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느림의 미학 227 제 37회 금요포럼 <통증 痛症>

김흥만 2017. 3. 26. 12:43


2013.  11.  22.

가을은 흔히들 고독과 낭만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남자들에게는 흘러버린 세월을 슬퍼하는

계절이다.

 

은퇴 후에는 혼자라고 느낄 때 통증이 오는 법인데, 왜 이리 아프지?

나의 가을은 통증(痛症)의 계절인 모양이다.

 

왼팔과 어깨에 5초 간격으로 오는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서재로 나온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프고, 긴긴밤을 소파에 앉아 하얗게 지샌다.

간신히 제자리를 잡아가던 오른팔도 손이 차지며 칼로 도려내듯 에리다.

 

아침이 되면 가라앉을까 한방파스를 새로 갈아 붙인다.

시간이 지나 5분에 한 번 오던 통증은 조금 늦어지며, 10분에 한 번씩 예리한 송곳으로 찌르는 거

같아 주저앉을 거만 같다.

 

이수회를 가려 전철역으로 향하지만, 너무 심한 통증으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가 포기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작년 2월 15일 봉화 청옥산 등산 후 영주 시내의 5일장을 구경하러 가다가 일톤 트럭의 

사이드밀러에 부딪쳤던 부분이 심각하게 아프더니 어깨 위로 올라간다.

 

언제까지 아플 건가.

이를 앙 물어도 신음소리가 절로 새나온다.

 

가족들이 눈치 챌까 조심해도 신음소리는 여전하다.

남자들은 아파도 아프다 소리를 하지 못하고, 그냥 아픔을 참고, 시간이 흘러 통증이

완화되기만 기다린다.

 

수십 년 전 아플 때의 기억이 나며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종양이 악성으로 변해 어깨까지 아프게 된 걸까?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MRI를 찍어야 한다며 70~80만 원을 뺏어갈 텐데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남자들은 아프거나 삶이 서글퍼져도 울지를 못하고 그냥 마음속으로만 운다.

 

어떤 사람은 힘들고 아프고 어려운 삶을 살아도 울면 삼류(三類), 참으면 이류(二類), 웃으면

일류(一類)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런 말은 고도로 수련이 된 예수나 부처 또는 공자의 수준

정도는 되어야 해당되는 말이겠지.

 

때로는 흔들리는 낙엽같이 외로울 때나 가로등에 흔들거리는 그림자처럼 쓸쓸할 땐 소리 내어

울음을 토해내고도 싶지만, 

이 땅에서 남자로, 가장(家長)으로 산다는 것은 울고 싶을 때 마음대로 울지 못하고 속으로

조용히 울어야 하는 게 숙명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육체의 통증과 내면의 통증(痛症)이 찾아온다.

육체의 통증으로 평생 고통을 받는 사람이 '나'라면,

은퇴 후 내면의 통증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이 소흔(小欣) 정태영 감사이다.

 

생명을 쥐락펴락하는 암종류(癌種類)나 불치의 병을 제외하고는 육체의 통증은 웬만하면

시간과 의사가 해결해주지만 정신적인 통증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가라앉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남자의 느닷없는 은퇴(隱退)를 다르게 표현하면 일종의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도 막상 때가 되면 허둥지둥하는데,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날벼락을 맞는 심정이다.

 

소흔은 일류대를 나오지 못한 학력 complex를 이기고, 한화그룹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여,

IMF외환위기시 그룹의 위기에서 대한생명 인수와 여천 NCC분할을 주도하며 승승장구하다가,

'대우 조선'인수가 불발되면서 인수담당 임원으로 책임을 지고 퇴사(退社)를 하게 된다.

 


퇴사 후 생활 리듬이 급격하게 변화하며 새벽형 생활이 은둔형으로 바뀌게 된다.

주변에서 위로와 관심을 가져줘도 당사자에게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 불면증과 고혈압이 온다.

 

장애를 앓고 있는 작은 딸과 대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늦둥이 아들로 불안초조 속에 우울증도

오고, 아들 하나만 있고 이미 결혼까지 시킨 나와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우울증을 치료하며 성당의 사목회장으로 활동을 하고, 색소폰을 배우는 등 활동을 하지만

해외로 탈출구를 찾는다.

같은 동남아 국가라도 태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등은 익숙하지만 '라오스'라는 나라는 생소하다. 

 

라오스의 메콩강 지류에 있는 산악지대의 사금광(沙金 Gold)을 향해서 떠나지만,

교통과 통신도 되지 않는 오지에서 조직폭력배의 개입, 북한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양아치들,

통역과 컨설팅의 문제, 부패한 관리들의 등쌀로 불면증과 왼쪽 안면마비증세가 발생하는 등

몇 달 만에 산송장이 다 되어 가족이나 주변에 연락도 없이 급거 귀국해 경희대 한방병원으로

입원을 한다.

 

병원으로 찾아가 몰골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더욱이 현지 법인의 대표이사로 되어 있으니 금전적인 문제도 발생할 거 같아 마음이 조린다.

 

그동안 겪었던 일을 담담히 이야기를 하며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은 인정이 없기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너무 많아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이 너무 많으면 사람이 모자라 보이기 때문이지.

 

육체나 정신적으로 바닥까지 추락해 본 사람은 눈물이 있다.

그러나 더 내려갈 수 없는 나락이라 생각하면 오히려 눈물이 마른다.

 

눈물을 흘리고 나서부터는 다시 일어나서 오를 수가 있어 좋다.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알게 되기에,

소흔이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인생 삼막(三幕)을 끝내고, 사막(四幕)을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을 보여주는 거다.



