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26 문경 주흘산 주봉(1,076m)의 목소리

김흥만 2017. 5. 5. 14:31


2017.  4.  27.  08;30

싱그러운 봄날이다.

흐드러지게 피어 화려함을 뽐내던 벚꽃도 다 사라졌고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달라진다.

칙칙한 회색과 무채색으로 혹한에 시달리던 대자연은 연둣빛으로 물들어간다.


봄꽃과 연두색은 희망의 시작이다.

내가 탄 차는 중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오른쪽으로 도드람산이 도드라지게 보이는 거친

암봉과 절벽이 신록(新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도드람산은 저명산(猪鳴山 349m)이라고도 하지.

많이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무척 까다롭고 기암괴석이 절묘한 경관을 이룬다고 소문이

난 산으로 동두천 마차산 마고할미의 전설과 하남 객산의 전설과 비슷하다.


옛날 삼각산 산신령이 삼각산을 만들 때 마고할미가 지리산 도드람봉을 끌고 가던 중

삼각산이 이미 완성되어 저 자리에 버린 것이 지금의 도드람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약초를 캐는 효자가 절벽에서 몸을 묶은 밧줄이 위태롭게 되자 돼지가 울어 효자의 목숨을

건졌다는 도드람산을 보며 묘한 생각에 빠진다.

돼지는 알려진 거와 달리 탐욕도 없고 깨끗한 동물인데 사람들은 돼지를 더럽고

욕심이 많다고 욕을 한다.


조류독감으로 사람들은 많은 닭과 오리를 산채로 땅 속에 묻더니 구제역으로 또 많은

돼지를 땅속에 생매장을 한다.


돼지는 죄가 많은 동물인가. 

유대교와 이슬람권에서는 불결하고 재수 없는 동물로 여겨 돼지고기를 먹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상서로운 동물이다.


나무(木)도 돼지(亥)를 만나면 지상에서 최고의 무기로 꼽히는 핵(核)이 되기도 하고,

집 가(家)자도 갓머리라는 지붕아래 돼지 해(亥)가 있을 정도로 친근감이 있으며,

복권당첨을 암시하는 꿈 중에는 조상 꿈과 더불어 돼지꿈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통계도

나왔다. 


여기저기 담벼락에 대통령 출마자 15명의 사진 벽보가 붙었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흘러 넘쳐 돼지보다 못한 인간들의 사진을 보니 괜히 심사가

사나워 지길래 마음을 다스리고자 문경 땅의 진산(眞山)인 주흘산(主屹山)을 찾아

남으로 훌쩍 떠난다.


10;05

산, 산, 산(山)이라,

새로운 산을 만난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전국 지도를 펼쳐놓고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훑어 본다.


어느 산이 나를 설레게 할까.

낯설지만 어느 산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할까.


지도가 좋은 건,

지도를 펼치면 낯선 세상과 더불어 낯익은 세상도 내 눈을 통해 가슴으로 들어온다.

설사 낯설고 두려워도 좋은 건 내 가슴이 뛴다는 거지.


지도를 보며 다시 자연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면 신나서 궁둥이가 들썩거린다.

이게 바로 백수가 제대로 산다는 재미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내 인생의 절반은 산(山)이었구나.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문경을 지날 때면 늘 마음이 푸근해진다.

장엄하게 이어지는 백두대간 산줄기기 눈앞에 보이는 까닭일까.


조령산(1,025m) 터널을 벗어나면 왼쪽으로 근사한 암봉들이 나를 반기며 춤을 춘다.

아~내가 오늘 저곳에 오르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선비들이 사랑하는 문경새재 땅을 두 번째로 밟는다.

이화령을 넘으며 왼쪽으로 울퉁불퉁한 산봉우리를 보며 항산 궁금했던 산,

봉우리가 불을 연상시키는 화(火)자를 닮은 주흘산,


과거급제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오고가며 좋은 소식을 듣게 된다는 뜻의

문희(聞喜)에 경사스러운 일의 조짐이 있다는 뜻의 경서(慶瑞)가 더해져 문희경서

(聞喜慶瑞)땅이 된 문경의 진산 조흘산,


조령산을 오르며 주흘산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에 다음날을 기약하던 주흘산은 산의

모양과 같이 화기(火氣)가 많은 산일까.

전문가들은 산이 악산(惡山)이면 화기가 많다고 하지.


박물관 뒤로 뾰족하게 솟은 관봉(冠峰 고깔봉)이 산행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은근히 겁을 준다.


