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8.
사람 잡을 산 봉화 각화산(覺華山 1176.7m).
조선시대 풍수학자인 남사고는 소백산이 나타나자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며 말에서 내려 향해 넙죽 절을 했다는데, 나는 각화산에서
내려와 사람 잡을 산이라고 욕(辱)을 하며 봉화군청 민원실을
두드린다.
11;09
태백산 각화사 범종루 하늘이 빛난다.
한여름 태양은 이글거리고 직사광선을 받는 팔뚝이 화끈거린다.
흠집 하나 없는 파란 하늘,
바람과 심술궂은 먹구름이 낙서를 할만도 한데 바람은커녕 구름 한 점도 없는
하늘은 파도 없는 바다이다.
여기는 봉화에 있는 각화산인데 범종루에 태백산 각화사라는 현판이 달렸고,
영주 봉황산 자락에 있는 부석사도 절 이름이 태백산 부석사다.
부석사는 소백산 자락에 있는데도 태백산 부석사요, 태백산 각화사도 태백산에서 13km나
떨어진 각화산 자락에 있는데 무슨 연유일까.
지도를 보니 부석사가 있는 봉황산은 태백산의 줄기에서 뻗어나온 백두대간이라 그리
이름이 붙었고, 각화산도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각화지맥이라 태백산 각화사로 이름이
붙었으니 태백산 산신령으로 추앙을 받는 단종임금의 입김이 세긴 센 모양이다.
현재 기온은 산속인데도 34도니 앞으로 얼마나 온도가 더 올라갈까.
각화사의 고도가 이상하다.
GPS는 674m, 위치기반 고도계는 665m, 기압 고도계는 580m로 표시되는데 어느 게
정확한지 모르겠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씨엔 고도도 중요하다.
유난히 더위에 약하기에 짧은 산행을 하려 각화산에 대해 나름대로 예습을 했지만
해발 고도 1176.7m나 되는 고산이라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신라 문무왕(661~681년)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천년고찰 각화사 범종루의
팔작지붕이 날개를 펴고 금세라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태세다.
최근 우리 불교계에 큰 경사가 났다.
천년 넘게 우리 불교문화를 이어온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거다.
명단을 보니,
양산의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 등 7개 산속에 있는 사찰은 한국 불교의 깊은 역사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되어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되었는데 6개의 사찰은 다녀왔고 안동의 봉정사만 들리지 못했다.
한국의 유서 깊은 천년고찰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그리고
원효대사이다.
자장율사는 불교의 계율을 정비하였고, 당나라 유학파인 의상대사는 화엄사상을 전파하였으며,
의상대사와 같이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대사는 무덤 안에서 잠을 자다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먹고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를
깨달아 유학을 포기했다.
비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는 선정되지 않았으나 각화사(覺華寺) 이름이 특이하다.
수 년 전 들린 괴산의 각연사(覺淵寺)도 적막에 쌓였었는데 각화사도 조용하니 깨달을
각(覺)자를 쓰는 사찰은 다 조용한가 보다.
삼재불입지(三災不入地)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가 있었을
정도의 역사를 품은 산이며, 다른 산에 비해 때가 덜 탔다는 각화산의 역사적인 의미를
새겨가며 올라야겠다.
한때 800여명의 승려가 수도하여 국내 3대사찰 중의 하나였다는데,
절간에는 오가는 사람과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고 고요와 적막이 고였다.
완전히 도괴되었다가 다시 모아 조성한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보이지 않는다.
스님들이 맛배지붕의 요사체에서 공양 중이라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경내를 지난다.
세상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산행 후 저 스님들이 원망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고
신속하게 통과를 한다.
삼재를 피할 수 있다는 전설속의 십승지(十勝地)에 있는 각화사,
십승지는 한국인의 전통적 이상향(理想鄕)이다.
사람들은 대개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사는데,
이상향에 대한 관념은 동서양이 다르고, 시대와 문화속성에 따라 차이가 난다.
불교의 극락과 정토, 기독교의 천국과 에덴동산, 도교의 무릉도원, 중국의 삼신산,
우리나라의 청학동, 티베트의 상그릴라(Shangri La) 등 사후(死後) 또는 관념적인 이상
세계를 일컫는 말이며 현실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십승지는 정감록 중에 감결(鑑訣), 징비록, 유산록, 남사고비결, 도선비결, 토정가장결 등에
나타난다.
한 점의 티끌도 없는 파란 하늘 아래 부처를 모신 대웅전, 2층의 범종각, 산신각, 요사체가
태양빛을 받아 빛난다.
