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24 금오도 비렁길의 단애(斷崖)

김흥만 2017. 3. 31. 15:23


2017.  3.  24. 05;30

여수 여객선 터미널은 썰렁하다.


6시 10분 금오도행 첫배를 타려면 승객들로 어수선할 텐데 대합실은 텅 비고

카메라를 든 나만 어정거린다.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Tv에선 세월호 인양소식이 방영되며 배를 타야할 나에게

경각심을 준다.


06;00

배가 떠나려 한다.

잠시 부두에 혼자 서있는 시간은 외로운 시간이다.

가끔은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이 좋다.


혼자 있으면 자기성찰을 할 수 있어 좋고,

때로는 고요함이 평화로워 좋기에 요즘은 침묵(沈默)하는 법도 배우려 애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나의 내면을 볼 수 있어 좋은 섬 여행,

배는 6시 10분이 되자 고동소리를 울리며 출항을 한다.


급작스럽게 이뤄진 금오도 여행,

사전에 충분한 예습도 없이 그냥 배에 몸을 맡긴다.


풍랑도 없는 잔잔한 바다를 달리기에 배는 요동을 칠 필요도 없다.

누워서 잠을 청하던 사람들이 코를 골기 시작한다.


배의 상갑판에 나가 멀어져 가는 여수항을 바라본다.

여명 속에 등대는 서서히 멀어지고 이순신대교의 불빛도 사라진다.


이순신 대교를 바라보며 임진왜란과 요즘 사드 배치로 보복에 나선 중국을 생각한다.

중국의 사드보복은 일종의 전쟁선포나 마찬가지다.


큰 나라인 중국이 완력으로 작은 나라인 우리의 정책을 바꾸려는 무력행사인 셈이다.

우리로서는 퇴로(退路)가 없다.

굴복하는 순간 주권국의 지위에서 떨어져 종살이를 하게 되는 거다.


병자호란 때처럼 선조 임금이 9번이나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구배(九拜)를 하던

삼전도의 수모를 또 당해야 할 것인가.


물론 국력 차이가 현격히 나고 우리의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나는 밀리터리 마니아로 전쟁에 관한 책이나 자료를 많이 본다.


보스톤대 토프프 교수는 1950~1998년 중 강대국과 약소국이 벌인 전쟁을 분석했는데,

인구와 군사력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 45개 비대칭 전쟁 중 약소국이 55%나 이긴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우리나라도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에서 프랑스와 미국이 실질적으로 졌고,

소련은 아프카니스탄 침공에서 패퇴했고,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과의 세 차례 전쟁에서 다 이겼다.


약소국은 전쟁에서 지면 망한다.

따라서 생존이 걸렸기에 더 치열하게 싸운다.


1979년 2월 19일 중국이 20만 병력과 항공기 700대, 탱크 400대 및 각종 중화기를

동원하여 1천2백 km 전국경선을 넘어 베트남을 전격 침공한다.

베트남 영내 50km까지 진군하였지만 베트남은 정규군이 캄보디아에서 미처 철수를

못하자 지방군을 동원해 게릴라 전술과 교묘한 대전차 전술로 중국군을 괴롭힌다.


추가로 10만 병력을 증원해도 기습, 야습, 유격전에 2만 3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피해가 점점 커지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중국군은 한 달 만인 3월 17일 베트남에서

철수한다.


역사상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약소국은 예외 없이 '호치민' 같은 훌륭한 정치지도자를

갖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은 탄핵되어 파면이 되었고, 정치권은 분열되었다.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야당 의원들은 중국에 건너가 눈치나 살피고 대통령 유력 후보들은

한결 같이 중국에 관대하기만 하며 맞설 전략이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존망(存亡)의 위기에 빠졌을 때 이순신, 곽재우, 권율 같은 리더가

나타났다.

북핵과 사드 보복, 대통령 파면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 과연 위대한 지도자는

혜성같이 나타날 것인가.


멀어져가는 이순신 대교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나라를 걱정한다.


여수항을 뒤로 하고 긴 항적을 남기며 여객선은 달린다.

한 시간 반이면 금오도에 도착하는데 나는 섬에서 어떤 풍경을 만날까.


광양 백운산에서 봄다운 봄을 만나지 못했는데, 내가 금오도까지 봄마중을 가면

봄꽃들이 나를 환영 할까.


아니면 새들이 반갑다고 지저귈까.

설레는 마음으로 객실로 들어가지 않고 갑판에서 서성대며 먼 바다를 바라본다.


06;30

객실로 들어오니 세월호 인양소식이 뉴스로 방영이 된다.