주민들은 저 고깔봉을 여인의 젖무덤으로 보고, 바라보이는 산세가 여인이 반듯하게

누운 형상이라고 해석을 하는데 약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며, 문득 해남 대흥사에서 보던

두륜산의 와불(臥佛) 형상이 떠오른다.


조령은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다.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고개(鳥嶺)로 유명한 주흘산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산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며,

미모가 뛰어난 여사장에게 예쁘다고 칭찬을 하니 많이 좋아한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춘다는 말이 있듯이 삶을 살아가며 서로 칭찬을 많이 하여야 좋겠지.


귀면(鬼面)을 한 거친 바위는 오늘의 힘든 산행을 예고하는 걸까.

거친 귀면존의 기법으로 만들어진 암벽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선비도 비슷한 심정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겠지.


새재의 좌우엔 조령산과 주흘산의 거친 산세로 천연으로 만들어진 최고의 요새(要塞)이다.

임진왜란 당시 최고의 무장으로 꼽혔던 신립장군은 이곳에서 매복전과 게릴라전을

하지 않고 왜 탄금대로 이동하여 패장(敗將)이 되어 투신자살을 택하였을까.


그는 병서(兵書)를 많이 공부하여 병법(兵法)에 능할 텐데 최악의 길을 택하였으니 이 또한

미스테리(mystery)다.

신립장군은 야지(野地)에서 단병접전과 기마전이 유리하다고 판단이 되어 충주 달천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陳)을 쳤으나 조총소리에 놀란 말들과 병사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그와 8천 군사들은 몰살을 당하고 선조 임금은 급히 신의주로 도망가기에 이르렀다.


주변의 산세와 고개의 형세를 보며 묘한 생각에 잠긴다.

내가 만약에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이라면 조금 전 사진을 찍었던 바위 등 지형지물을

이용해 적절한 매복전을 활용하였을 텐데 이 부분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주흘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문경새재에는 임진왜란 후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세 개의 관문(館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는데 그중 제1 관문(關門)인 주흘관(主屹館)을 향한다.


정상 부근의 아찔한 벼랑이 철옹성처럼 느껴지는 주흘산,

제1 관문인 주흘관(主屹關)으로 들어서니 갑자기 신립장군의 노호(怒號)가 들리며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


아울러 암울한 기분도 느끼게 하는데 왼쪽으로는 조령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주흘산의 거대한 암괴가 거칠게 치솟은 모습에 미리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10;15

한 줄기가 올라와 세 줄기가 되더니 세 줄기 중 같은 나무 두 줄기가 연리목(連理木)이 된

회화나무 옆을 지난다.


찻사발 축제를 준비하느라 여기저기에 천막이 쳐져 있고 그 사이로 들어간다.

주흘산 주봉까지는 4.5km라 쉽지는 않겠지만 이 산에 담긴 이야기를 최대한 들으련다.


10;20

산행은 2코스를 택하는데 총 16.5km에 8시간이 소요된다니 체력안배를 해야겠다. 


신길원 현감을 모신 충렬사가 산속에 고즈넉하게 있고 경건한 마음으로 통과를 한다.


신길원 현감은 문경현에서 선정을 베풀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문경현을 사수하다

장렬히 전사를 하였으며 그 후 나라에서는 좌승지로 추서하여 그의 충절을 기린다.


입산을 통제하는 직원이 우리에게 연락처와 서명을 요구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근무하는 모습이 당당하다. 


곡충골(穀蟲谷)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전나무의 비늘잎이 피튼치드를 마구 내뿜는다.

한 달 내내 감기로 콧물이 흐르던 코에 상큼한 공기가 들어가니 어느새 코가 말랐다.


약간 음침한 분위기의 계곡은 작은 폭포가 나오고 맑은 물소리가 들리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주흘산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는 산이다.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中嶽)으로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靈山)을 내가 지금 오르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삼산오악(三山五嶽) 중

삼산(三山)은 백두산 밑에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이라고 했다.

또한 오악(五嶽)은 동악(東嶽)을 토함산, 남악은 지리산, 서악은 계룡산, 북악은 태백산

중악은 팔공산을 말하는데 여기서 중악이라 함은 큰 산을 말하는가 보다.


이화령이나 3번 국도를 타고 문경에 들어서며 기세당당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다.