삼재(三災)라 함은 수재(水災), 화재(火災), 풍재(風災)의 3가지 재난을 말한다.
정감록에서 십승지를 논할 때,
첫째 풍기 차암 소백산 근처, 둘째 봉화 춘양의 화산, 셋째 보은 속리산 사증항 근처,
넷째 운봉 행촌, 다섯째 예천 금당실, 여섯째 계룡산 근처 유구 마곡, 일곱째 영월 정동쪽 상류,
여덟째 무주 무봉산 북쪽, 아홉째 부안의 금바위 아래, 열번째 합천 가야산 만수동을 꼽는다.
사고(史庫)란 말 그대로 역사책을 보관하는 창고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고는 고려시대 개경과 해인사에 보관을 하였으며,
조선 초에는 한양의 내사고, 충주에 외사고를 두었다가 세종 21년 경상도 상주와 전라도
전주에 사고를 지어 4사고 체제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한양의 춘추관, 충주, 상주의 사고는 모두 불타고 전주의 사고본만이
몇몇 유생들의 희생적인 노력 끝에 내장산으로 옮겨져 화를 면했다.
임진왜란 후 재간행을 거쳐 5사고 체제가 정비되어,
한양의 춘추관, 강화의 마니산(후에 정족산으로 옮김), 묘향산과 오대산 그리고
지금 내가 오르려는 태백산 사고이다.
묘향산 사고는 후에 무주 적상산으로 옮겨졌는데,
정족산 사고는 전등사, 적상산 사고는 안국사, 오대산 사고는 월정사가, 태백산 사고는
각화사가 그 임무를 맡았다.
11;37
각화사 뒤로 작은 소로가 있어 오르는데 길이 사라졌다.
지도상으로 절의 왼쪽에 있는 작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 곧장 정상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데 그 길을 놓쳤다.
내려와서 지도를 다시 확인하니 정상에서 바로 내려와야 각화사 주차장인데,
능선을 타고 봉우리를 세 개나 더 올랐다가 비탈로 간신히 내려와서 확인된 지점이
문수암이라 당초 목표한 지점과 약 5.7km나 어긋났고 산행시간도 세 시간 가까이
늘어났다.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겨우내 언 땅 밑에서 꼬불꼬불 생명의 싹을 틔웠던 봄꽃은 다 사라지고 여름 꽃이 보이기
시작한다.
금년 봄에 만났던 꽃들이 생각난다.
애기똥풀, 할미꽃, 각시붓꽃, 제비꽃, 산괴불주머니, 철쭉, 진달래, 병아리나무, 불두화,
매발톱, 현호색, 은난초, 은대난초가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른다.
학자들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이 약 180만 종이고 그중 약 6만 종이 우리나라에 살며
식물은 4200가지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
수많은 식물 중 내가 아는 건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몰라도 좋다.
의아리꽃에 포커스를 맞추며 숨소리를 죽인다.
꽃과 교감을 하려면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비집고 다툼 없이 피어난 꽃을 보면 행복한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수국(水菊)도 화려하게 피니 여름이 제대로 익었다.
한때는 멸종위기라고 뉴스거리가 되었던 수국, 후덥지근하고 습한 기운과 물을 좋아하는
수국을 바라본다.
수국은 한 그루에서 파란색, 흰색, 빨강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을 피운다.
수국에서 뿌리가 뻗은 방향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여러 토양의 성질에 따라 색깔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산성 토양에선 파란색을 띠고, 알칼리성 토양에선 분홍색, 중성인 토양에선 흰색 꽃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자리의 큰 꽃은 암술과 수술이 없는 헛꽃으로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가짜꽃이고 안쪽의 작은 꽃은 실제 수분(受粉)에 기여하는 진꽃(眞花)이다.
수국과 비슷한 성격을 가진 꽃이 금낭화이다.
금낭화도 땅심(地力)에 의해 꽃의 색깔이 결정되는데,
땅의 성분이 알칼리성이면 붉은꽃이 피고, 산성이면 흰색이나 연분홍색 꽃이 핀다니
자연의 오묘함을 생각하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울울창창한 숲속에서 족적의 흔적을 찾으며 오른다.
12;30
조망성 거미가 집을 짓고 먹이가 걸려들길 기다린다.
거미는 이렇게 그물을 만들어 먹이를 잡는 조망성 또는 정주형(定住性) 거미가 있고,
배회성(俳徊性) 거미로 크게 나누어지는데, 이밖에도 생활 장소에 따라 지중성, 지표성,
동중성, 수중성, 동굴성, 수간성 등 여러 가지로 분류가 된다.