중앙에 비치 된 구명조끼와 구급대의 수(數)를 선실 안에 있는 승객과 대비해 본다.

삶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며 복잡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인천에서 세월호와 똑같은 배를 타고 제주도 한라산에 다녀왔었지.

세월호 사건 이후론 배를 타면 늘 걱정이 앞서고 구명조끼와 구명정을 확인하고

선원들의 복장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일종의 트라우마라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들다.


배를 탈 때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결심도 쉽게 내리지 못한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흔들리기 때문이다.


07;15

해무(海霧)를 뚫고 태양이 솟았다.


07;40

여수항을 떠난 지 1시간 30분 만에 금오도 함구미항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니 반겨주는 주민이 한 명도 없고,

강아지 한 마리가 이방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시선을 다른 데로 옮긴다.


2009년 기준으로 인구가 남자 823명, 여자 834명으로 1,657명이나 된다는데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섬 동쪽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리와 장지마을에서 외출을 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금오도 비렁길을 걸으며 나 자신의 길을 찾으려 한다.

멋진 풍경이 아니라도 나 자신의 길을 찾게 되면 환희를 느끼겠지.


된바람 몰아치던 날은 언제나 그랬듯이 늘 높은 산을 벗어나지 못했지.

그러나 오늘만큼은 나지막한 산자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느긋함을 누리고 싶다.


운이 좋다면 동토(凍土)를 뚫고 올라온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을 만나는 행운도

훈풍이 부는 바닷길 산길에서 진달래꽃 아래에서 잠시 여유를 부리는 것도 섬 여행이

주는 묘미(妙味)라 할 수 있다.


08;00

아직 바람은 차다.

나무숲 속에서 한 송이 핀 동백꽃을 보며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떠올린다.


동백 아가씨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지치고 울다 지친다.

말 못할 사연을 가슴에 안고 가신님을 기다리는데~~~'


동백꽃은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고통 즉 애별리고(愛別離苦)를 뜻한다.


사람의 7가지 고통 중

태어나는 고통인 생고(生苦), 늙는 고통인 노고(老苦), 병드는 병고(病苦),

죽는 고통인 사고(死苦)는 평범한 사람이나 또는 도(道)를 깨우친 사람이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피할 수가 없는 절대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열심히 살다보면 애별리고는 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동백꽃잎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구나.


매화향(梅花香) 가득한 계단을 올라 숲으로 접어드니 바람이 한결 잦아들었다.


털머위에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문득 대마도에서 만났던 노란 털머위꽃이 생각난다.

                                                                               2014년 10월 24일 대마도에서 촬영한 털머위꽃                


섬 길은 버리는 연습을 하기에 아주 적당한 길이다.

버림은 물건만을 버리는 게 아니다.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욕심을 버리는 것도 아니다.


가끔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인연이 끊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의무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지.

나는 섬길을 걸으며 버리는 연습을 해보련다.


08;08

호젓한 산길은 넓고 뚜렷하다.

야트막한 산 옆구리 길은 굵은 소나무가 주는 향기와 바다 냄새가 아우러져

비염으로 고생하는 나의 코를 상쾌하게 해준다.


1448년에 소나무를 국가가 사용하기 위해 벌채를 금지하는 봉산(封山)이 되었기에

기대했던 동백나무보다는 소나무가 더 많이 보인다.


조선시대 궁궐을 짓거나 임금의 관을 짜고, 함선(艦船)인 판옥선을 만들 재료인

소나무를 기르고 가꾸던 황장봉산(黃腸封山)에 민간인인 내가 들어서다니 세월이

많이 좋아졌다.


토종 약초 연구가 최진규 선생이 기관지에 최고로 좋다는 곰보배추가 산길에서

싱싱하게 자란다.

언뜻 보기에는 배추를 닮았고, 소리쟁이와 비슷하기도 한 곰보배추를 경상도에서는

문둥이배추라고도 한다.


해수, 천식, 기침에 최고의 신약이라는데 푹 삶은 다음 막걸리를 만들어 마시면

기관지염 , 천식, 해수, 기관지 확장증, 기침 등이 치료되며

여성들의 부인병, 불임증, 생리 불순, 자궁염, 혈압, 당뇨, 간염, 두통 등에도 신통한

효력이 있다고 '최진규 선생'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 곰보배추를 적극 칭찬을 한다.


전망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행복에 대해 생각을 한다.

무엇이 행복일까.

건강과 경제적 풍요가 이뤄지면 행복한건가.