평범한 산이 아닌 비범(非凡)한 산이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를 당하면서 가슴이

후련해지는 주흘산 산속에 내가 들어왔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鳥領)을 기준으로 고개의 남쪽에 있으면 영남(嶺南)이라

부르며,

옛 기록에 주흘산은 돌산이 치솟아 그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名賢)을 배출한 동방인재의 부고(府庫)라고 했다.


머리를 숙이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어디선가 폭포소리 들린다.


10;42

물줄기를 따라 가파른 사면을 오르다보니 절벽 틈 사이로 몸을 감췄던 여궁폭포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높이가 20여 m에 이르는 폭포는 수정같이 맑은 물을 하늘에서 계속 쏟아 내린다.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폭포는 형상이 여인의 하반신과

같다하여 여궁폭포 또는 수줍은 여인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여심폭포라고도 불려진다.


폭포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세속 일을 잊으려하지만 산에서도 세속에서와 같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를 않는다.


10;49

출발한지 30분 만에 만난 이정표는 주흘관에서 0.9km로 15분이라고 썼는데,

나는 30분이나 걸렸으니 어느 게 맞을까.


내가 느림의 산행을 제대로 하는 모양인가.

한 달이나 감기약을 먹었더니 내 몸에서 나는 고약한 땀 냄새는 약냄새이겠구나.


내 고도계는 400m로 표시되는데, 이정표엔 350m이다.

날이 좋아 기압이 일정한데도 50m 오차가 생기니 머릿속에서 고도를 수시로 수정해아겠다. 


미나리냉이가 참나무 밑에 활짝 피었다.

개화시기가 5~7월로 기억하는데 이 꽃은 성격이 급한지 4월에 서둘러 피었구나.


쭉쭉 뻗은 금강송 아래에서 심호흡을 하니 온몸에 에너지가 충전이 된다.

소나무 숲은 다시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고 늦은 진달래와 이르게 핀 철쭉이

혼재한다.




현호색과의 노란 '산괴불주머니'도 피었다.


괴불주머니란 말은 어린아이의 주머니 끈 끝에 차는 노리개를 음낭(陰囊)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색 헝겁을 귀나게 접어서 세모 모양을 만들어 속에 솜을 많이 넣고 수를 놓아

색 끈을 다는데,

누가 이 꽃의 이름을 괴불주머니로 지었는지 그의 재치를 높게 평가한다.  


쌍폭에서 떨어지는 요란한 물소리가 산의 침묵을 깬다.


폭포수 소리가 멀어질 무렵 다시 다리가 나오고 울창한 숲은 연두색으로 변한다.


계곡에 흐르는 물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가면 혜국사가 나오지만 혜국사를 생략하고 곧장 '주봉'으로 오른다.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847년) 때 보조국사가 창건하였다니 1,130년이나 된 비구니 고찰로

고려 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亂)을 피하여 이곳에 행재 하였을 때 국은을 많이 입었다고

해서 법흥사(法興寺)를 혜국사(惠國寺)로 개명하였다는데 새순이 돋는 나무 사이로 살짝

보인다.


낙엽 밟는 소리가 없어도 흙으로 덮인 산길은 부드럽다.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오르니 쭉쭉 뻗은 금강송이 각선미를 자랑한다.

문화재가 남대문처럼 참화를 입으면 또 어명(御命)을 받을만한 소나무가 빼곡하다.


11;45

2,210m 를 올라왔지만 아직도 주봉까지는 1,540m 가 남았다.

물론 도상(圖上)거리와 실제거리가 다르겠지만 이정표를 보니 시장기를 심하게 느낀다.


이정표 앞에 서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인생은 쉼이다.

특히 우리 나이엔 쉼이 필요하다.

쉬지 않고 내달리고 오르면 다 오르지도 못하고 마침표를 일찍 찍는다.

한라산편에서 썼던 우생마사(牛生馬死)가 생각난다.


산에 오르다 보면 가파른 고갯마루에 앉아 가슴을 다독일 때가 많다.

육신이 지쳐 까닭 모를 서러움에 목이 메기도 하지만 잠시 서서 한숨을 쉬니 웅크렸던

마음이 열리고,

한 달간 복용했던 감기약의 찌꺼기를 세상 밖으로 뱉어내니 살 것만 같다.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을 참 많이도 올라왔다.

한 걸음 한 걸음 올라온 길이 저리도 먼 길을 올라왔던가.

눈 들어 정상을 바라보니 새로움이 보인다.


