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63 백두대간 봉화 옥돌봉(玉石山 1244m)의 얌체족 뻐꾸기

김흥만 2018. 6. 29. 20:44


2018.  6.  21.

강원도에서 구불구불 끊어질듯 하다가 이어지는 구절양장(九折羊腸) 길은 많이 사라졌다.

영월까지는 거의 직선화된 고속도로와 전용도로 덕으로 차속에서 몸이 많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청령포를 지나 도리기재를 오르는 길은 한 굽이 두 굽이를 돌아도 여전히 꼬불꼬불

거리며 외로 돌고 바로 돌기도 하며 끊일락 말락 끝없이 이어지기에 몸도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


     <       도래기재


          넘네넘네 고개를 넘네.

          꼬불꼬불 고개를 넘네.

          새도 쉬어 넘는 고갯길,

          거친 숨 한 번 몰아쉬지도 않고

          잘도 넘네.


          첩첩산중 벗어날까,

          굽이굽이를 돌아도 첩첩산중일세.


          귀양살이 가는 것도 아닌데

          하늘만 한 뼘 남은 도래기재

          올려다보니 고개만 아프구나.


          뻐꾸기 구슬피 우는 고갯길

          민초들 간데없이 사라지고

          객만 혼자 고갯마루에서 떠돈다.                            석천    >


10;35

월 김삿갓면을 지나 오른 고개,

이 고개를 도래기재라 했다.


본래 이곳에 조선시대 역(驛)이 있어서 도역마을(導驛里)이라 불리다가 도리기재로 변음

됐다고 설명을 하는데 이 고개만 넘어서면 춘양목(春陽木)으로 유명한 봉화 춘양면이다.


초록으로 물든 숲에서 땅나리의 붉은색은 색의 이단자이다.

태양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성이 아니고 땅을 바라보며 땅바라기만을 고집하는 땅나리는

여름 백합과의 대명사이다.


나리는 방향성의 꽃이다.

땅을 보면 땅나리, 옆을 보면 중나리,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로 구분하는데,

그중에서도 솜털이 많으면 털중나리, 반점이 많으면 말나리 또는 하늘 말나리, 섬말나리

잎이 솔잎 모양이면 솔나리, 분홍색이면 참나리, 노란색이면 각시 원추리 등 다양하다.


여기서 백합(白合)이라는 말은 흰색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알뿌리를 이루는 비늘조각이

100개 정도 모여 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냥 '나리'라고 하는 게 편하다.


백두대간 길에서 18코스에 해당하는 옥돌봉 코스를 결정하며 매우 가슴이 설렜지.

웅혼(雄渾)한 기상을 가진 백두대간 길을 걸으며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옥돌봉 입구에서 내가 수십년간 올랐던 백두대간 길의 산봉우리를 떠올린다.

남한의 최북단에 있는 고성의 향로봉(1287m)엘 1977년 예비군 동원훈련 때 올랐으니

이때가 내가 백두대간에 있는 산에 오르기 시작한 첫 산이 되겠다.


산줄기 지도를 펼쳐 백두대간을 보며 잠시 눈을 감는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설악산(1708m 4회), 점봉산(1426m), 갈전곡봉(1196m), 오대산(1565m 3회), 동대산(1434m),

약수산(1306m), 노인봉(1339m 2회), 곤신봉(1135m), 두리봉(1033m), 청옥산(1407m), 두타산

(1357m), 매봉산(1306m), 금대봉(1420m 3회), 함백산(1572m), 태백산(1567m 8회),


문수봉(1515m), 소백산 국망봉(1421m 3회), 비로봉(1440m 3회), 연화봉(1395m 3회),

주흘산(1108m), 조령산(1028m), 속리산 문장대(1032m 3회)와 천왕봉(1058m), 민주지산

(1242m), 덕유산(1614m 6회), 장안산(1237m), 백운산(1279m), 노고단(1503m), 지리산(1915m

2회)엘 올랐다.


오늘 봉화 옥돌봉(1244m)에 오르며 대간길을 체게적으로 종주하진 못했어도 틈틈이

60번이나 올랐던 30여 개의 봉우리를 떠올리며 산에서의 흘러간 세월을 반추(反芻)한다.


오늘은 늘 차고 다니던 고도계를 두고 폰에 설치한 고도계앱을 보기로 했다.

