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6. 22. 09;04
그냥 스쳐 지나던 청령포, 오늘만은 그 땅을 밟으리라.
명승 제50호로 지정된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 하늘은 찬란하게 빛난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청령포는 한 폭의 수채화다.
단종의 슬픔과 통탄이 서린 역사의 현장이지만 초록빛 물든 강물은 비단결처럼 곱게
휘돌아간다.
강물엔 단종임금의 원귀(怨鬼)가 만든 노도(怒濤)를 기대했건만 명경지수와 같이 맑아
객(客)을 건네주는 배만 한가롭다.
어쩌면 단종이 황천(黃泉)을 떠돌다 태백산의 산신령으로 부임(赴任)을 했기에 강물이
한가로운지도 모르겠다.
배를 타러 강가로 내려간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험준한 육육봉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타야 출입을 할 수 있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아담한 섬, 그 섬을 따라 강물은 유려하게 흐른다.
< 청령포
쪽배는 창파에 흔들리고
물가에 선 왜가리 무심하다.
단종의 슬픈 사연 알 리 없는
구름은 말없이 흘러가고,
출렁이는 강물은 단종의
원한(怨恨)을 흘러 보낸다.
강 건너 말없이 선 늙은 소나무는
단종의 흐느낌을 몸으로 안고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석천 >
09;17
배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강을 건너 2004년 산림청에서 지정한 '천년의 숲'으로 들어선다.
수십 수백 년생들의 거송(巨松)들이 만든 울창한 송림엔 참새들이 여기저기에서 짹짹거린다.
청령포는 20만 4241㎡니 6만평이 조금 넘는 면적으로 각 소나무마다 번호를 매긴 명찰을
달아 관리한다.
단종어소로 들어간다.
숨소리를 내기 경망스러워 작은 숨을 쉬고, 발뒤꿈치를 가볍게 하여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궁녀와 관노들이 머물던 행랑채를 지나 어소(御所)에 드니 비록 밀랍인형이지만 소나무마저
와송(臥松)이 되어 단종에게 엎드려 충성을 다한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끼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死六臣)들의 상왕복위
움직임이 김질의 밀고로 인해 실패로 끝나자, 1457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이곳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사육신에 대하여는 소송도 있었고 1977년 7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김문기를 현창한다해서
노량진의 사육신 묘역에 김문기의 가묘(假墓)가 설치되었다는 것까지만 내가 안다.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 김시습, 이맹전, 조요, 원호, 성담수, 남효온 등의 생육신, 단종을
태백산 산신으로 봉헌한 추익환, 삼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강물에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몰래 모신 호장 엄흥도, 사약을 진어(進御)하였음에도 그 정을
떨치지 못하고 눈물로서 시조를 지은 왕방연 등 숱한 충신과 전설이 존재하는 단종의
어소(御所)를 가까운 발치에서 바라본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유배생활을 하다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자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그후 금성대군 이유(李瑜)가 다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자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떨어지고,
1457년 10월 24일 유시 17세의 어린 나이로 금부도사 왕방언의 사약(死藥)을 받고 관풍헌에서
승하 하였다.
비록 밀랍인형이지만 임금의 위엄과 신하의 충정을 연출한 장면은 오랫동안 내 뇌리 속에
남으리라.
이 소나무의 밑둥치는 얼마나 될까 유추하며 슬쩍 안아본다.
옆의 늙은 나무도 거칠고 역동적이면서 생명력이 넘침은 여름이라서 일까.
지난 세월 온갖 풍상과 신고(辛苦)를 겪은 소나무들은 포효하듯 몸을 뒤틀었다.
긴 세월을 견디었기에 연륜과 품격이 묻어나는 소나무 곁을 지난다.
세상에서 가장 품위 있고 고목(古木)이 고목다운 고목은 무슨 나무일까.
지난 세월 내가 본 고목들이 생각난다.
그중에 가장 많은 나무는 소나무요, 그 다음이 매화나무겠다.
나는 그림을 잘못 그린다.
상상력도 없고 또한 그림에 대한 솜씨가 없어서 학교성적 중 미술은 항상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이다.
따라서 시(詩), 서(書),화(畵) 중에서 자신 없는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또한 마비된 팔이라 서예(書藝)도 포기하고 수시로 메모를 하며 글을 쓴다고 필(筆)을
끄적거린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 쓸 때는 번뇌와 망상에 시달릴 때가 많기에
그림을 그리면 번뇌와 망상이 다 씻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 재주도 없으면서 이상(理想)만 높고 탈속(脫俗)한답시고 고결함만 추구하려니
위선(僞善)만 생긴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觀音松)이 가운데 두 갈래로 갈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을 가진 관음송은 높이 30m,
둘레 5m로 600년의 수령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소나무는 크게 육송(陸松)과 해송(海松)으로 구분하고 다른 이름으로 황금송, 금강송,
황장송, 안면송, 미인송, 반송, 곰솔, 춘양목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굳이 이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으로 부르는 이유는
이 나무가 당시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다하여 볼 관(觀), 들었다하여 소리 음(音)자를
썼다고 안내판에서 설명을 한다.
"바른 몸가짐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소나무 숲을 걸으며 다산 선생이 말한 대목이 생각난다.
다산은 대학공의(大學公議)에서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는
수신재정기심(修身在正其心) 대목을 풀이하면서,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有心之病)이 있고
또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無心之病)을 말 한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도심(道心)이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는 요즘 세태에 대한
정민 교수의 시의적절(時宜適切)한 글을 읽으며 탄복을 한다.
마음이 있어도 문제고, 마음이 없어도 문제라,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도 문제고, 아무 생각이 없이 몸을 따라 마음이 가는 것도 문제다.
