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265 제40회 43포럼 이풍원 박사의 전립선 이야기

김흥만 2017. 3. 26. 15:20


2014.  10.  16.  06:00

하늘이 갈가리 찢어지며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번개가 번쩍거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몸이 오싹하다.

가을비 치고는 제법 세차게 창문을 두드린다.

 

17;30

전철 건대역에 내리자마자 수많은 인파에 휩쓸린다.

늘 한적(閑寂)한 곳만 찾던 습관이 몸에 밴 탓인지 나도 모르게 이방인(異放人)이 되어

부산스런 분위기에 쉽사리 적응이 되지 않는다.

 

풋풋한 젊음을 풍기는 학생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군중 속에 성형으로 콧대를 세웠는지

아주 예쁜 미인도 보인다.

이 나이에 예쁜 미인이 눈에 들어오니 아직 떨치지 못한 미망(迷忘)이 남은 모양이다.

더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털어 내야겠는데 제대로 될까?

 

어느 방향이더라,

잠시 멈춰 서서 스마트폰을 열어 오늘의 목적지를 재확인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딛는다.


 

DNA에 의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기에 모두가 예쁠 수는 없지만, 세상 사람들은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하고 누구든지 예쁘고 싶어 한다.

 

지금 내 곁을 스치는 여인, 앞에서 마주 보고 오는 여인,

거의 대부분이 콧날이 오뚝하고 눈은 쌍꺼풀로 비슷하게 생겼다.

같은 병원에서 성형수술로 얼굴에 칼을 댔는지 DNA도 관계없이 다 비슷한 모습이다.

 

비슷한 얼굴이 넘쳐나는 혼잡한 거리를 5분 여 걷는 중에 벌써 쳐다보기가 지겨워진다.

이만하면 미망(迷忘)이 떨쳐졌겠지?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있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호기심이 섞인 설렘도 생기는 법인데,

여인들은 제각기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값비싼 옷과 명품가방이라 일컫는 베네똥,

루이비똥 등 속칭 똥가방을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에 질려 버린다.

 

 

교정으로 들어서 강의실로 향한다.

빗물에 젖었던 빨간 담쟁이 이파리가 바람에 날려 내 앞에서 나뒹군다.

 

여름철의 비바람 속에서도 초록을 뽐내던 담쟁이 잎이 며칠 사이 기온이 뚝 떨어지니

가을이 온 줄 알고 제 몫을 다한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침에 돌풍과 함께 내린 비로 성큼 찾아온 가을 기운 앞에 사람들의 복장은

초겨울 복장이 수두룩하니 뜻밖에 찾아온 가을 추위에 다들 속수무책인가 보다.

 

 

이번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가 내 얼굴 위로 떨어진다.

 

아! 

일엽낙지(一葉落知)니 일엽지추(一葉知秋)라!

나뭇잎 한 장에 가을이 묻어왔구나.

 

건물을 돌아서니 높새바람인양 소름 끼치는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은행나무의 모든 잎이

맥을 놓고 하늘에 노란 그림을 그리며 낙하한다.

 

내일 새벽 산책을 즐기는 한강 뚝 길에는 풀무치, 귀뚜라미 소리 들릴까,

갑자기 낙목한천(落木寒天)이 되면 풀벌레들 신세가 어떻게 될까 근심이 되니 내 소심한

성격은 언제 바뀌려나.

 

2014.  10.  16.  18;30

오늘 포럼의 주제는 이풍원 박사의 전립선 이야기다.

 

전립선은 남성 생식기의 일부이며 요도가 시작되는 부위로 윤상(輪狀)으로 둘러싸는

밤톨만 한 크기의 장기(臟器)를 말하는데, 정액(精液)의 액체 성분을 이루는

유백색(乳白色)의 액체를 요도로 분비하여 정자의 운동을 활발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사실 이순의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립선이 약화되어 전립선비대증이라는

증상을 겪게된다.

 

오줌줄기가 약해져 소변을 한 번에 시원하게 보지 못하니 자주 봐야하고, 심지어는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도 한다.

 

시작하기 전에 브라질에서 사업가로 활동하다 일시 귀국한 이병철 동창의 신상발언에 이어

 

미국에서 영화감독과 와인전문가로 활동하던 김학영 동창이 오스카상을 받은 배우들과

영화를 찍을 때의 이야기와 앞으론 국내에서 영화전문가로, 와인전문가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담담히 말한다.

 

금년이 졸업한지 44년,

420여 명의 졸업생 중 현재까지 약 50여 명이 고인(故人)이 되었다는 사회자의 발언에 이어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한다.

 

18;30

이풍원 박사의 열띤 명강의는 이어진다.

 

우리 나이엔 특히 순환기 계통이 중요하다며, 삼투압 작용을 하는 혈관을 깨끗하게 하려면

양파를 다려 진액으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는 거도 좋지만 특히 양파는 모세혈관을 깨끗하게 해줘서 당뇨에도 좋다고

열변을 토한다.

