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9. 05;00
태백산 산속의 맑은 공기 사이로 빗살무늬 햇볕이 스며든다.
각화산에서 시달렸던 정신과 육체는 하루밤새 회복이 되어 싱싱하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높이는 해발 700m 정도라고 한다.
해발 700m는 인체에 가장 적합한 표교(標高)로 생체 리듬이 좋아질 뿐 아니라,
충분한 혈류 공급으로 젖산과 노폐물 제거에도 효과가 있어 피로 회복이 빠르다고
하는 거다.
태백산 줄기 해발 700m에 있는 숙소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했더니 숙취도 사라졌다.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을 향해 달리다가 만난 기차는 기적소리도 내지 않고
싱겁게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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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의 설렘을 안고 소광리 숲에 가는 길은 산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도 시멘트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교차한다.
자동차는 덜컹거리고 계곡의 좌우로 이어지는 초록의 바다와 우렁찬 개울물 소리는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며 수다를 떤다.
30분 이상 계류에 놓인 다리를 14번이나 건너 소광리숲에 도착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숲인 금강소나무 숲길은 소나무를 보호하고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인
동·식물의 삶터를 보장해주기 위해 반드시 숲 해설가가 동반한다.
1구간 편도 13.5km 7시간이 소요되며, 2구간은 잠정폐쇄되었고,
3구간 왕복 9km 4시간 소요, 3-1구간 왕복 10.48km 5시간 소요, 4구간 9.7km 5시간 소요,
5구간 15km 7시간 소요 등 코스가 다양하지만 전날 각화산에서 고생도 하였기에 90분짜리
실버코스를 택한다.
조선조 숙종 때는 임금의 명으로 황장봉산(黃腸封山)을 하여 관리하였고,
지금은 육중한 철문으로 봉산을 하여 사전허가를 받은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서울에서 당일 9시 반까지 이곳에 도착하기란 쉽지 않다.
사전에 10시 반 코스를 예약한 덕분에 여유롭게 도착을 하여 오늘 트래킹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는 숲 해설자에게 주목을 한다.
지금부터 자유가 없는 트래킹 코스다.
철문으로 닫힌 숲의 공간은 행동의 제약을 받지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내 사유(思惟)의 공간이 된다.
백두대간의 숲에서는 음(陰)이 앞선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양(陽)이 음(陰)을 누르지만 숲에 들어서면 음(陰)이 앞선다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사상이 생각난다.
음양은 산의 북쪽인 응달과 남쪽의 양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춘추시대에 이르러 풍(風), 우(雨), 회(晦), 명(明)과 함께 천(天)의 6기(六氣) 중 하나로
취급되며, 토(土), 목(木), 금(金), 화(火), 수(水)와 함께 상승과 순환의 법칙을 만든다.
지난 3월 28일 올랐던 모악산에서 후천개벽 사상에 강한 충격을 받아서일까.
계룡산의 정역(正易) 신봉자들은 기위신정(己位新政)이라 했다.
천간의 갑(甲)에서부터 무(戊)까지 선천 5만년이었다면 기(己)에서 계(癸)까지 후천 5만년이
시작된다는데,
기(己)는 음토(陰土)라 내가 죽더라도 수천수만 년 거대하게 자랄 금강송을 지키고 가꿀
심오한 프로젝트에 대한 안내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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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맨발로 다녀도 좋을 산길을 걷는다.
철문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곳은 열린 공간인가, 아님 닫힌 공간일까.
열린 듯 닫힌, 혹은 닫힌 듯 열린 공간인지 혼동이 되며 문득 집의 내 서재가 생각난다.
이야기가 잠시 생태 숲이라는 본질을 벗어나지만,
내 책상아래 공간은 원래부터 컴퓨터 본체를 제외하곤 텅 비었다.
안 쓰는 걸 버리기를 좋아하니 잡동사니가 별로 없기에 수납할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
수납장을 두지 않았다.
우습게도 나이가 드니 눈에 필요한 치료제나 영양제 약병이 늘기 시작한다.
서재 한 공간에 놓으니 제법 많은 약병으로 노년의 티를 내는 거 같아 속도 상하기에
약병을 감추려 수납장을 주문한다.
서가(書架)에 책을 꽂을 때도 즐겨 찾는 책은 책상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하다 보니
읽은 책을 또 읽기도 하고 불과 2m 떨어진 책은 거의 찾지 않기에 다시 재배치를 한다.
아내와 같이 쓰던 서재가 아들부부가 분가를 한 후 단독 서재로 바뀌며 '나만의 방
(a room of one's own)'을 갖게 된 거다.
평소에는 방문을 열어놓지만 백발배 운동을 할 때나 조용히 음악을 듣고 글을 쓸 때는
방문을 닫는다.
방문을 닫으면 오로지 나 혼자만의 공간이다.
황혼의 나이가 되어서야 나만의 공간을 가지니 조명을 은은하게 하고 책을 읽으며
컴퓨터를 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쭉 늘어놓는다.
나만의 공간에선 나의 이야기가 생기고, 하루를 성찰하기도 하며 잠깐 졸기도 한다.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은 물리적인 공간이 트였어도 철문으로 통행을 제한해 자유로운
행동이 금해진 공간이라 문 닫은 서재와 비슷한 사유(思惟)의 공간이 된 거다.