소나무가 두 아름이 넘는다.

사람들은 주흘산 소나무를 춘양목과 견줄만하다 해서 주흘목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임금의 관은 가래나무로 짜 재궁(梓宮)이라 했다.

나중에는 소나무의 뱃속이 붉은 황장송(黃腸松)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런 소나무가 제격이겠다.


독이 강한 '피나물'도 계곡에서 노란 꽃을 피우고,


1분을 더 올라가니 지천으로 군락을 이뤘다.


높지 않은 벼랑엔 노랑제비꽃과 개별꽃이 데이트를 한다.


12;21 해발 850m

대궐터(大闕止)의 대궐 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약수다.


한 모금을 마시니 뱃속이 짜릿할 정도로 차가워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땀 흘린 수고에 보답을

해준다.

굴맛 같은 샘터를 누가 만들었는지 고마워하며 빈 병에 약수를 채운다.


나뭇가지 너머로 새하얀 바위벽이 철옹성처럼 보이는 조령산이 박무 속에 우뚝하고

다시 정상을 향해 걷는다.



이제껏 가파른 사면을 타고 올라왔다.

이 계단이 끝나는 곳엔 하늘이 있을까.

제대로 된 능선 길을 걷지 못하고 땅바닥만 보고 올랐더니 목이 아프다.


계단이 몇 개나 될까.

800개를 세다가 계단 아래에 핀 '홀아비바람꽃'을 찍으며 세는 것을 포기 한다.


독성이 강해 농약과 살충제 원료로 쓰는 '여로'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배가 고픈 산돼지도 이 여로는 독이 있다는 걸 아는지 건드린 흔적이 없다.



친구가 사탕을 하나를 까서 입에 넣어준다.


산행을 하며 지쳐갈 때 사탕 하나 또는 초콜릿이 큰 도움이 된다.

당뇨라는 질환이 있든 없던 단 음식이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열량으로 변해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주흘산에서 제일 높은 영봉(1,106m)이 흰 구름 아래 한가롭다.


끝났다고 생각이 들던 계단이 또 나타난다.

천 개가 넘었을까 생각하다 고개를 젓는다.

천  개면 어떻고 이천 개면 어떨까 산을 오르는데 도움을 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지.


갑자기 절벽이 갈라지면서 산 아래가 한눈에 들어오고 두 개의 암벽 사이로 협곡인

전좌문(殿座門)이 나온다.

가까이 다가서니 발아래는 수백m 높이의 절벽이라 섬뜩하다.


전좌문은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침입을 피해 복주(福州 안동)에 피란했다가 떠나는

길에 동화원 부근 어류동에 머물면서 매일 올라 북쪽 계립령로(鷄立嶺路 하늘재)를

바라보며 희소식을 기다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2;56

정상까지는 130m 가 남았구나.


해발 1,000m 가 넘는 곳에서 '아기현호색'을 만난다.

주로 산 아래 양지 바른 곳에 피는데 이 녀석은 어쩌다가 이 높은 곳에 홀로 피었을까.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애잔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청자 빛인지 연한 자주 빛이 도는 연보라색은 신비스럽기도 하지만 나에겐 천상의 피사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꽃의 뿌리는 독성이 강해 진경, 진통약으로 쓰는데 몰핀 성분이

다량 들어있다고 한다.


종달새를 닮은 현호색을 보니 두 다리에 힘이 생기고 거칠었던 숨이 안온(安穩)해진다.

이제 130m 만 오르면 정상이다.


13;06

세찬바람을 안고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주흘산 정상인 주봉(1,076m)에 올랐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이 산의 끝자락에서 환희의 소리를 질러본다.

이제 제대로 목소리가 나온다.


참 오랜만에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감기는 오만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목이 잔뜩 부어 거의 한 달간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가래가 별로 없는데도 콧물로 코가 막히고 목이 아프니 말도 하기 힘들다.

어쩌다 통화를 할 때도,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길게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탁한 목소리가 들리면 상대편에서 불편해 할까봐 조심스러워진다.


당구장 한쪽 구석에서 노인 6명이 당구를 치며 떠드는데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합친 것보다

더 커 게임에 열중할 수가 없다.

당구장 주인이 가서 주의를 줘도 금세 바뀌지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 청력이 떨어져 본인은 살살 이야기한다 해도 상대편은 크게 들린다.

우선 자기 귀에 작게 들리니 목소리의 크기는 반비례로 점점 커지는 거다.