위성 GPS에서 나타나는 숫자와 위치기반 시설에서 제공하는 높이가 제각기 다르다.


지도상에 도리기재의 높이는 754m라 했는데 제각기 표시되니 정확한 높이는 모르겠다. 


굵은 활엽수 사이로 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지금 달력상의 계절은 분명 여름이다.

여름이 눈에 보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은 봄바람이다.

29도로 예보된 온도와 관계없이 1,000m에 가까워지며 온도는 23도를 가리킨다.


숲속 길을 조금 걸으니 나무데크 길이 나온다.

눈에 띄는 기암도 없고 기운찬 조망을 자랑하는 봉우리도 보이지 않고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모퉁이를 도니 수백 개의 산악회 리본이 펄럭거리고 비로소 고산지대의 상쾌함이 밀려온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총연장 약 1,400여km로

대한민국 동식물의 약 80%가 숨 쉬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늘진 숲속은 온통 푸른 녹색으로 물들고 밤꽃냄새와 섞인 솔향기가 그윽하다.


경사가 거의 없는 숲길은 산새들의 노래소리가 들리고 등산객은 우리만 있어 번잡스럽지 않다.

산길은 외길이라 헷갈릴 염려가 없고 산 길가엔 '모시대'가 극성을 피운다.


가을에 뿌리를 캐서 굽거나 날것으로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고 하는데 눈 질환을 앓고 있는

나에겐 매우 반가운 식물이다.



초록으로 물든 나무와 숲은 무슨 기법으로 그린 자연의 그림일까.


수채화처럼 가볍지도, 유화처럼 두껍지도 않은 동양화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내 짧은 지식으론 설명을 할 수가 없기에 그냥 묵묵히 묵언수행(默言修行)을 하며 올라야겠다.


뻐꾸기가 구슬피 운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카메라를 향하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나뭇잎에 숨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흔한 망원렌즈도 없다.

또한 무거운 망원렌즈를 메고 다니기도 싫다.


그러기에 인터넷에서 새 소리를 찾아 반복하여 듣는다.

웩♬~하며 고라니가 소리를 지르고 솔부엉이는 "우후 우후" 하며 소리를 낸다.

지금 비명 소리를 내지르는 새는 무슨 새일까.


친구들이 보청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벌써 몇 명은 보청기를 착용했다.

나는 다행히 청각이 좋아 새소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거다.


동박새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방울새 소리가 들린다.

새를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 아니니 그냥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자연에서 즐기리라.


11;00

주능선의 활엽수림 아래로 형성된 철쭉터널을 지난다.

6월의 꽃향기가 다 지워지도록 철쭉꽃이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신록의 숲은 점점 짙어지며 본격적인 여름을 향해 나아간다.


옥돌봉은 철쭉으로 유명한 산이다.

5월 중하순에 피었을 철쭉을 6월 하순에 찾는 나의 어리석음은 여전하다.

5월15일까지 산불방지 입산통제기간에 해당되어 미루다가 실기(失氣)를 하는 우(愚)를

범했다.


키가 큰 철쭉나무의 분홍빛 꽃이 하늘을 뒤덮는 장관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정상을 향한다.


봄꽃이 사라진 숲그늘에 '산씀바귀' 보인다.


정상세포를 보호하고 암세포를 억제한다는 씀바귀는 비타민E 성분의 토코페롤이 웬만한

약초의 14배 이상으로 뛰어나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최근 알려졌으며, 여름더위를 물리쳐

주는 신비의 식물로 토끼도 좋아한다고 한다.



바람이 분다.

봉화는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방이 철원이고 그 다음으로 봉화가 춥다.

봉화에서도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춘양은 봉화군 평균보다 기온이 3~4도 낮다고 한다.


백두대간의 능선을 타며 시원하게 뚫린 조망을 기대했지만 사방은 수목으로 막혔다.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될 정도로 울창하고 빽빽하게 들어선 수목 사이로 햇살이

겨우 비껴든다.


계곡이 없어 청량한 물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대신 들리는 청아한 산새 노랫소리,

그리고 숲을 파고드는 바람소리에 세속에서 꽉 막혔던 귀가 뚫리고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시끄럽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선거가 끝났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

천심은 바람이고 그 바람이 잠자면 천심도 자는 거다.

