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17. 08;00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다.
등산이라는 행위도 역시 자연과 친 하려는 인간의 노력 중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산과 가까워지려면 산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컴팩트 카메라를 휴대하고
소요산을 올라간다.
현대사회는 자연에 안기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니라, 경쟁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심 때문에 정신적으로 점점 피페해지고 있다.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자연 속에 묻혀서 자연의 섭리대로 자연 속에 안기는 시간을
갖는다면 몸과 마음이 훨씬 건강해지기에,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산을 다녀오면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밝은 표정들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만추산행은 가을의 우울함도, 저며 오는 그리움이나 회한도 말끔히 씻어주어 활력을 다시
찾아주기에 더욱 값지다.
몇 년 전에 작고한 친구의 마지막 한마디 "내가 왜 골프에만 전념했던가 후회스럽다.
산에라도 자주 갔으면 폐가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가 귀에 맴돈다.
소요산은 서화담 양경래(또는 서경덕 선생) 선생과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유유자적하며
소요(消遙)했다 해서 소요산 이름이 생겼다 하고, 원효대사가 소요사라는 암자를 꾸민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하니, 암튼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이 많은 산이다.
전설에 의하면 요석궁주가 일주문 근처의 요석궁에 머물며 아들 설총을 데리고,
아침, 저녁으로 원효대 밑에서 원효의 수도처를 향해 매일 세 번씩 절을 하게 함으로써
수도와 공부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소요산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99% 등산객이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소요산(騷擾山 시끄럽고 어지러울)으로 이름을 바꿀까?
소요산(逍遙山 멀리 거니는)의 이름이 민망스럽다.
학자들은 남한의 제일 단풍은 소요산이요, 북한의 제일 단풍은 묘향산이라 했다.
오늘 보니 그건 학자들의 헛소리이고, 소요산 단풍은 시끄러운 관광 아줌마들이 제일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그렇다고 소요산을 폄훼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워낙 기대를 많이 했기에 실망이 컸기 때문이다.
30년 전 맞선을 본 후 처가 식구들과 이곳 소요산 등산을 하고,
결혼 날짜를 잡은 아련한 추억이 깃든 산이기에 더욱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일주문에서 매표하고 올라가니 왼쪽으로 식수대가 있다.
이곳에서 한잔하고 옆을 보니 합동위령제를 지낸다고 학생, 군인들이 많이 모였다.
08;48
원효폭포에서 잠시 원효대사가 되어본다.
가물어서인지 물줄기가 가늘다.
높이는 10여m이지만 주변의 낙엽이 운치 있고 속세와 이별한다는 속리교를 지나 삼거리에서
왼쪽 계단을 거쳐 자재암으로 올라간다.
눈앞에 하백운대가 조망된다.
수십 길 절벽에 만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자재암이 나온다.
선덕여왕 시대 645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요석공주를 잊기 위해 도를 닦던 곳이며,
원효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수행를 쌓았다는 뜻에서 자재암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절벽 위에 제비 집처럼 걸려있는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나한전 앞에서 석간수를 한잔한다.
나는 호를 예전부터 석천(石泉)이라고 스스로 지었으니,
석간수라! 오늘 이 물이 나의 물이던가?
원효대사가 이곳에 오니 스스로 물이 솟아올랐다 하는데. 나 석천(石泉)이 이곳에 오니 오늘도
물이 스스로 솟아오르는구나.
왼쪽 지능선길로 접어드니, 군데군데 당단풍이 말라 떨어졌고, 하백운대로 가는 길은 급경사이다.
절벽에 가까운 바위지대를 피해 만든 계단 암릉을 오른다.
위험한 구간에 중학생들이 재잘 대며 내려온다.
오늘 현장학습이라나?
아마도 하백운대까지 올라갔던 모양이다.
어느 선생님인지 훌륭한 선생님이라고 추겨줬더니 옆에 선생님이 빙그레 웃는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며?
이 산은 굴피나무가 참 많다.
다른 산은 신갈나무나 떡갈나무가 많은데 좀 특이하다.
이 나무는 코르크 성분이 있어 코르크 마개를 만들며, 산속에서 굴피지붕으로 집을 짓기도 했다.
깊은 산중에나 있는 송장나무가 보여 얼른 한 장 찍는다.
학명은 박쥐나무이며 봄에 잎을 따 비비면 역한 냄새가 난다.
09;30
하백운대로 올라서는데 단체가 있어 시장 통 같이 시끄럽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약간 편안한 능선길이다.
상백운대가 조망된다.
10여 분 낙엽 길로 천천히 오르니 중백운대가 나오고 남쪽은 수직절벽이다.
노송군락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 속 주인공이 된다.
노송군락을 지나 주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산행이 힘든 친구는 여기서 선녀탕 쪽으로 탈출해도 된다.
10여 분 더 올라가니 559고지인 상백운대가 나온다.
'상백운대' 올라가는 가파른 길이다.