또 다른 사람은 이야기를 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혼자만 들리게 중얼거리기에 재차 묻기도 하는데,

아기들 옹알이는 귀엽지만 노인이 되어 웅얼거리며 옹알이를 하는 것도 듣기에 불편하다.


오늘 산에 와서 큰소리를 내보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한 번 크게 소리를 질러본다.


한 달 만에 내 목소리를 찾았다.

관상불여음상(觀相不如音相)이라,

목소리를 들으면 사람에 대하여 얼굴을 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목소리에 따라 성격과 기질이 다르며, 목소리가 달라지면 건강과 운세(運勢)도

달라지기에 혈액검사를 하니 전 항목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일단 안심을 한다.

나의 오장육부 중 공명(共鳴)기관이 고장 났기에 힘든 시간을 보낸 거다.



나는 TV 등 매스컴에서 좌담이나 토론을 할 때 나온 패널들의 목소리를 유심히

관찰하는데 나중에 보면 내 예측이 거의 빗나가지 않았음을 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도 목소리를 많이 관찰하고 당사자 본인도 몰랐던

건강을 지적해 고친 친구도 있고, 지적했지만 아쉽게 불귀(不歸)의 객이 된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하면 공부를 많이 하거나 도(道)를 닦으면 내공(內功)이

쌓여 목소리가 맑아지면서 탁음(濁音)이 사라진 저음(低音)으로 바뀐다고 한다.


실제로 술 담배를 많이 하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 목소리가 갈라지고 탁해지는데,

옆에서 당구를 치는 다른 팀 사람들 목소리가 너무 크고 탁해 듣기 싫을 때가 많다.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칠 계음을 배웠고,

3학년이 되었을 때 '궁(宮), 상(商), 각(角), 치(徵), 우(羽)'라는 우리나라 전통의

소리 5단계를 배웠지.


궁은 토(土)에 해당하여 가장 낮은 저음이라 포용력과 안정감을 준다.

상은 금(金)으로 카랑카랑한 목소리,

각은 목(木)으로 안정된 목소리,

치는 화(火)로 화(火)가 격발하는 목소리, 

마지막으로 우(羽)는 수(水)에 해당하여 가장 높은 고음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화가 나거나 흥분되면 큰 목소리를 내지만 나는 반대로 목소리가 점점

아래로 내려와 저음으로 바뀐다.

한동안 목소리를 잃었다가 산 정상에서 소리를 지르고 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니 살맛이 난다.


주흘산(主屹山)은 우두머리로 의연한 산이란 뜻이라는데,

그중에서 주봉(主峰 1,076m)은 문경읍 쪽에서는 풍만한 여인의 가슴을 보는 듯하여

'가슴봉'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파노라마로 아래세상과 출렁거리는 산줄기를 찍는다.

어디가 운달산, 성주봉, 대미산, 황장산일까.

지도상으로는 오른쪽부터인데 분간을 할 수가 없다.



나는 한 마리의 독수리가 되어 너른 세상을 둘러본다.

풍경은 카메라의 칩에도 저장되지만 내 눈과 가슴속에도 동시에 저장이 된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풍경 속에 정상주(頂上酒) 한잔을 하니 신선이 따로 없구나.

세차게 불던 봄바람도 정상에 서니 잠잠해지며 실컷 신선놀음을 하라고 부추긴다.


소운(笑芸)선생 뒤로는 천길 절벽이다.

수백m 바위벼랑의 아찔함을 뒤로 하고 앉아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를 바라본다.


고깔봉(冠峰)의 단애(斷崖)를 어떻게 표현할까.

주봉에 오르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을 눈에 새기며 정상주를 나눈다.


술 한 잔을 마시며 '빈속을 채우는 게 마음을 비우는 거다.'라고 스스로 궤변을 만든다.

삶에 대한 해답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내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세속에서는 욕망을 찾는 게 인간이지만 속세를 떠난 곳에서는 버려야 진리를 찾는다라기에

술잔에 남은 술을 슬며시 버린다.


주흘산은 험난한 산세로 문경의 진산(眞山)이라는데,

전설에 의하면 산 아래를 도읍으로 정하려고 치솟았으나 솟구치고 보니 이미 삼각산이

우뚝 솟아 있어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 앉았기에 남동쪽 문경을 내려다보는 형상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멈췄던 바람이 불어와 가슴을 여미게 하더니, 하늘의 흰 구름도 마구 밀어낸다.

