까, 바다의 온기를 품은 바닷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의 긴 그림자가 물러나고 부지런한 봄의 햇빛이 등을 따갑게 해주니 제법 땀이 난다.

 

 

한 줄기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을 쏟았을까.

제비꽃이 싱그럽게 노송(老松)아래 피어있다.


다소곳이 핀 꽃은 한없이 겸손해 보인다.



연한 보라색 바탕에 흰색의 청초함이 어우러진 개불알꽃이 지천이다.

 

봄까치꽃, 개불꽃, 지금초(地錦草) 즉 '땅의 비단'이라고도 부른다.

어느 지방에서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 같다 해서 '소당깨꽃'이라 부르지만,

'개불알꽃'이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며 색감에서 오는 안정감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꽃은 이른 봄부터 늦은 봄까지 피고, 여름에 결실을 맺는데 이 꽃의 씨방이

들판에서 마구 뛰어노는 개의 불알과 같다해서 '개불알꽃'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씨방에 열매가 한 쌍씩 들어 있으면 '쌍방울꽃'이라 해도 될텐데,

암튼 우리 조상들의 다정다감하고 순박한 삶의 정서가 녹아 스며 든 이름이 오히려 정겹다. 


          

12;00 

2시간 40분의 산행을 마치며 지나온 길 뒤돌아보니,

겨우내 웅크렸던 산이 연두와 초록으로 확연히 변하고 있다.


연두와 초록은 참 편한 색이다.

어쩌면 내 마음의 크레파스이겠지.


은퇴 후 어느 날,

백화점 쇼핑에서 돌아오니 아들이 잔소릴 한다.

"머리에 염색 좀 하시라고"~거울을 보니 영락없이 무작정 상경한 촌 노인네의 모습이다.

머리는 하얗게 세고, 칼 면도를 하지 않은 턱엔 흰 수염이 여러 군데 보여 충격을 받는다.

아들 눈에도 이렇게 비쳤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더 추하게 보였겠지.

 

흰머리가 섞였던 머리카락을 까만  머리로 염색을 하니 이상하고 어색하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못하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나 주변 사람들이 염색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나 혼자만 이상하게 생각했던 거다.

 

변덕일까? 위선일까?

젊어서는 시장에 가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멋  적어 내 정서에 맞지 않았다.

어느 날 부터는 가족들과 쇼핑을 즐긴다.

마트나 시장엘 가면 또 다른 풍경에 매력을 느낀다.


겨울산은 산의 나신(裸身)을 보여주어 아름답다 했는데 봄 산은 더 편하고 예쁘다. 

대자연의 변화는 위장도 아니고 변장도 아니다 자연의 순리일 뿐.

나이가 들어 내 머리가 하얗게 세는 것도 인생의 순리이겠지.

 

잊어진 사람이 되고, 잊어지고 있는데, 

유기농 채소를 보내 준다는 옛 동료의 한줄 문자메시지에 가슴이 메인다.

어차피 인생은 미완성이지.

 

                                     2012.  5.  5.  서산 팔봉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