어느 한순간 훅 불고 사라지는 게 바람이라지만 성난 바람은 세상을 파괴하고 삼키기도 한다.


정치는 바람이다.

폭풍보다 세게 들이닥친 바람은 선거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바꾸고 있다.

그 바람을 이용한 얌체족이 꽤나 많이 당선되어 목민관(牧民官)이 되었다.


그들이 과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한 번이라도 잃어봤을까.

군대 가기 싫어서 발가락을 자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발가락이 잘린 사람도 도지사에 당선

되었으니 수년 전 손가락을 자르고도 도지사에 당선되었다가 비리로 중도하차한 전임

도지사도 생각이 난다.


세금을 내지 못한 무능력자, 불법을 저질러 전과가 화려한 자, 병역을 이행하지 못한 자,

부동산 투기자, 논문 표절자들이 당선되어 판치는 세상을 보려니 가슴이 답답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이라,

우직한 소나무는 입과 눈 그리고 귀를 막고 닫으라 하는데 세상일이 그리 쉬운가.


세상에 떠도는 부의(浮議)가 많으면 많을수록 다수 의견인 중론(衆論)과 이치에 맞는

정론(正論)이 다르기에 올바르게 판단하는 건 오직 나 자신의 몫이다.

고대 아테네에서도 공직자를 선출할 때 군복무, 납세 등을 꼼꼼하게 따졌다.


헌법에서 정한 국민의 4대 의무는 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근로의 의무, 교육의 의무로

시험문제에도 단골로 출제되던 문항이다.

결과는 예상한대로 국민의 4대 의무를 외면한 사람들 승리로 끝났다.


의무를 저버린 사람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지 못한 사람들이

공직에서 얼마나 큰폐해를 끼칠까 마음이 우울해진다.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민주국가에서 계속 반복되는 추함이 언제나 없어질까.


얌체란 염치의 작은 말 얌치에서 온 순수 우리말이다.

얌치는 마음이 결백하여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서 얌체라 할 때는 얌치

즉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 이익만 따져서 행동하는 사람을

말하며,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요즘같은 선거철엔

통하지 않는다.


뻐꾸기가 운다.

산에서도 얌체족은 있다.


뻐꾸기는 휘파람새, 산솔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의 둥지에 자기 알을 낳고,

주인의 알을 슬그머니 밀어내고 탁란(托卵)을 한다.


뻐꾸기 알은 오목눈이나 개개비의 알보다 2~3일 일찍 부화하는데 남의 둥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일찍 부화하는 거다.


부화하면 오목눈이나 개개비, 휘파람새의 알을 밀어내고, 오목눈이가 부화해서 나오면

새끼를 밀어내 어미의 먹이를 독차지해서 살아남는다.

뻐꾸기 어미 새는 자기가 직접 먹이를 물어다 기르지 않고 새끼가 들을 수 있도록 계속

신호만 보낸다.

다 커서 자기에게로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이런 탁란조로는 뻐꾸기, 두견새,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등이 있는데,

두견새는 휘파람새를 숙주(宿主)로 삼기에 휘파람새가 알을 낳고 잠깐 집을 비우면 둥지로

침입해 알을 낳는다.


부화한 탁란조 새끼는 주인집 새끼와 유사한 울음소리를 내고,

먼저 부화한 새끼들은 나중에 부화한 주인집 알을 밀어내고, 새끼 또한 밀어내서 죽인다.

개개비나 휘파람새는 비슷한 청색의 알을 자기 알로 알고 포란하여 새끼를 끝까지

기른다.


자연의 얌체족과 인간의 얌체족이 다를 게 무엇인가.

남에게 병역의 짐을 지우고, 자기 자신은 그 시간에 공부를 하여 출세가도를 달리고,

자기 돈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으니 세금 아까운줄 모르고 무상(無償)이라는 미명으로

세금을 마구 낭비하는 사람들이 목민관(牧民官)이 되었으니 이 나라는 장차 어떻게 될까.



산을 가로질러 올러가며 횡(橫)자를 생각한다.

지도를 보면 횡적선은 동과 서를 가르는 가로선이고, 남과 북을 가르는 종적선은 세로이다.

즉 횡선은 적도에 평행하게 그어진 위도를 말하며 종선은 북국과 남극을 연결하는 경도를

말하는 것이다.