 소흔은 인생 3막을 거치며 사람관리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룹에서 떠나 5년 세월이 흘렸어도 꾸준히 인맥관리를 해온 덕분에 선배가 운영하는 조그만

기업에서 온갖 궂은일을 하다가 '한화저축은행 상임감사'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은퇴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직장에 대해 무슨 한(恨)이 그리 남았는지 떠나면 직장과 동료들에

대해 한풀이 욕을 해댄다.

특히 직장에 젊음을 바쳤다는 등, 누구는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 서운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등

막말을 하며 흥분을 하기도 한다.

 

소흔(小欣)은 달랐다.

상사였든 부하직원이든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고 대화를 한다.

사람에게는 운(運)이 있는데,

즉,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는 길을 사람에서 찾으니, 그룹의 비서실 후배 상무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절처봉생(絶處逢生)을 한다.

 

나는 인내천(人乃天)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인내천(人乃天)이라, 즉 사람이 곧 하늘이지?

나는 가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우리가, 아니 내가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진정한 주체가 된 적이 있었는가?

어렸을 때 보릿고개엔 내가 아닌 '배고픔과 밥'이 주인이었고,

학창시절에는 내가 아닌 공부가 주인이고, 군대에 입대하니 군대조직의 하나의 소모품과

부속품으로, 직장생활에선 나의 존재(存在)가 아닌 직장의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다.

 

가정에선 남편으로서, 아비로서 '나 자신'은 주체(主體)가 되지 못한 세월을 살아오다가,

은퇴 후엔 뒷방 늙은이 신세가 쉽게 되기에 이를 피하려 안간 힘을 쓰는 현실이 서글프다.

 

 

울고 싶을 때 울지도 못하고, 아파도 아프다 소리를 하지 못하는 가장(家長)은

힘들어도 괴로워도 참아야 하고, 기쁜 일이 있어도 마음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바로 우리의

세대이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고 자아실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남을 더 배려하는 세대였지.

 

나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공인가, 구경꾼인가?

성공한 사람인가, 실패한 사람인가? 사실 내 인생(人生)에서는 내가 주인공인데,

스스로 질문을 해가며 끊임없이 자기성찰(自記省察)을 시도한다.

 

며칠 전 고향친구의 부음(訃音)을 받고, 텅 빈 영안실로 달려간다.

다른 문상객은 전혀 없고, 고향친구 8명만 빈소를 지키다 일어나니 상주 세 명만 덩그러니 남는다.

 

차마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친구의 영정에 다시 한 번 명복을 비는 절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빈소의 풍경을 바라본다. 

 


'데카르트'는 '나'라는 주제(主題)를 써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하며

'나'라는 존재를 성립시킨다.

 

그러나 "나는 고독하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가 아닐까,

내가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라서 죽어라고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걸까?

 

내 경조사에서 남들한테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되는 건가?

우리 모두가 그토록 바쁜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고독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고독 저항사회'에

살고 있음을 친구의 텅 빈 빈소에서 문득 깨닫는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리의 나이는 아무리 바쁜척해도 '군중 속의 고독'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은 나이이다.



우리네의 인생에 대해 영화나 연극에서는 대개 4단계로 말을 한다.

태어나 공부를 하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공부시키고, 출가시키고 나서는 홀로서기의

시간이 되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된다.

 

월급쟁이들은 대략 40대 후반에서 50세 무렵이면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한다.

그만 두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평균 기대수명까지 어떻게 견디며 살아야 하나,

그저 맹목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나,

불안의 구름은 우리 세대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과 고대 인도인들의 사 단계 삶은 별로 다르지 않다.

태어나서 25세 까지는 스승으로부터 삶의 경험과 지혜를 전수 받는 학습기(學習期)요,

50세까지는 가주기(家住期)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인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며,

50세가 넘으면 대략 75세 까지 임서기(林棲期)를 갖는다.

 

즉, 임서기(林棲期)란 가정과 사회로부터 벗어나서 한적한 숲 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동안 사회적 의무를 다하였으므로, 이제부터는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시간을 투자하는 단계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는 연습을 하며 금욕생활을 한다.

 

75세가 지나면 유랑기(流浪期, 流行期)로서 세속적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삶의 마지막 단계이다.

 

그냥 얻어 먹으면서 떠돌아 다니는 거지의 삶을 이야기 하는데,

암튼 자연을 가까이 하면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한다.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이 81.1년으로 독일, 미국인 기대수명보다 더 긴 것으로 발표되었다.

 

OECD 평균 80.1년 보다 1년(남성 77.7년, 여성 84.5년)이 더 길다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오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는지를 나타내는 건강수명이 문제이다.

 

 

이러한 고민을 소흔은 그동안 앓았던 통증의 경험으로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 후,

 

-삶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利己的)이어야 하며,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 들이며,

-스트레스가 동반된 생활을 여유로써 겸허히 받아 들이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며,

-가진 것을 스스로 내려 놓고 비우면서,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면,

 

지독한 외로움과 통증이 있어도 방황과 좌절을 끝낼 수 있다며, 은퇴 후 '숨바꼭질의

행복공식'을 제시한다.

 

이 글을 정리하는 이 시간 겨울을 재촉하는 세찬비가 창문을 마구 두드리고,

뜰에 서 있는 목련의 마지막 잎새가 비바람에 떨어지다가 서재 창문에 매달린다.

 

낮에 잠잠했던 어깨 통증이 점점 더 심해진다.

오늘 밤은 제대로 잘 수가 있을까?

 

                                2013.  11.  22.  금요포럼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