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5. 07;00
어사화(御賜花)로 회화나무 꽃가지를 모자에 꼽고 다니다가 꿈에서 깬다.
과천 대공원 둘레 길을 가기 위해 바깥으로 나오니 이팝나무에 흰 눈을 소담하게 덮어쓴
눈꽃(雪花)이 피었다.
이밥에 소고기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며 고래 등 같은 기와집에 사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
초가(草家)지붕은 어느 날 기와지붕으로 바뀌고 전기불이 들어와 램프불이 사라지며
보릿고개가 사라졌지.
조선왕조 시대에 벼슬을 해야 이씨 임금이 녹봉으로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다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했다.
시어머니의 구박으로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며느리 무덤가에 나무 하나가 자라 흰 꽃을
피운 이팝나무,
노모에겐 흰쌀밥을 담고, 효자인 아들은 이팝나무 꽃을 자기 밥그릇에 담아 안심 시키는
장면을 본 임금이 효자나무라 하여 관가의 승낙을 받아야만 심을 수 있었던 양반나무에
쌀밥처럼 길쭉한 꽃이 피었다.
문득 어렸을 때 밥상이 생각난다.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이라 밥을 지을 때 어머니는 부엌에 있는 가마솥에 밥을 짓는데
늘 보리나 조가 70%라면 쌀은 30% 미만이 들어가는 혼식이다.
어쩌다 초평에서 할아버지가 들리시면 가마솥에 밥을 지을 때 보리쌀을 가장자리에 앉히고
쌀은 가운데에 두고 밥을 하는데 밥이 다되어 풀 때는 보리밥에 섞이지 않도록 조심을 하며
푸던 어머니,
할아버지의 밥그릇에 고봉(高捧)으로 수북이 쌓인 쌀밥은 우리에겐 참 어려운 존재였지.
흰쌀밥 그릇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나의 젓가락.
쌀밥그릇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민망스러운지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시고, 남은 쌀밥에 서열순서를 지키다보면 내 차지는 없었지.
보리밥은 껄끄러워 목구멍으로 쉽게 넘어가지 않아 수십 번을 씹어야하고 먹었다 하면
항문이 수시로 열리며 방귀를 뀌게 된다.
노란 좁쌀밥은 왜 그리 딱딱한지 이빨사이에 끼며 누런 이빨을 만들었지.
지금이야 감자밥, 옥수수밥, 보리밥, 콩나물밥이 나름대로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는다지만
맛이야 쌀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서울에 유학을 온 후에 한 달 기준 세말의 쌀을 보내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반찬은 없지만
쌀밥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지.
늘 밥상 밑에 밥그릇을 내려놓고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
식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회갑이 지나면서 밥상 위에 밥그릇을 올려놓고 식사를 하시던
장면이 떠오른다.
흰쌀밥 꽃이 핀 이팝나무 아래는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사유(思惟)의 공간이다.
2018. 5. 5. 아침 이팝나무 아래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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