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16 삼만 원의 행복 홍천 가칠봉<1,240.4m>

김흥만 2017. 3. 21. 19:46


2008.  10.  16.  06;00

독수리 오형제는 팔당호 안개 속을 질주한다.

지구를 지키러 가는 게 아니라 홍천의 가칠봉으로 막걸리 마시러 떠난다.


밥만 좋아하는 봉길이 투정에 양평해장국집에 들어서니 이 새벽에도 손님이 많다.

베스트드 라이버인 문성이의 노련한 운전 세 시간 만에 삼봉약수 입구에 도착하지만

1일 1회 운행하는 버스는 이미 떠났다.

 

휴양림 직원한테 차량 이동을 부탁하니 구룡령 까지 동행한다.

거절하는 직원에게 삼만 원을 억지로 넣어주고 덕분에 힘들지 않게 산행을 한다.


10;00

구룡령 들머리에 대기하고 있던 안내원 두 명이 친절하게 가칠봉 코스를 설명해준다.

 

'가칠봉(加漆峰)'은 강원도 인제와 홍천 사이 오지에 숨겨져 있는 명산으로 해발 1,240.4m이다.

가칠(柯七)봉이라고도 하며 같은 이름으로는 점봉산의 '가칠봉(1,178m)'이 있고,

내일 오를 양구 해안면 대우산 '가칠봉(1242m)' 등 같은 이름이 많다.


산림 대부분이 천연림으로 전나무와 활엽수가 다양하게 어우러져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계곡에는

열목어가 서식하는 산이다.

산 이름이 옻칠(漆)자라 옻나무가 많은지 확인하지만 옻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등산로 들머리에 잠시 선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사진과 달리 경사가 꽤 급하다.

 

오늘 산행 제목은 '삼만 원의 행복'이다. 

헉헉 댄지 한 시간 만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웬 못된 사람이 이정표 위에 소주병을 올려놓았다. 


명색이 백두대간 27구간인데 지각없는 사람이 산을 더럽혔다.

 

바로 앞에 약수산이 보인다 .

 

신갈나무, 단풍나무 숲을 지나도 침엽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는 아예 보이지 않고, 당국에서 식재했다는 전나무만 간혹 보이고,  일본사람들이 좋아하는

삼나무는 없다.


구룡령 옛길 정상에 오르니 인부 서너 명이 공사를 하다 막걸리를 달라고 한다.

우리 먹을 것도 부족한데 봉길이 배낭에 장수막걸리 5병과 소주1병이 있지만 우리 마실 것도

부족해 줄 수가 없다.

 

편안한 육산이라 돌은 거의 없고 낙엽길이라 발목과 무릎에 전혀 부담이 없다. 


갈전곡봉 갈림길(1150m)이 나온다.

백두대간은 조침령으로 이어지고 우리는 우측 지능선으로 가야 오늘의 목표지인 가칠봉이다.

 

11;15

배도 고프고 쉬었다 가자. 

벌써 두 시간을 산행했으니 쉬며 간식으로 요기를 한다. 

 

이 가을이 지나면 가칠봉에 아름다운 눈이 얼마나 쌓일까? 

구룡령의 적설측정자 높이가 2m이상이니 아마도 1m 이상 쌓이리다.

눈이 녹으면 파릇파릇한 새순이 나오겠지.

 

우리 일상의 대화 주제는 거의 골프, 부동산, 펀드, 섹스, 건강 등의 진부한 소재이다.

오늘 산행에선 진부한 주제를 피하고. 느림의 미학 또는 구원(救援), 해탈(諧脫), 남은 생을 

어떻게 더 아름답게 살까 등으로 하면 어떨까 라는 내 의견을 제시하니 다들 동의를 한다.

 

가칠봉에서 오늘 처음 보는 투구꽃이 등산로에 두 송이 피었다.

이 꽃은 9~10월에  깊은 산속에서 개화하며 도시 근처에는 없고 독성이 있다.


색깔이 너무나 파랗다. 

이 카메라의 접사방법을 모르니 그냥 손 떨림 방지로 찍는다.

 

저 위가 1,150고지인데 경사가 급하다.

 

12;26

갈전곡봉 정상(1204m)에 도착한다.

 

정상은 아직도 3km 남았으니 속력을 내야겠다.

갈전곡봉는 무슨 사연을 담았을까.

 

14;30

꼬박 네 시간이나 걸려 가칠봉 정상(1240m)에 오른다. 

 

막걸리가 5병인 게 아쉽다.

고산의 기압관계로 한잔 밖에 안했는데 벌써 얼굴이 불콰해진다.

 

봉길이가 정성껏 싸온 골뱅이무침'이 일품이다.

한잔 한지 벌써 한 시간이 넘어 세시 반이 다가오니 하산을 서둘러야겠다.


가을 겨울 산은 해가 빨리 떨어지고 하산 길도 5km이니 만만치 않겠지.

방태산이 조망되며 남쪽으로 오대산, 계방산이 연무 속에 희미하게 조망된다. 

 

내려오다 사슴벌레를 발견한다.

거의 멸종되었다는 천연기념물인데 사진실력이 별로이다.

 

966고지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오늘 가칠봉에서 처음 보는 적송이 한 그루 있어 팔을 벌려도 도저히 안을 수가 없다.

수령 5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소나무는 햇볕이 잘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해발 800고지

 이상에선 별로 없다.

그걸 깜박하고 소나무 없다고 투덜댔으니 오늘 1031m(구룡령 정상)에서 출발해 1000고지 이상

고봉 6개를 넘었는데도 저지대로 착각한 내가 바보이다.

 

17;05

오늘 산행의 종점인 삼봉약수가 나오고 숙소는 여기서 불과 30m 거리에 있다.

 

삼봉약수는 위장병, 신경쇠약과 신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며.

[조선 5대 문종의 왕비 현덕왕후의 아버지인 권전이 단종 폐위 후 이곳 내면에서 은거 중

 젊은이들을 지도할 때 날개 부러진 학이 안개 피어오르는 계곡물에 날개를 적신 뒤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이 약수를 발견했다]라전설이 있다.


인근에 신약수, 계방산 밑에 방아다리약수, 조봉에 불바라기 약수, 방태산 방동약수 등이

있는데 마시며 맛을 생각하니 철분이 다른 곳보다 순한 거 같다.

 

열시에 출발 다섯시에 도착했으니 꼬박 7시간 산행을 했구나.

가을은 깊어가고 내 마음도 가을을 닮았는지 쓸쓸해진다.

 

                                20018.  10.  16.

                                     가칠봉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