거미는 집을 지을 때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바깥에 큰 원을 그리고 안쪽으로 좁혀가며
그물을 짓는데, 재미있는 것은 중앙부에서 사방으로 뻗는 방사실은 건조한 실이고,
가로질러 치는 가로실은 끈끈이가 있어 먹이를 잡는다.
족적은 희미하고, 이정표는커녕 먼저 다녀간 산악회의 리본도 없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각화사 소속의 젊은 스님을 만난다.
참 나쁜 사람들이다.
각화사의 중(僧)도, 체크를 하지 못한 봉화군청의 관계자도 다 사람 잡을 사람들이다.
희미한 길에서 갈팡질팡할 때 만난 젊은 스님은 위로 난 길로 약 15분 오르면 정상이라고
가르쳐준다.
이정표가 없다고 하니 자기네들 수행하는데 지장이 있어 각화산의 이정표를 모조리 없앴고,
조금 전 우리가 각화사 경내를 지날 때 공양 중이 아니었다면 입산을 통제하였을 거라고
말한다.
고도가 1177m나 되는 높고 큰 산으로 200대 명산에 들어간다는 각화산에 이정표를 없앴다니,
이건 잘못도 아주 크게 잘못된 거다.
살다보면 우연히 자신에게 유리한 일만 계속 거듭해서 일어난다는 샐리의 법칙(Sally's law)도
있지만,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반복되는 현상인 머피의
법칙(Murphy's law)이 더 많은 게 세상의 이치라 산에 오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난 늦게 시작한 당구를 잘 하지 못한다.
그러나 파울을 정확히 예측하고, 파울을 피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큐를 슈팅해도 정확히
파울을 범한다.
이미 예정되었던 파울을 피할 수가 없으니 머피의 법칙은 기막히게 작동이 되는 거다.
휴! 덥고 비가 그립다.
땀으로 온몸과 속옷까지 젖었으니 지난주 끝난 장맛비를 그리워하며 메모를 뒤적인다.
오란비는 성기게 내리는 장맛비의 옛말이다.
< 오란비
오란비가 내린다.
어젯밤에도 지금도 내일도 모레도
오란비가 내리면 여자비겠다.
창밖에 지금 내리는 비는
빗발이 선명하고 굵게 내리니 발비요,
굵고도 세차게 퍼부으니 작달비다.
또한 굵은 장대 같은 빗줄기로
억세게 쏟아지니 장대비요,
빗줄기기 주룩주룩 질게 내리니
주룩비로구나.
달구로 짓누르듯 거세게 내리던 달구비는
채찍으로 후려치듯 창문을 두들겨 패며
채찍비로 변한다.
물동이로 퍼붓듯이 세차게 내리는 억수비로
세파에 찌든 정육(精肉)을 씻으려
주섬주섬 우산을 챙겨들고
오란비 속으로 스며든다. 2018. 7. 2. 석천>
나비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온다.
그동안 벌은 많이 만났지만 나비는 오랜만에 본다.
꽃이 지천이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나비들이 통 보이지 않다가 잠자리들이 떼 지어 나르니
그 틈에 나비들이 보이기 시작한 거다.
오름길에 만난 원추리 꽃에 앉아 꿀을 빨던 나비가 다시 날아간다.
날아가는 나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정표를 없앴다는 스님의 말에 화가 났던 마음을
진정시키려 성찰을 한다.
소리없이 노래를 하는 나비,
날갯짓을 하지 않아도 나비는 아름답다.
나비의 날갯짓은 노래요, 어쩌면 생을 이어가기 위한 비명인지도 모르겠다.
알 수 없는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차안(此岸)으로 날아왔다가 다시 피안의 세계로 날아가는
여린 작은 생명,
펄럭거리며 날아가는 나비에게서 문득 버려진 영혼을 본다.
13;17
봉화에는 유난히 바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풍(微風)도 없기에 바람의 언덕에서 바람이 길을 내고 구름을 몰고 오는
풍경을 바랄 수가 없다.
13;27
각화산 동봉에 올랐다.
지도상엔 여기에서 오른쪽 아래 태백산사고가 있다고 표시되었다.
방향이 달라 들릴 수는 없지만, 1913년 의병(義兵)을 공격하기 위해 일본군이 사고와
절을 불태웠다고 하며 다른 기록에는 1945년 광복 후 소실되었다고도 한다.
내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 숲을 헤치며 생각한다.
항상 긍정적으로 살고, 구름처럼 느긋하게,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는 게 내 삶의 방향이겠지.
14;05
산비둘기가 구슬피 운다.
울고 나면 시원해지는 감정을 카타르시스라고 한다.