돌무덤이 나오며,
내리막길을 거쳐 남서릉으로 이어지며 칼날처럼 날카로운 칼바위 능선을 넘는다.
이어 밋밋한 봉우리를 넘어, 쇠파이프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를 오르니 '나한대'가 나온다.
문성이가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자고 한다.
구름이 많이 끼면서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봉길이 배낭에서 네 병이 나온다.
온도계엔 영상 7도이지만 방풍 재킷과 털모자를 쓰고 바람이 없는 쪽을 골라 한잔 한다.
단숨에 한잔을 벌컥벌컥 마신다.
천천히 마셔야하는데 갈증이 심했나 보다.
물은 씹어서 마셔야 하는데, 작년 이맘 때 큰형수가 베이지밀을 마시다 기도가 막혀
질식사했던 경험도 있어, 갈증 날 때 일수록 천천히 마시는 게 좋다.
된비알에서, 엘리트교복 직원이라는데 무릎이 아프다고 해, 봉길이 배낭을 뒤져도 지난번
가칠봉에 가져갔던 비상약이 없다.
나도 배낭에서 에어파스를 빼놨는데 아쉽다.
멀리 북동으로 관모봉, 금주산 뒤로 명성상, 관음산, 사향산이 보이며, 동쪽으로 '국망봉'이
하늘금을 이룬다.
남동으로는 국사봉, 왕방산, 해룡산이 조망되며,
남으로는 불곡산, 도봉산, 삼각산이 조망되나, 이쪽은 너무 연무가 심해 찍지 않는다.
정갈하게 정돈된 미군부대도 조망되는데 참으로 절묘한 위치다.
사각지역이라 미사일, 곡사화기로는 공격하기 힘든 지역이다.
역시 전쟁의 대가들이 선정하여 자리 잡았으니 배울 점이 많다.
전방 근무경험도 있지만 이렇게 절묘한 곳에 진을 친 곳은 거의 못 봤다.
쿵쿵! 다다다다!
팔인치 포와 K-3 기관총소리가 요란하다.
오늘 사격훈련이 있나 보다.
엘리트 여직원이 자기 남편이 현역 출신이라 했는데 방위출신 아니냐고 해서 한바탕 웃는다.
대포소리를 천둥소리가 왜 이리 자주 나느냐고 해서 들통 났던 거다.
12;14
10여 분 철 계단을 올라서니 오늘의 정상인 '의상대'이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올라오니 숨이 차다.
오르막길이 아니라 해서 먹었는데 세상에 믿을 놈 없다.
허긴 나도 산에서 많이 사기 쳤는데 죄를 받은 게지.
멀리 감악산이 조망된다.
일망무제라 눈앞에 거침이 없다.
나무계단으로 내려와 공주봉 가는 길로 들어서며, 바위모서리에 무릎이 까인다.
많이 아프다 피도 나온다.
아름드리 물박달나무가 나오니 문성이가 기를 받는다고 껴안는다.
물박달나무 껍질엔 기름기가 많아 잘 타며 탈 때 검은 연기가 나기도 하며,
차세대 청청에너지로 개발 연구 중에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 후대엔 큰 역할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이정표상 600m 내려오니 공주봉 삼거리이다.
여기서 공주봉까지는 300m이나 큰 의미가 없어 하산하기로 하고 비탈길로 접어든다.
군데군데 단풍이 보이고 다섯 시간 정도 원점회귀 산행을 하고 내려서니,
때를 잃은 개나리가 피어있다.
10월에 워낙 따뜻했으니 계절의 감각을 잃은 모양이다.
정기산행 후 식사 할 장소를 물색하다 편안한 집 한군데를 찾았다.
수더분한 여인이 막걸리와 더덕빈대떡을 내놓는다.
오늘 청운회와 43포럼이 겹쳤다.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어 총무에게 양해 메시지를 넣으니 전화가 온다.
거듭 양해를 구하고, 한잔 들이키는데 상원이가 어디냐고 전화가 온다.
늦었지만 한잔 더 마시는 유혹을 뿌리치고 43포럼은 참석해야겠구나.
오늘 전병태 총장의 43포럼 참가 독려 메시지를 세 번이나 받았다.
소요산의 금년 단풍은 다들 별로라고 하지만 곳곳에 있는 낙낙장송이 일품이다.
주마간산하지 말고 천천히 오르고 내리면서 즐길 수 있는 정말 좋은 산이다
'이성계왕궁'도 있다고 하는데 여건상 찾지 못했다.
2008. 10. 17. 소요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20 이름이 유명해서 유명해진 유명산<862m> (0) | 2017.03.21 |
---|---|
느림의 미학 19 남도 여행의 진수인 <순천만> (0) | 2017.03.21 |
느림의 미학 17 양구 가칠봉과 펀치볼 (0) | 2017.03.21 |
느림의 미학 16 삼만 원의 행복 홍천 가칠봉<1,240.4m> (0) | 2017.03.21 |
느림의 미학 15 대모산(291.6m)~구룡산(306m) (0) | 2017.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