그렇다면 행복이 별게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은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잘 먹고 오래 살면 행복이라고 하지.

그러나 행복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


08;20

전망대에서 보는 바다와 산의 경치는 막힘이 없고,

등산보다 둘레 길을 걷는 편안한 느낌은 어제 백운산 너덜과 상봉에서 지친 몸을 달래준다.


짙은 해무만 아니라면 점점히 떠있는 수많은 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속에

시원하게 터지는 바다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바로 이런 기분에 섬 산을 오르고 걷는 것이 아닐까.


이 산이 대대산(382m)인지 옥녀봉(261m)인지 주민들이라도 있어야 물어볼 텐데

지도도 없으니 나도 모르겠다.


침강운동으로 만들어진 해안선 절벽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이른바 리아스식 해안은 아찔한 단애(斷崖)다.


이런 단애의 풍경으로 비렁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나 보다.



벼랑의 모퉁이에서 만난 개별꽃.

꽃이 피고 파란 잎도 나고 숲도 서서히 변해간다.

해맑은 꽃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도 없어진다.


비로소 빈 마음이 되는 건가.

렌즈를 가까이 대며 개별꽃이 무슨 말을 하는 지 귀를 기울인다.


우리가 가진 행복관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현실적이고 안정지향적인 행복관을 가져서 그럴까.

나는 아니다라고 단언을 한다.


배고픔이나 단명을 걱정하는 어리석음,

비만과 고령화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큰 부족함이 없이 편하게 사는 게 행복이라는 소극적인 생각도 거절한다.


행복의 핵심은 자기 자신 스스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속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자주 누리는 것이다.


돈이 많고 권력과 건강을 가졌다 해도 일상에 기쁨이 없고, 무미건조한 상태라면

행복하다고 할 수가 없다.

작은 개별꽃을 보면서 반갑고 기쁨에 나는 행복을 느낀다. 


절벽아래 보이는 어선이 그물을 내리고 고기잡이를 한다.

어선을 향해 소리를 치지만 그 소리는 절벽에 메아리 되어 금세 되돌아온다.


다시 제비꽃을 만난다.

이렇게 작은 꽃을 보면 개별꽃에서 느낀 그대로 행복함을 느낀다.


꽃을 바라보며 자연속의 나를 찾았기에,

이 순간만큼은 고통과 갈등, 욕심과 불안, 그리고 허전함을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작은 제비꽃을 바라보며 단순함 속에 평안과 기쁨을 얻은 거다.



풍을 막아 준다는 방풍나물이 지천으로 자란다.


이름 모를 섬들이 배처럼 떠있고,

그 섬들이 그려내는 수묵화의 풍경 속에 어선 한 척이 긴 항적을 그리며 들어온다.

만선(滿船)의 기쁨을 안고 돌아올까.


금오도 여행의 끝은 한 잔의 술이다.

전어무침과 방풍나물전으로 소박한 술상을 차린다.


술상을 차리고 가까이 앉으면 서로 이마의 주름이 자세히 보인다.

반복되는 삶의 공간에 있다 보면 변하는 모습이 가끔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젊음이 사라지고, 남았던 꿈도 내면에 고이 접으면 가끔은 아픔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끝없는 열정이 있다면 황혼의 향기가 피어날 수도 있겠지.

문득 지나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고독이 되어 몸서리치게 한다.

가까운 친구들과 술잔을 나눌 때

우리라는 용어와 함께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맴 돌지.


서로가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하면 나도 모르게 서로 행복을 느낀다.

세상을 살며  두려움이 없는 패기(覇氣)와 뜨거운 열정(熱情)이 식었어도

아직은 황혼을 누릴만한 용기(勇氣)는 남았다.


주변이 섬들로 둘러싸여 호수처럼 아늑한 분위기의 금오도에서 여행도 끝나간다.

소박한 뒤풀이 메뉴였지만 취기(醉氣)보다는 마음의 포만감이 더 크다.


섬의 모양이 자라를 닮았다고 하여 금오도(金鰲島)라 부르게 되었다는 섬을 떠난다.

언제 또다시 이곳에 올까.


삼월의 함구미 포구는 여전히 적막(寂寞)을 지킨다.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복잡한 여름보다 한적하고 여유 있는 봄날의 금오도 여행에서

만난 파도가 포말을 그리며 다시 오라고 손을 흔들며 유혹을 한다.


섬에서 머무른 세 시간,

짧은 시간에 섬의 전설도 알지 못한 채 제대로 정도 붙이지 못하고 나그네는 떠나간다.


                                                                          2017.  3.  24.  여수 금오도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