횡(橫)이란 말이 재미있다.

가로 횡자는 많은 뜻을 가졌는데 느닷없이 재물이 생기면 횡재(橫財)요,

제멋대로 사납게 굴면 횡포(橫暴)요, 남의 재물을 제 것으로 챙기면 횡령(橫領)이요,

별안간 불행이 닥치면 횡액(橫厄), 나쁜 일이 계속 번지면 횡행(橫行)이다.


조금 전 걸었던 길이 가로라면 지금 오르는 길은 세로이다.

세로는 방위로 따지면 남(南)과 북(北)을 잇는 선이며 귀천(貴賤)을 따질 때는 상하(上下)를

가르는 선이다.


최근 선거는 불법, 무질서, 비정상이 판치는 선거였다.

아무리 얌체족이라 해도 선거에서 이기면 금세 귀한 신분이 되는 참 우스운 세상이다.


얌체란 순수 우리말이다,

얼마 전 '구라'라는 말을 썼더니 일본말을 쓴다고 비아냥거린다.

사실 이야기나 거짓말을 뜻하는 구라라는 말은 우리나라 순수한 말이다.


또한 에누리, 야코라는 말도 우리나라 말이다.

당구를 치며 가끔 사투리나 언어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을 하기도 한다.


꾸기 뻐꾹 대는 소리를 들으며 얌체라는 말이 생각났으니 백두대간이라는 장엄한

대자연에서도 속물근성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고사목이 산의 공간을 비우지 않았다.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서있음은 아직도 이승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을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산속의 나무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느닷없이 오기도 하고 천천히 오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두 부류로 나뉘는데, 비우는 사람과 못 비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비우지 못하면 불행하고 비우면 행복하다는데 오늘도 비우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내 삶을

슬그머니 조명한다.


험한 산길은 끝내 나오지 않고,

양의 창자처럼 이리저리 꾸부러진 구곡양장(九曲羊腸)의 부드러운 산길엔 초록이 넘실댄다.


'큰까치수염'에도 햇살이 들었다.

햇살은 따갑지만 얼굴에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다.


더위를 의식해 모자를 쓰지 않아서 시원한 탓도 있겠지만 옥돌봉의 바람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산 능선은 거대하다.

백두대간의 꿈틀거림은 하나의 장벽이다.

한 가닥 산등성이를 향해 난 길은 초록이 넘쳐 그 길 위에 선 우리도 초록물이 들었다.


12;18

옥돌봉 정상(1244m)엘 올랐다.


해발 1244m나 되는 고봉이라 시야에 어느 하나 거칠 것 없는 일망무제(一望無際)를

기대했고, 사방팔방에서 작은 산봉우리들이 옥돌봉을 향해 조아리며 기어오르는 조망처를 

기대하였지만 사방은 나무로 꽉 찼고 손바닥만 한 하늘만 살짝 보인다. 


여느 산이든 정상에 올라서면 능선은 겹선으로 변신하고, 깊은 골짜기와 벼랑양옆은

아슬아슬해야 제격인데 옥돌봉 정상은 밋밋한 바위 위에 정상석만 덩그러니 서있다.


정상석에 손을 대니 까만 돌은 나에게 새 힘을 불어넣어주며 웅크렸던 마음에 활력소를

만들어준다.


그래도 수십 수백 개의 산악회 리본은 이 산이 큰 산임을 느끼게 한다.


중첩된 산릉이 보이지 않으면 안 보이는 대로, 큰 바위가 위엄 있게 서있는 정상이 아니라도

백두대간에 있는 옥석산(옥돌봉 玉石山)의 정상에 올랐으니 가슴은 벅차오른다.


안내판에는 예전에 올랐던 청옥산과 소백산, 다음에 오르고 싶은 선달산과 문수산,

그리고 7월에 오를 각화산의 위치를 그렸다. 


정상의 공터로 나온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산 그림은 수묵화인가, 수채화이겠지.


       <      옥돌봉


             하늘엔 뭉게구름 몽실 거리고

             산허리를 감았던 박무 사라졌다.


             산이 구름을 감싸는 건지

             구름이 산을 휘두르다 하늘도 올라갔으니

             이 산에 놀던 환인(桓因)도

             선계(仙界)로 등선(登仙)했겠다.