외로운 정상석을 다시 한 번 쓰다듬고 하산을 시작한다.


14;04

준중한 봉우리들은 방향으로 봐서는 주흘산 부봉과 조령산, 신선봉, 마패봉 같은데

초행길이라 잘 모르겠다.

주흘산의 최고봉은 주봉이 아니고 여기서 약 1km 정도 북쪽으로 솟은 영봉(1,106m)이

제일 높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봉을 제대로 볼 수 없기도 하지만 산세가 주봉이 훨씬 신령스럽기에

주봉을 주흘산의 정상으로 친다.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었던가.

겨울은 결코 죽음의 계절이 아니다.

겨울은 수많은 생명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가 봄이라는 계절이 오면 소생하려고 준비하는

계절이다.


잠이라는 인생의 사치를 많이 누리면 봄이 달아날 거 같아 잠에서 깨어 서둘러

주흘산 산속으로 들어왔지.


겨울 배웅도 제대로 못하고 봄 마중도 제대로 하질 못했다.

풀과 나무에 움이 튼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산은 연두색으로 변해가고 일부는 녹색도

보이니 나한테 신록을 예찬하라고 강요하는 모양이다.


정상 밑 계단 아래에서는 홀아비바람꽃을 만났는데 하산 길에서는 쌍둥이바람꽃을 만난다.

오늘은 이래저래 바람꽃과 데이트를 해야 할 모양이다.


벚꽃, 목련이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더니 진달래도 지고, 때 이르게 피었던 철쭉도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 머릿속에 메모리 되었던 생체시계는 다 엉망이 되었다.


자연의 생태가 뒤죽박죽이 되고 생체시계마저 안 맞으니 5월 중순에나 피던 철쭉도,

6월초에 피어야할 아까시도 바로 필 태세라 말리지 못하겠다.



쌍둥이바람꽃을 만난 지 5분도 안되어 이번엔 '홀아비바람꽃'이 내 앞에 나타난다.

사실 봄에는 바람꽃을 봐야 봄이 온 걸 실감하지.


꽃 한 송이 떨어진다.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꽃 한 송이 떨어지는 소리는 반향(反響)을 일으키며 내 귓가에

크게 들린다.



이번 봄에는 마음 가는 대로 살자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만 될까.

문득 봄과 나와 무아(無我)를 생각해본다.


봄과 꽃은 있지만 '나는 본래 없는 존재' 아닌가.

계절은 돌고 돌아 윤회를 하지만 나는 윤회를 못하니 말이다.


오를 때보다 바람 끝이 매섭지 않다.

산을 오를 때처럼 하산 때도 정성을 다하여야겠지.

산을 제대로 내려가야 또 다른 산에 도전하고, 오르고 또 오르는 도전을 통해 점차

더 성숙해지겠지.


진달래, 벚꽃, 개나리, 목련, 생강나무, 산수유, 개불알꽃, 개별꽃에 이어 오늘은

'미치광이풀'을 만나니 나는 운이 좋은 산객(山客)이다.

새로운 야생화는 나에게 보물이지.


겨울이라는 무상(無常)한 시간을 지나고 다시 찾아온 봄,

얼굴과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이 거칠지 않고 부드럽다.


누가 이렇게 예쁜 꽃을 '미치광이풀'이라고 지었을까.

며느리밑씻개, 개불알꽃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안 드는데 이 꽃마저도 미치광이풀이라니,

이름을 지은 사람이 미치광이가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꽃은 고개를 숙였는데 이 꽃은 고개를 들어 내면을 보라고 한다.

유독성이지만 한방에서는 신경통, 치질, 구토 등에 쓰이는 유익(有益)한 식물이다.


6개의 암봉이 한 줄로 이어진 부봉이 나타난다.

오늘 산행코스에서 저곳은 빠졌지만 계곡 사이로 보이는 멋진 자연미는 무념(無念)과

무상(無常)의 평화를 준다.


14;43

너덜 길을 내려오다가 옆을 보니 고양이 눈이 나하고 눈을 마주친다.

'괭이눈'도 피었구나.

꽃이 햇빛 아래에서 보는 고양이 눈과 같아서 괭이눈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이름을 지은 거 같다.


이른 봄이든 늦은 봄이든 봄에 산에 오르면 예쁜 야생화를 볼 수 있어 참 좋다.

일행은 앞으로 사라졌고, 나는 또 다른 꽃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빨리한다. 