이 말은 정화(淨化)를 뜻하는 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명명했다고 하는데
저렇게 슬피 우니 산비둘기도 카타르시스를 아는 모양이다.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남자는 한 달에 1.4회, 여자는 5.3회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사람이 평생 우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영국의 통계에서 생후 12개월 아기는 하루 3시간씩 울고 세 살이 되기까지
하루 평균 2시간을 운다고 하며,
열 살까지 일주일에 평균 2시간 12분, 10대에는 2시간 13분, 20대 이후에는 2시간
14분을 운다며 우리가 78.5세까지 산다면 일생 동안 16개월을 운다고 발표를 했다.
16개월을 운다면 상당히 긴 세월이다.
우리 세대는 마지막 효도세대요, 마지막 충성세대라고 한다.
살다보면 속상한일도 많고 울고 싶을 때도 많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가장이라는
이유로 마음대로 울지를 못한다.
괴롭고 슬플 때 울지를 못하면 몸 안의 울음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고여 썩을 수도
있겠기에 저렇게 구슬피 우는 산비둘기가 오늘따라 부럽다.
각화산 정상 30여m를 앞에 두고 '동자꽃'을 만난다.
노스님을 기다리던 동자승(童子僧)의 넋이 꽃으로 변했다는 동자꽃이 초록의 바다에서
외롭게 피었다.
14;11
오지 중의 오지인 봉화의 각화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웅혼한 백두대간이 조망되지 않는다.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대기에 깊고 낮은 소리를 질러본다.
나의 소리가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려나.
소리를 지르니 띠끌 세상에서 찌든 내장이 말끔하게 씻겨 나간다.
여긴 비현실적인 나만의 낙원이다
마음이 머무는 상그릴라도 아닌 정상에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 괜히 불안하다.
각화산 정상석을 보며 그동안 올랐던 봉화의 산들을 생각한다.
지난달엔 옥돌봉(1244m)을 올랐고, 수 년 전에 올랐던 청옥산(1279m), 청량산(870m)과
수차례 올랐던 인근에 있는 태백산(1567m)을 떠올린다.
여기서 북쪽으로 13km를 걸으면 태백산이다.
휴~길이 없다.
산악회 리본도 달리지 않았고 그 흔한 이정표도 없다.
갑자기 노골적인 공포보다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앞선다.
수 십 년간 산행을 하며 처음 느껴보는 두려움은 서스펜스(suspense)라고 표현을 해야 되나.
이대로 숲을 뚫고 나가면 길이 있을까.
각화사 중들이 실제로 이정표를 다 없앴다면 억지춘양 격이다.
만약에 조난이라든지 큰 사고가 난다면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에 의한 죄를 물어도
되겠다싶어 잠시 서서 폰에 메모를 한다.
억지춘양, 또는 억지춘향이라는 말이 있다.
춘양을 대표하는 금강송인 춘양목을 사칭하여 외지의 상인들이 속여 판 일이 있었기에
생긴 말이라는데,
일을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자기네들의 뜻을 이루려 이정표를 없앴다면
억지춘양을 벗어나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볼 수가 있다.
미필적 고의라 함은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을 적극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어도
자기의 행위가 어떤 범죄 결과의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는 의식을
말하는데 이정표를 없앤 행위는 여기에 해당 한다.
수행과 참선을 위한 욕심으로 사람을 위험에 빠뜨린다?
이 사람들은 배울 것을 배우고 배워서 안 될 것을 안 배워야 잘 배운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도 모르면서 수행을 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배울 것을 배우고 깨달을 것을 깨달아야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법이라
이들에게 깨달음은 오지 않으리라.
어차피 개두환면(改頭換面)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았는데, 저들이 법(法)과 교(巧)를
구분하지 못하고 참선(參禪)에만 매달리니 한편으로 불쌍하기도 하다.
묘비 없는 묘를 지나며 세상을 이어주는 끈도 없고 길이 사라졌다.
리본도 없고 60도가 넘는 경사면(傾斜面)을 구르다시피 내려간다.
길들여지지 않은 산속에서 대지를 향해 거친 숨을 토해내던 친구가 급체로 많이 힘들어 한다.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내려가야겠지.
산다는 것도 결국 이것이 아닌가,
한 발짝씩 인간세계로 내려가며 단순한 진리를 잠시나마 잊었구나.
나무 사이로 지난달 올랐던 옥돌봉(1244m)이 보인다.
일행은 아래로 사라지며 산의 공간을 비운다.
산길을 내려오며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잠시 생각을 잊었다.
젖은 몸에 정비례하여 가슴속이 잠깐 무아지경(無我之境)이 되었는가 보다.
