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20 이름이 유명해서 유명해진 유명산<862m>

김흥만 2017. 3. 21. 19:55


2009.  1.  21.  09;00

간간히 떨어지는 눈송이와 진눈개비를 맞으며 집결장소인 조정경기장 정문으로 가니  

길이 빙판이다. 


자욱한 안개 속 팔당호에 청둥오리 세 마리가 한가롭다.

 

길이 많이 미끄러워 여러군데서 사고가 목격되지만,

노련한 문성이의 운전 실력을 믿고 유명산으로 진행 한다.

 

지난여름 올랐던 백운봉(940m)이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위용을 뽐내며 박무에 잠기기

시작한다.

 

운행한지 한 시간여 만에 도착한 유명산 주차장에서 빤히 보이는 중미산이 외롭다.

 

10;30

유명산 입구에서 잠시 선다.

 

유명산은 해발 862m로서 경기 양평과 가평에 걸쳐진 산으로, 

지형도상엔 이름이 없었던 것을 1973년 '엠폴 산악회'가 국토자오선 종주등산 중 일행 중에 

유일한 여성대원이었던 '진유명'씨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해서 진짜 유명해진 '유명산'이다.

 

옛 지도에서는 이곳 일대 초지에서 말을 길렀다고 '마유산'이라 했는데,  아무튼 거의

정상까지도 초지와 고냉지 채소를 기른다.

인근에는 중미산, 대부산, 소구니산, 어비산, 용문산 등이 있다.

 

등산로로 접어드니 자연휴양림답게 각종 수목에 명찰이 정갈하게 붙여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피해 우회하기로 한다.

 

오늘도 천천히 느림의 등산을 하자.

낙엽 진 단풍나무 옆에 눈이 보이니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된 듯 귀도 시리다.

 

이 산은  나무의 보물창고이다.

다양한 수종이라 눈에 띄는 대로 적어본다.

신갈나무가 지천이며 서어나무과인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그면 푸른빛이 나며, 워낙 물에 민감해  

스님들이 수맥을 잡을 때 나뭇가지 두 개를 가지고 다니며. 물을 만나면 푸득푸득 소리를 내며

떨린다고도 하며 나무가 워낙 단단하고 질겨 회초리나 야구방망이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노린재나무(조경수), 음나무(한약재), 층층나무, 다릅나무, 잔털벗나무, 쪽동백, 고로쇠나무,

개살구가 보인다.

개살구나무는 황벽나무와 껍질이 거의 같아 구분하기 힘들다.

함박꽃나무, 개옻나무, 당단풍나무, 붉나무, 생강나무, 물참대나무도 보이고 너무 많은 수종이다.

 

가파른 고갯길에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진다.

 

활엽수림을 벗어나 잣나무 조림단지로 들어선다.

 

10;30 

산행 시작한지 한 시간이 지난다.

한 시간이면 정상이라고 사기 쳤는데, 사실 아까 지나쳤던 가파른 등산로는

한 시간이면 정상이지만 오늘은 천천히 긴 등산로를 선택했다.

 

인영이가 검은 열매를 묻는데 쥐똥나무 열매라고 답했으나 하산 길에 함박꽃나무 밑에서

똑같은 열매가 발견됐으니 내가 사기 친 걸까?     


8부 능선으로 올라서 고도계를 보니 650고지이다.

 

낙엽과 눈이 쌓였어도 비교적 쉬운 등산로라 아이젠 착용하기가 애매하다.


12;30

두 시간 만에 도착한 정상에는 눈이 제법 쌓였다.

정상의 첫 눈을 우리 일행이 처음 밟는구나.

 

 

다같이 용문산을 바라보며 내 안의 행복을 위하여 소리 친다.

 

용문산(1157m)과 백운봉(940m)이 손에 잡힐 듯 바로 눈앞이다.


 막걸리 장소를 향하여 문성이 이동하는데 그 모습이 산꾼이다.

 

지금 낮 12시 반,

 파란하늘의 흰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달이 보인다. 

 

 

하산 길에 눈이 쌓여있어 아이젠을 착용하고 조심조심 계곡길로 하산한다.

활엽수가 점령한 이 산에 나이가 100년이 넘은 노거송 한 그루가 당당하게 서있다.

 

원래 이 곳은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지형이다.

이정도 자라기엔 오대산 자락의 다섯 배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눈 쌓인 계곡에 작은 폭포가 있다.

 

 

이어지는 하산 길,

발이 불편해 아이젠을 벗고 조심조심 2.7km를 내려와도 아직 2.6km의 계곡길이 남았다.

아마도 두 시간은 더 걸리겠지.

돌 위엔 눈이 그대로 있어 매우 미끄럽다.

 

직경 10m 가 넘는 용소는 꽁꽁 얼었다.

 

이 계곡의 길이는 약 5km이며, 자연 흑암으로 이루어졌고, 대부분이 작은 암반으로 박쥐소,

용소, 마당소 등이 있으며 작은 폭포가 수없이 많고 하늘 벽의 소나무가 멋지게 서있다. 

 

15;00

두런두런 수다 떨기 두 시간 만에 주차장으로 들어선다.

계곡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되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세 시다.

 

친구가 내가 두 가지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정상까지가 한 시간이고, 눈이 5cm 쌓인 거라는데,

사실 눈은 약 2~3cm이지만 바람결을 탄 눈은 5cm가 넘었다.

 

겨울바람에 몸을 맡기고 다음엔 어느 산을 갈까?

첫눈을 밟았으니 오늘은 축복을 받은 산행이다.

 

                                 2008.  11.  21.  유명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