물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어김없이 작은 폭포가 또 나온다.

최근 다닌 산 중에 물이 가장 풍부한 산으로 주흘산은 물이 많아 넉넉하다.


한 시간을 넘게 내려왔는데도 제2 관문인 조곡관까지 2,400m 가 남았다.



우마차가 다닐 정도로 넓은 길을 지나자 너덜지대인 '꽃밭서들'이 나온다.

철광석을 캐내던 내주흘은 갖가지 형상의 작은 돌로 꽃밭을 만들었다.


돌 가지고도 꽃밭서들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인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다.


수많은 민초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아담한 돌탑을 바라보며 나도 돌멩이 한 개를 슬며시

올려놓으며 대통령 선거로 어수선한 나라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빈다.



한 톨의 햇살도 아까운 봄날,

바위 위에 들메나무가 거대한 뿌리를 드러냈다.


멋진 기암창송과 와송도 있고 이리저리 비틀린 참나무, 잔뜩 휘어 쓰러질 듯 누워서도

가치를 곧추 세운 산벚나무에서도 꽃이 핀다.


꽃향기는 골짜기에 가득하고 꾀꼬리 우짖는 소리 계곡에서 들린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

연둣빛으로 바뀌는 주흘산의 하늘은 절반이 흰 구름이다.


발걸음이 늦어 나는 탁족을 하지 못하였지만, 친구들은 계류에 발을 담그고 탁족(濯足)

하였구나.

지친 발을 씻으며 종식(踵息)을 하였을까.


장자(莊子)는 탁족종식(濯足踵息)이라,

즉 발을 씻을 때는 발 뒤꿈치까지 호흡이 내려갈 정도로 깊게 숨을 쉬라고 했다.


탁족을 하며 부도덕한 세상에 대해 적개심을 품지 않고 세상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달관의 경지에 언제 도달할까.


숲은 서서히 신록으로 변화며 황홀한 수채화를 그린다.


16;04

산의 시간은 느리기도 하지만 빠르기도 하다.

어느새 6시간의 산행을 하였구나.

하산하여 고개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조령산 암봉이 나를 내려다본다.



조령의 가운데 있는 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앞에 선다.

조곡교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과 관문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2관문인 조곡관에서 1관 주흘관까지는 3km라 부지런히 걸어도 40분이 걸리겠지.

양옆으로는 험준한 산들이 솟아있건만 새재 길은 너무나 부드럽다.


돌멩이 하나 없는 평화로운 길을 걷는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넘나들었을까,

그 중에 나도 한사람이 되는구나. 




물속에 큰 바위가 있어 사진을 찍고 가까이 가니 전설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송아지를 삼킬 만큼 큰 꾸구리가 바위에 올라앉으면 바위가 움직이고

아가씨나 젊은 새댁이 지나가면 희롱을 하였다는 꾸구리바위를 지난다.


신구(新舊)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官印)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의 소나무가 이채롭다.


경상감사의 교인식이 이루어진 역사의 현장을 지켰던 소나무의 뿌리는 교귀정을 향해

북쪽으로 뻗어있고,

기는 손들이 쉬어 갈 수 있도록 남쪽으로 뻗어 새재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이 소나무는 춤을 추는 여인의 모습이라고 전해지는데 가까이 다가가 셔터를 누른다.


16;32

고려와 조선 시대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던 조령원 터는

깊은 정적만 흐른다.


문경새재는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던 길목의 위치에 있어 역(驛)과 원(院)이 발달하여

새재 안에 동화원, 신헤원, 조령원 등 세 곳의 원터가 있었다고 안내판에서 설명을 한다.


이곳에서 고려시대의 온돌, 부엌시설의 일부와 와편,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철제 화살촉,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지름틀바우'라는 바위의 모습이 신묘하다.

기름을 짜는 기름틀을 경상도 사투리로 지름틀이라고 하는데, 충청도에서도 지름틀이라고 한다.


기름을 짜는 기름틀은 받침틀과 누름틀로 구성되는데,

받침틀 위에 참깨, 들깨, 콩 등을 볶아 올려놓고 두터운 누름틀을 덮어 누르면 기름이

흘러내리게 된다.



17;00

이제 산행도 끝나간다.

과 하늘은 아직 빛을 잃지 않고 관봉(冠峰) 위로 흰 구름 흘러간다.