즉 해야 할 생각은 안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으니 몸과 마음이 따로 놀고,
마음에 노여움과 원망이 있고 말투가 모질고 사나워짐을 경고하는 거다.
일을 열심히 해도 앞뒤가 바뀌어 결과가 어긋나고, 두려움은 재난 앞에 흔들리고,
위력 앞에 꼼짝 못하게 만들며,
돈 문제로 인한 걱정 근심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옳고 그름을 떠나 계산기를
두드리게 되니 얼마나 많은 공직자들이 재직 중에 감옥에 갈까.
공직자는 경이직내(敬以直內)로 얌체 짓을 했어도 목민관이 되었으면 공적(公的)인 일과
사적(私的)인 욕심인지를 살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부디 달아난 마음을 찾아 마음이 주인 노릇을 하면 허깨비가 되지 않을뿐더러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경계인이 되지 않으리라는 글을 생각하며 노산대(魯山臺)에 오른다.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감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서울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역사의 장소에 올랐다.
09;32
풀이 많은 곳에서 '큰뱀무'를 만난다.
장미과의 수양매(水楊梅)로도 불리는 뱀무는 주로 마비증세를 치유하며 통증을 다스린다.
뱀이 많이 다니는 풀밭에서 자란다고 해서 뱀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알려졌기에 혹시나
뱀이 있을까 두리번거린다.
햇볕을 독차지한 늙은 소나무 숲에 땅나리가 요염하게 피어 단종의 혼을 유혹한다.
이끼가 둘러싼 청령포 금표비(淸怜浦 禁標碑)에는 동서삼백척 남북사백구십척
차후니생역재당금(東西三百尺 南北四百九十尺 此後泥生亦在當禁)이라 씌였다.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진흙이 쌍여 생기는 땅도 금지한다'는 뜻은 단순히 단종에게
접근금지라는 뜻보다는 영조가 일반백성들의 출입과 행동을 제한하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09;40
무릇 권력(權力)과 권세(權勢)란 임기가 끝나면 봄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진다.
지금도 두 명의 대통령 출신이 탱자나무 가시는 없지만 철망으로 막은 좁디좁은 방 한 칸에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어 있다.
며칠 전 서거한 고 김종필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 했고,
영원할 것 같은 권력도 세월이 흐르면 공허(空虛)해지기에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했다.
왕(王)을 하면 무엇 하랴 죽임을 당하고, 대통령을 한들 무슨 영화가 있으랴 감옥에
가는 신세가 되니 권력이란 지나면 다 허망한 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권력을 쫓아 욕심을
버리지 않았기에 스스로 자기 신세에 족쇄를 채운다.
09;50
바람따라 단종의 통곡소리 강건너 여기까지 들린다.
< 통곡
배가 뜬다.
내가 탈 수 없는 배가 뜬다.
이 세상은 금표지옥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소나무지옥에
팽개쳐졌구나.
사약이 내리려나,
목매달 밧줄이 내리려나,
무간지옥(無間地獄) 따로 없다.
왕을 하면 무엇 하랴,
하늘을 나는 새만도 못한 신세.
쪽배도 탈 수 없는 신세라
노비만도 못한 이 세상 언제 하직할꼬.
칠성신아 칠성신아 나는 어이할꼬.
철썩 철썩 강가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저승사자 금부도사 예까지 찾아왔다.
내 신세 가련하고 처량하다.
저승 가 아비 얼굴 어이 볼까.
숙부 죽어 저승 오면 아비지옥(阿鼻地獄) 떨어질까. 석천 >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 세조는 극심한 피부병으로 51세에 훙서(薨逝)하였는데,
어느 게 맞는지는 몰라도 문둥병에 걸려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가(史家)도 있다.
늘 궁금해 하면서도 쉽게 접근하지 않았던 청령포를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사약을 진어한 금부도사 왕방연도 비통한 심정을 참지 못하고 청령포를 바라보며
시조를 읊었다.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
단종은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장릉에 묻혔다.
17년이란 짧은 시간을 평범한 일상이 없이 힘들게 살다가 어느 순간 무한(無限)의
시간 속으로 수렴이 되었다.
이글을 쓰면서 거실 TV에서 나오는 대화를 귀동냥한다.
드라마에서 밥 달라는 장면이 나오고, 여자는 명품가방을 못 사주는 능력 없는 남편을 구박한다.
이 장면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밥줘충' 남자는 여자에게 '돈줘충'이라며 서로를 비방한다.
영식이~삼식이로 이어지던 식(食) 시리즈는 어느새 실종이 되고 서로 벌레에 비유하는
충(蟲)시대로 변모하기에 백수들은 TV 보기가 민망하다.
2018. 6. 22. 청령포를 다녀와서
석천 흥만 졸필
읽은 책을 또 읽기도 하고 불과 2m 떨어진 책은 거의 찾지 않기에 다시 재배치를 한다.
아내와 같이 쓰던 서재가 아들부부가 분가를 한 후 단독 서재로 바뀌며 '나만의 방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느림의 미학 367 사람을 살리는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 (0) | 2018.07.29 |
---|---|
느림의 미학 366 사람 잡는 봉화 각화산(1176.7m) (0) | 2018.07.26 |
느림의 미학 363 백두대간 봉화 옥돌봉(玉石山 1244m)의 얌체족 뻐꾸기 (0) | 2018.06.29 |
느림의 미학 361 영월 망경대산(1.088m)에서 야생화의 보물창고를 열다. (0) | 2018.06.05 |
느림의 미학 352 진악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0) | 2018.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