 

또한 베이비용 아스피린 81mg과 비타민C를 먹으라고 권유를 하며

수용성인 비타민C는 혈관을 튼튼하게 해주고, 배설작용을 원활하게 해줘 괴혈병과

대장암을 억제하는 항암작용을 하는데 매일 세 끼 3천mg을 먹으라고 권한다.

 

고려은단에서 나오는 비타민C가 좋다고 하며 아울러 '무엿'을 먹으면 폐를 깨끗하게

해줘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겐 매우 유익하다고 한다.



이밖에도 전립선엔 소팔메토 약초로 만든 약이 좋으며, 오메가3, 멜라토니를 먹으면 잠이

잘 오고, 대머리는 알로에 샴푸를 써서 모공이 열리면 바나나를 갈아 올리브유에 섞어서

머리에 바르면 좋다고 하며 강의를 마친다. 

 

난 우리 동창들이 자랑스럽다.

동창회를 기준으로 이수회, 금요포럼, 산악회, 사구회 등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동창 모임은

사례가 매우 드믈 정도로 활성화 되어 다른 학교 출신들이 매우 부러워한다.

 

19;00

지난 번 39회 금요포럼을 끝내고 뒤풀이에서 

대형 사슴목장을 계획 중이며, 진행이 되면 많은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을 거라고

전병태 총장은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백수 6년차인 내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은퇴 후 고개 숙이고 산 시간들이 꽤나 되었는데, 나 한테도 '일자리'라니?

 

소모임 청운회에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니 잡일이라도 아웃소싱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위로를 받은 게 엊그제인데,

과거를 회상하며 사는 신세에서 미래를 꿈꾸는 세대가 될 수 있다니 갑자기 앞이 환해진다.

 

우린 인생 60년 시대가 아닌 인생 90년의 신중년(新中年)세대라 생산과 소비의

주체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다.


전병태 총장의 말을 들으며 곰곰이 생각했지.

사실 우리의 경력과 능력을 합치면 시니어 시장을 충분히 개척할 수 있다.

의료,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식품, 여행, 쇼핑, 숙박, 요식, 금융, 차량판매, 인생과 취업상담,

문화예술 등 전산업(全産業)에서 실버마케팅이 가능하다.

 

비록 현업에서 물러났지만 과거보다 더 건강해진 우리는 연금이나 부동산소득에서

탈피해 그 외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최근엔 협동조합법이 개정되어 5인 이상이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어 리스크를 충분히

분산할 수도 있다.


19;00

우리 친구들은 긴 세월을 만나며 서로가 충분히 검증 되었다.

수십 년 만남을 거듭하며 단 한 번의 불상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우정이 돈독하다.

 

따라서 나는 동창회나 포럼 등이 더 활성화 되어 단 한 명이라도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다.

 

우리의 복지는 단연 일자리이다.

관심이 있고 힘이 있는 친구들이 합심을 하면 90인생을 좀 더 유익하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든다. 


 

20;00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임한 즐거운 술좌석에서 사심(私心)없이 봉사를 하는 동창회장,

포럼관계자들의 행복한 표정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년 10월 5일 부용산 등산 후 술좌석에서 전임회장 예우에 관한 시비로 민망스런 꼴을

보며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동창사회에서의 회장이라는 직책은 완장 차고 군림하라는 자리가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친구들이 위임해준 자리이다.

임기가 끝나면 고문이나 전임회장 등 그런 직책 없이 그냥 회원으로 남으면 안되는 건가?

라는 강한 의문이 든다.

 

채명신 장군이 작고 후 일반 사병묘역에 묻히는 걸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받던 중에

그 꼴을 보며 많이 당황한 자리였지.

사심(私心)없이 봉사를 하는 친구들이 상처를 입을까 노파심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다.


동기 동창끼리는 가치관이 서로 다른 수평사회라지만 분명 리더(Leader)는 존재한다.

상하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사회와는 달리 수평사회에서의 리더에게는 무한한 포용력과

대가없는 무한봉사를 원하는 거다.

 

비록 열정과 추진력으로 수평조직을 잘 끌어가는 성과를 거뒀더라도 '함께'가 아닌

폼 잡으며 '끌고 가는'스타일엔 금세 싫증이 나 '피터의 법칙'이 적용된다.

피터의 법칙이란 일은 잘 했지만 나중에 엉망이 되는 걸 말한다.


 

지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사진 선별작업을 하고 졸필을 끄적거리며 내가 나에게 묻는다.

 

이젠 서로 소중하게 여기며 살자.

소중한 우리 친구가 느닷없이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난 게 불과 두 달도

안되었지.

 

친구들아!

죽음의 운명이라는 그림자는 늘 우리 곁에 있다네.

또한 운명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나쁜 존재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면

아주 좋은 인연으로 계속 이어지게도 해준다네.

 

                                            2014.  10.  16. 43 금요포럼을 마치고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