            그 틈에 아리따운 선녀가

             지상계(地上界)로 내려오면

             날개옷이나 감춰야겠다.                                           석천   >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인이 이곳에 머물다 간 곳이라 하여 옥석산(玉石山), 즉 옥돌봉인데

여기서 올라온 곳의 반대로 내려가면 탄산약수로 유명한 오전약수탕이 있다.


환인(桓因)은 환웅의 아버지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가 세상을 다스릴 것을 허락하며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었다는 한민족의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신(神)이다.


천부인은 고대 사회에서 지배계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神物)로 청동검, 청동방울,

청동거울의 세 가지로 해석을 한다.


일행은 내려가고  정상석 위에 폰을 올려놓고 고도계를 확인하니 Gps로 측정한 1244m가

지도와 일치한다.

산에 올라갈 때마다 지도와 고도계가 일치하니 않았는데 오랜만에 일치한다.


오늘같이 맑고 기압이 일정한데도 기압으로 잰 높이는 1221m, 위치 기반 고도는 1224m요,

Gps 측정 1244m이니 앞으론 Gps로 표시된 높이를 참고해야겠다.


12;55

하산을 하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30여m 를 들어서니 오름길에 놓쳤던 철쭉나무가 나온다.

산림청에서 보호수로 지정된 철쭉을 보며 잠시 숙연한 마음을 가진다.


밑둥치의 둘레가 105cm가 된다는 철쭉고목의 안내판이 외롭다.


나이가 562년이 넘은 철쭉이 하늘을 향해 몸부림치는 모습은 분명 신목(神木)의 신비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답답한 마음을 용틀임하는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읍소를 하는 가 보다.


철쭉고목의 굵은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뻗고 거대한 밑둥치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둘레 105cm, 높이 5m의 거대한 철쭉을 보며 수년 전 만났던 가지산의 450년 된 철쭉을

떠올린다.


나는 운이 좋아 우리나라 1, 2번째의 수령을 자랑하는 철쭉나무를 오늘로 다 보게 되는 행운을

갖지만, 작년 2017년 3월 23일 광양 백운산을 오르며 아쉽게도 백운산 철쭉은 놓쳤다.


여담이지만 460년이 넘은 가지산 철쭉은 천연기념물 제462호로,

정선 반론산의 200살 철쭉은 천연기념물 제348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이곳 철쭉은 2006년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니 562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연유를 모르겠다.


이 나무의 수령이 562년이라,

문득 삼국유사에서 전하던 신라 성덕왕 때 강릉으로 부임하던 태수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에 대한 헌화가가 생각난다.


높은 절벽에 예쁘게 핀 철쭉꽃을 가지고 싶은 수로부인에게 그곳을 염소를 몰고 지나던

노인이 절벽에 올라 꺾어다가 수로부인에게 철쭉꽃을 바치며,


"질 붉은 바위가에 손에 잡은 염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여 받자오리다. 라며 노인은 헌화가(獻花歌)를 불렀다는데

그만큼 우리민족의 정서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노거수(老巨樹)를 바라보며 잠시 숙연해진다.


고목(古木)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며칠 전 썼던 졸필 로또복권이 생각난다.


              <         로또복권


                  아무리 힘들었어도 어제가 갔고,

                  너무 아름다운 날이라도 오늘이 가면

                  내일 또한 분명히 온다.


                  무위(無爲)의 자연에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만물이 변해가는 건 세상의 순리지.


                  고작 100년도 안 되는 인생길,

                  겨우 6부 능선을 넘으려는 황혼 길에서

                  너무 힘들게 살지 말자라고 넋두리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간간히 비를 뿌려대던 먹구름이

                  검단산 너머로 물러간다.


                  하늘도 흐리다가 맑고

                  맑다가도 거센 바람과 함께

                  몰려드는 먹구름에 비실대기도 하는데,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댈 시간도 없는 게 인생길이지.


                  맞다 때로는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이고

                  없던 길도 다시 열리는 게 인생길이라,


                 혹시나 당첨될까,

                 로또복권 가게 앞을 기웃거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2018. 6. 13일 아침  석천  >


잠깐 나온 하늘에서 태양빛이 하염없이 쏟아지고, 신록이 어우러진 모습이 환상적이다.