영겁의 세월동안 수없이 많은 민초와 영웅호걸이 이 산과 골짜기에 난 새재 길을

따랐고, 또한 수많은 전란이 이 고갯길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 후면 어둠이 밀려와 또다시 모든 일이 감춰질 거고, 나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친구들의 발자국도 감춰지겠지.

그것이야말로 무위(無爲)의 자연에서 하는 일이니까.


2017.  4.  28. 07;00 조령산 휴양림

백팔배를 마치고 혼자 3관문인 조령관을 향해 오른다.

소박한 산벚꽃 향내가 콧구멍으로 스멀스멀 들어온다.


08;50

나 홀로 오르다가 길을 잘못 들어 숙소로 갔다가 다같이 3관문을 향해 오른다. 


억새풀이 우거진 초령,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새)의 고개, 또는 새(신 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도 담긴 조령(鳥嶺),

나는 지금 백두대간의 조령을 걷는 거다.


천연요새로 된 협곡의 새재 길을 오르며 나는 어제에 이어 다시 신립 장군이 되어 갈등을

느낀다.

조선 제일의 무장인 신립 장군은 이곳을 놔두고 왜 충주 달천강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을까.

야전(野戰)에 강함을 믿고 이 험한 산세에서 매복전이나 유격전을 치루지 않은 건지

내 짧은 지식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 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보내 귀순하였다는

제3 관문인 조령관(鳥嶺關)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립 장군이 충주로 후퇴하자 충주의 의병장인 신충원이 제2 관문에 성을 쌓고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자 숙종 34년(1708년)에 서둘러 3중의 관문(關門)을

설치하였다고 안내판에서 설명을 한다.


당시 왜군은 조령을 넘으며 무척 긴장하였다 하며, 이 고개를 통과할 때까지 조선군의

공격이 없자 왜군의 장수는 '조선의 운명이 다했다.'라고 말했다 한다.


일당백을 물리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를 바라본다.


삼국시대엔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이었고, 지금은 충청도와 경상도를 구분하는 도 경계선인

이곳 조령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부산으로 침입한 왜군들이 한양으로 가장 빠르게 진격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이곳에서 선조 25년(1592년)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하는 카토오 기요마사의

군대와 합류하였다고 전해진다.


문경새재(642m)는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는 주요한 길목으로 조선시대엔 부산 동래에서

한양까지 이어진 영남대로에서 가장 컸다고 하며,


영남에서 거둔 세곡이나 대궐에 바칠 진상품, 청운의 꿈을 이루려고 과거를 보러 나선

영남 선비들의 숨결이 내린 곳이다.


나이 먹으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

황반변성으로 책 읽기가 불변해지더니 이젠 가는귀도 먹은 모양이다.

TV를 켜니 소리가 너무 크다고 아기들이 잔소리를 한다.

나는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볼륨이 컸던 모양이다.


열심히 읽던 책도 한참을 보다보니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이고, 호주머니에 잘 있는 휴대폰도

수시로 찾아 헤매고,

이야기 하다가도 어떤 때는 한말을 또 하며 반복하는 걸 늦게 알아차린다.


사람들은 눈이 안 보이면 안경을 쓰고 안 들리면 보청기를 끼면 된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슬슬 잊어지는 기억력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하다.


내 생각이 정말 나 자신의 생각일까?

내가 원하는 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일까?


한 달간 마시지 못한 술이 뱃속에 들어가니 술 배와 머리가 짰는지 이젠 머리가 조금씩

돌아간다.

이젠 내가 생각하고, 원하고, 기억하는 나 자신으로 조금씩 돌아오는 모양이라 술이란 이래서

좋은가 보다.


09;30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는다.

인상이 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예쁜 사람, 애교가 많아 붙임성이 좋은 사람,

무뚝뚝하고 억센 사람, 오장육부를 긁어 내는듯한 기분 나쁜 목소리를 가진 사람 등

다 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만나서 기분 좋은 사람은 언제 보아도 좋기에 만나면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을 갖는다.

반면에 너무 안타깝게 만드는 사람이나 애처로워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시간이 지루하다.

언제 누구를 어떻게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에 만남도 서서히 정리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지난주 동창 한 명이 또 타계했다.

문상을 하는 자리에서 왜 사느냐, 언제까지 살 거냐고 라는 농(弄)이 오간다.


왜 사느냐고?

못다 한 사랑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게 아니라 살아 있으니 사는 건데 이런 평범한 진리를 놓치고 사는 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2017.  4.  27~28. 문경새재 주흘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