짧은 시간 산속에서의 일탈,
소소한 행위가 불러오는 결코 소소하지 않은 깨달음의 행복에 가슴이 충만해져야 할 텐데
오히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땀이 줄줄 흐른다.
다한증 수술 이후로 얼굴에 땀이 별로 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예외다.
나무에 잠시 등을 기댄다.
나무가 잘 쉬었다가 가라며 시원한 목소리를 낸다.
더위가 잠시 누그러진다.
이글거리는 불볕더위에 푸른 그늘을 만들어 나를 기다린 나무 위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나무는 그늘을 만들어 나를 품고, 가지엔 새를 앉혀 소리를 품는구나.
팔뚝에 산모기가 앉아 피를 빤다.
손바닥으로 후려치기도 싫어 피를 빠는 모기를 내버려둔다.
삶은 곧 죽음과 동반하는 고통과 같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5;31
80분간 비탈을 걸어 내려왔는데도 길이 나오지 않는다.
길은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걸까.
메울 수 없는 거리를 몸으로 때우며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지난겨울 떨어진 낙엽이 쌓인 비탈,
여기저기 떨어진 나뭇잎을 밟으며 내가 가는 곳을 모르겠기에 스마트폰에서 티맵(T-map)을
켠다.
문득 거창의 금원~기백산을 종주하며 잘못된 이정표로 조난당하기 직전 119 소방대원에게
도움을 받았던 기억도 나고, 영남 알프스 능동~재약~천황산 종주 시 고사리 분교에서 누가
반대로 돌려 논 이정표를 믿었다가 어두워서 내려온 기억을 하며 몸서리를 친다.
짧기만 한 삶에서 고독을 품으면 시간의 무게가 더한다.
친구의 등 굽은 모습엔 쓸쓸함이 배었다.
어쩌면 우리 나이에 뒷모습은 단순해야 옳은 건지도 모르겠다.
휴~힘들다.
경사 60도가 넘는 비탈길은 언제 끝날 것인가.
살짝 불어오는 미풍에 물소리가 실렸다.
자연이 보내는 소리를 들으며 희망이 보이니 힘들었던 마음을 억지로 다스린다.
16;16
하산을 시작한지 두시간만에 귓전으로 낭랑한 물소리가 잡힌다.
뒤엉킨 국수나무를 헤치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 흐르는 계곡으로 내려가 손과 얼굴을 닦는다.
쳐졌던 어깨가 조금씩 올라간다.
여느 산을 가던지 늘 산행의 즐거움이 충만하였는데 오늘 각화산 산행은 즐거움이 아니고
고통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의 틈에서 잠시 새어나온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가파른 길을 내려왔더니 엉덩이가 아프다.
오늘은 얼굴이 아니라 엉덩이가 더 먼저 늙은 모양이다.
얼굴의 주름이야 체중을 신경 쓰지 않고 며칠만 잘 먹으면 대충 없어지지만,
없는 길을 만들며 내려왔더니 엉덩이 근육의 양이 빠르게 줄어든 걸까.
염천(炎天)에 지친 하루,
길 없어 지친 하루,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몸과 마음이 지쳤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서산으로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 뜨는 해 보고 출발했지만
지는 해는 보지 못하겠다.
더 이상 볼 것 없는 각화산 산행을 마치며 하루를 다 살지 못했는데 천년을 산 거 같이
지루하고도 아득했던 하루를 생각한다.
16;55
힘들고 거친 산행이 끝났다.
물 한 모금으로 소진 되었던 원기를 회복하며 무사히 산행이 끝남을 자축한다.
바른 몸가짐은 바른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이 비뚫어진 상태에서 몸가짐이 바로 될 리가 없기에 각화사 중들이 내눈에 띄지
않는 게 다행이다.
그들에게 "몸을 닦는 것은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달렸다"는 수신재정기심(修身在正其心)
이라는 대목을 가르쳐주고 싶다.
21;00
별(星)도 별로 뜨지 않은 밤,
하늘에 뜬 조각달이 외롭고 맑다.
태백산 바람에 살랑대는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내려온다.
해발 700m에 위치한 숙소의 창문을 여니 모기 한 마리 들어오지 않고 들고양이들이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울음소리만 들린다.
먹고사느라 바뻤기도 했지만, 허겁지겁 살아온 세월,
술 한잔을 하며 여유있게 밤하늘을 바라보니 조각달이 뜬 풍경도 기쁨이 된다.
이젠 사랑 받기를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인생이 되고자 환한 미소를 흘리며 단숨에 술잔을 비운다.
2018. 7. 18. 각화산 산행을 마치고 태백산 휴양림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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