아래는 짙은 녹색, 위에는 연한 연둣빛의 신록,

봄과 여름이 만나는 풍광에 취해 가던 길을 잠시 멈춘다.


노루궁뎅이버섯이 잘 자라고 있다.

스틱으로 툭툭 쳐도 미동(微動)을 하지 않고 참나무에 단단히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주요성분인 베타클루칸이 면역조절과 신경보호 작용을 해주기에 임상실험 결과 항암효과가

크다고 알려졌다.

고혈압, 당뇨 등에 효과가 좋다니 환자들은 눈여겨볼만하다.


13;27

여기서 20여 분만 내려가면 출발했던 도래기재가 나온다.

잠시 복식호흡을 하며 숨을 몰아쉰다.


13;52

옥돌봉 산행은 끝났다.

고개 넘어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을 꼭 들리라는 친구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저 생태이동통로를 지나면 봉화 춘양의 우구치가 나온다.


우구치는 골짜기 모양이 소의 입모양을 닮아서 우구치(牛口峙)라 불린다는데,

도래기재 등 이름이 재미있다.


14;12

백두대간 국립수목원의 햇살이 따갑다.

세계최초의 산림종자를 교정하는 시드볼트는 지하 40m 이하의 벙커에 200만종의 산림종자를

보관하고, 핵폭탄이 떨어져도 시설의 보존이 가능하다고 하니 가히 상상이 된다.


세계최초의 농업종자시설은 노르웨이 빙하 속에 있고, 산림종자시설은 지금 내가 서있는

수목원의 시드볼트가 세계최초라는 설명이 안내되었다.


방향으로 봐선 저 봉우리가 조금 전 올랐던 옥돌봉으로 추측이 된다.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물어도 대답이 시원치 않다.


봉화의 오지에 솟아 있는 옥돌봉,

주변을 압도하는 높이도 아니고, 특별한 산세도 눈에 띄는 특징도 없는 산이었지만

분명히 남다른 의미를 지닌 산이다.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의 한 정점을 이루며 백두대간의

고봉(高峰)들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웅장한 능선을 올려다본다. 

큰 산줄기가 옥돌봉의 발아래 납작 엎드렸으니 백두대간의 위용이 대단하다.



동쪽으로 뻗어나가 문수산을 정점으로 하는 문수지맥도 거대한 꿈틀거림이다.

오른쪽 산봉우리와 능선도 산 그리메를 그리면서 파도가 일렁이는 거대한 초록의 바다가

되었다.


하늘은 산봉을 휘저으며 구름을 흘러내리게 한다.


전기차를 타고 수목원의 제일 꼭대기로 올라간다.


길가 양옆에 심어진 무수한 식물들,

개중에는 아는 식물도 있고 모르는 식물도 있다.


산 옆으로 난 길을 걸으며 초롱꽃을 만난다.


15;00

더위에 지친 백두산 호랑이가 낮잠을 잔다.

소리를 질러 깨울 수도 없다.


방사된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낮잠을 자고 다른 한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숲에는 금은화로 불리는 인동초(忍冬草)가 피었다.

인동덩굴로도 불리는 인동초는 이름 그대로 겨울을 잘 이겨낸다.


염증을 완화시키고 기혈을 순환시키기에 여드름 치료에 좋다고 알려졌다.


인동초를 만나고 만병초(萬病草)도 만난다.

만병초는 지리산, 태백산, 설악산, 백두산 등 영하 20~30도씩 내려가는 추운 산의 꼭대기에

자라는 나무로 실제로는 만병초란 이름과 달리 만병통치약과는 거리가 멀다.


진달래과로 로도톡신이란 마비성 독을 함유한 유독식물이다.


돌나물도 지천이다.

봄에 피는 돌나물이 6월 하순에 피었으니 춘양이 어지간히 춥긴 추운 모양이다.



해는 하루일 다했다고 뉘엿뉘엿 넘어간다.

저녁노을도 남기지 않고 서쪽 산등성이로 숨는다.


20;00

총기 잃은 태양이 숨어 버리면 달과 별이 나오려나.

망경대산 협곡엔 달과 별이 보이지 않고 길고양이 두 마리가 먹이를 달라고 보챈다.


                                               2018.  6.  21.  옥돌봉을 다녀와서

                                                    망경대산 휴양림에서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