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4.
11월 14일이면 벌써 만추(晩秋)구나.
이금회 점심모임인데 기왕에 남도 여행을 잡았으니 그대로 진행한다.
급할 거 없으니 정속주행으로 네 시까지만 도착하면 순천만을 볼 수 있을 거 같아
여유를 부린다.
400여km를 질주해 4시 15분에 도착하니 너무 늦었고,
람사르 총회의 영향으로 주차장부터 많은 사람들로 시끄럽다.
잠시 후면 해가 넘어가지.
급한 마음으로 갈대숲의 데크를 따라 전망대로 이동한다.
약 30만 평에 달하는 갈대숲에 완전히 압도당한다.
갈대와 억새는 잘 구분을 못할 정도로 많이 비슷하다.
갈대는 꽃이 억세고 좀 지저분하며 주로 강과 바다의 습지에서 잘 자라고, 특히 바다에서는
적조를 막는 정화기능이 있어 천연 하수종말처리장의 역할을 하며 대개는 해발 600m
이내에서만 자란다.
반면에 억새는 산과 들, 물가에 지천으로 피며 잎사귀는 손을 벨 정도로 억세나 꽃은 하얗게
하늘거리며 아주 순하게 핀다.
뻘 바닥에 방게와 농게가 보인다.
방게의 몸통은 청록색으로 집게는 노란색으로 등껍데기는 단단하고 사각형이며 H형의 자국이
보인다.
농게는 사다리꼴의 등껍데기를 가졌으며 눈이 나있는 위쪽은 약간 둥글고 그 양끝은 가시처럼
날카로운데 두 개 다 맛있다.
쇠백로도 보이는데 내 컴팩트 카메라는 기능이 약해 찍지 못하니 안타깝다.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며 살짝 조망을 해본다.
사진작가들이 꼽는 한국사진 10경 중 하나인 순천만 갈대숲 S자 습지가 조망되어 아마투어
실력으로 한 장 찰칵한다.
해는 서서히 떨어지고 일몰이 장엄하다.
집사람은 전문가답게 연실 셔터를 눌러댄다.
"입시철인데 팔공산 갓바위에다 빌지 말고 여기 와서 저 S라인을 보며 기도하면
서울대 갈 텐데"라며 동행한 친구의 농담을 들으며 순천만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등판은 이미 젖었고 배가 고프니 한잔해야겠지.
생태공원 입구의 강변장어 집에 들려 짱둥어탕을 시켜 소주 한잔을 마신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된다는데 소개해준 사람 정성 덕분에 바로 맛있게 먹는다.
홍어탕맛과 비슷하나 훨씬 담백하다.
강원도 여행은 어딘가 모르게 정형화 된 느낌이 드는데 남도 여행은 편하며 여유를 부린다.
낙안읍성은 작년에 들렸으니 바로 숙소인 낙안읍성휴양림에 들려 짐을 정돈한 후
벌교 제일고등학교 교정에서 벌어지는 꼬막축제를 보러간다.
통돼지 바비큐도 보이고,
저 멀리 팔영산이 조망된다.
팔영산은 호남정맥이 제암산, 사자산, 추월산을 지나면 존제산 못 미쳐 고흥반도에
지맥하나를 살짝 내려놓는데,
이 지맥은 장군봉 봉두산을 거쳐 고흥방향으로 천등산 줄기를 갈라놓고 남동으로 뻗어가다가
다도해 한가운데에 609m의 암봉을 솟구쳐놓았는데 이 암봉이 바로 팔영산이다.
엄격히 따지면 동북쪽에 외로이 떨어져있는 깃대봉까지 9봉이다.
기기묘묘한 암릉으로 이루어진 이 산에 오르면 너울너울 춤추는 다도해가 한눈에 잡히고
청명한 날이면 대마도까지 보이는 스릴만점의 암릉 길의 연속이라고 한다.
외나로도 대교 위에서 남해를 조망한다.
문득 고교시절 김상두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여수'를 흥얼거린다.
<집을 멀리 떠나서 외로운 밤 여러 날
오늘은 남쪽바다 섬들을 찾아왔네.
푸른 물결 춤추고 흰 돛단배 오가며
어이해 이 마음은~
갈 길만 아득하게 멀어져만 가노라. >
꾸불꾸불 벌교에서 약 60km를 달려 나로도 우주센터로 들어선다.
우리 조상님들이 수천 년 전 예지를 한 외나로도(나른다의 뜻) 어찌 우주선이 이곳에서 날지
알았을까?
청주 국제공항의 수천 년 내려온 지명도 비행기 이륙 장소는 비상리 착륙지는 비하리다.
조상님들의 지혜에 감탄하며 로켓의 늠름한 모습을 본다.
왼쪽부터 1단형 고체추진로켓 KSR-1 93. 6. 4
2단형 고체추진로켓 KSR-2 98. 6. 11
액체추진로켓 KSR-3 02. 1. 28
KSLV-1 소형위성 발사체(곧 발사 예정) 등이 위용을 뽐낸다.
로켓 옆 해변에 멋진 소나무가 있다.
수령 100년 이상 된 듯 용린 또는 금린이라고도 하는 껍질이 예사롭지 않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달리다 보니 팔영산이 또 조망되어 달리는 차속에서 다시 한 번 셧터를
눌러본다.
벌교에서 4만 원짜리 감을 한 접 사서 차에 싣고 광주를 거쳐 법성포에 들린다.
법성포의 일번지란 식당에서 2만 원 짜리 굴비정식을 들며 소주 한 병을 마신다.
이렇게 한 잔 하는 것도 여행의 재미다.
집사람이 째려본다.
이따 교대 운전해야 하는데 벌써 한잔했으니 다른 사람이 하겠지.
기어코 사단이 벌어졌다.
신탄진 휴게소에서 일행 중 한사람이 식중독으로 토사곽란이다.
119를 호출해 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으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지난번 강구항에서도 오징어 회를 먹고 12명 중 9명이 식중독이었는데, 이번엔 5명 중
두 명이 식중독이다.
소주 한 병 이상 먹은 사람은 전혀 이상이 없고,
조금 먹은 사람이나 아에 먹지 않은 사람은 식중독이라, 검증되진 않았지만 어패류엔
소주가 방패인 모양이다.
순천만은 세계 5대 습지 중의 하나로 5,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약75㎢이며
갯벌면적만 약 21.6㎢라니 대단하다.
칠면초와 갈대숲이 장관이며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흑두루미와 황새,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등 희귀조들이 많다.
또한 대한민국 사진 10경 중 하나인 갯벌의 'S' 자 코스는 정말 일품이다.
2008. 11. 14.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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