소나무 중의 소나무 백목지왕(百木之王)으로 불리는 금강송에서 흘리는 솔향을 맡으니
여긴 분명 신선(神仙)의 세계다.
등 굽은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곧게 자란 금강소나무엔 기운이 넘친다.
군데군데 수령 200년이 넘어 거북 등을 닮은 소나무 껍질에 눈길이 간다.
'숙은노루오줌'이 제대로 피었다.
먼옛날 이 길을 누가 걸었을까,
숲길을 오르며 화전민과 부보상들의 흔적을 찾는다.
보부상들은 산더미 같은 등짐을 짊어지고 이 숲길을 다녔겠지.
울진에서 나는 해산물을 지고 봉화로, 봉화에서 농산물을 짊어지고 울진으로 가기도 했을
그들의 눈물 섞인 땀방울을 생각한다.
울진의 금강송은 신비롭다.
줄기가 붙은 소나무도 보이고, 워낙 깊은 산속이라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에도
이 숲은 살아남았다.
관계기관에서는 1000만 그루가 넘는 금강소나무를 지키기 위해 민간인 출입을 금했고,
40,151ha로 여의도 면적의 140배나 된다는 숲을 전문가들이 근무하며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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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천읍내 소나무로 지어진 집의 안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봉화산에서 해온 솔가지로 데워진 온돌에서 산후조리를 하였고,
나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에는 솔가지가 끼워졌지.
내가 자라면서 진천 봉화산과 남산의 솔숲은 나의 놀이터가 되었고,
자연학습 시간엔 학교 뒷산에서 송충이를 잡았고,
명절이면 송홧가루로 만든 다식(茶食)을 먹었고,
고등학교 뒷산인 북악산 자락 소나무 숲인 청송당(聽松堂)에서 사색을 즐겼고,
팔이 마비되기 전 한때는 송연묵(松煙墨)으로 간 먹물로 일필휘지할 때도 있었지.
언젠가 세상을 이별하고 칠성신에게 돌아갈 때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칠성판 위에
누워 땅속에 묻히면 내 무덤 주위는 도래솔로 둘러치고 영겁(永劫)의 시간을 소나무와
함께 하겠지.
금강소나무의 230년 나이테를 보며 소나무와 나의 한 세상살이가 생각난다.
1982년 기준 500년이 되었다는 금강소나무 앞에 선다.
높이가 25m이고 나무둘레는 6.18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보호수다.
금강소나무 사이로 하늘이 열렸다.
계류를 흐르는 물소리가 낭랑하고 거대한 소나무앞에 서서 가르침을 받는다.
추사는 세한도(歲寒圖)에서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고 했지만
겨울이 아니더라도 하늘에 둥둥 떠가는 흰 구름을 향해 솟구친 모습에서 신령함과 경외감을
느낀다.
150년 후에 개봉할 타임캡슐엔 금강소나무 생태 숲의 정보와 유전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소나무 사이로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나온 풀꽃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조용히 다가가 '개쑥부쟁이'에게 포커스를 맞추며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나온다.
이 쑥부쟁이도 우리나라 식물 4200종 중에 하나겠다.
쑥부쟁이 사이로 바람의 숨소리 들려온다.
꽃의 향기로운 웃음소리에 닫혔던 마음의 빗장이 열리며 내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행복이다.
각화산이 성(聖)을 가장한 속인(俗人)이 판치는 위선의 세상이라면,
이 길은 속인(俗人)이 걷기만 해도 저절로 성인(聖人)이 되는 별유천지(別有天地)로다.
별유천지에선 아무 것도 가질 필요가 없기에 번뇌, 갈등, 집착 , 원망, 미움 등을 가뿐히
벗어 던지고 모든 것을 비우라는 방하착(放下着)이 우선이다.
세상을 살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왔던 모든 것을 비우라는 방하착 착득거(放下着 着得去),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내려놓아라, 마음에 있는 모두를 그대로 지니고 떠나라"는 말은
인간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교훈인지도 모르겠다.
문득 수행의 욕심으로 마음의 잡초를 없애지 못한 어제 각화사의 젊은 중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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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꽉 찬 숲에 재잘거리며 도랑물이 흐른다.
도랑물가에 핀 '초롱꽃' 한 송이는 정말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나에게 이런 숲은 나만의
서재이고 사유(思惟)의 공간이다.
거대한 소나무를 안고 교감을 한다.
금강산 일대에서 많이 자란다는 금강송, 미인처럼 쭉쭉 뻗어 곧게 자란다고 해서
미인송, 나무껍질이 붉어서 적송, 속이 치밀하고 누렇다 해서 항장목이라,
금강송, 미인송, 황장목, 춘양목 등 참 다양한 이름을 가진 소나무이다.
강원도와 경북 지방에 잘 자라는 금강송은 생육속도가 더디어도 한결같이 나뭇결이 곱고
바르며 속이 붉고, 목질이 치밀하고, 송진이 많아 잘 썩지 않고 단단해 재궁(梓宮)으로도
쓰였으며,
소나무 중에서도 곧고 길게 자라 형질이 우량해 한옥의 제재목으로 많이 사용되고
숭례문이 방화로 소실되었을 때 울진 금강송으로 복원하였다.
해설사는 한 그루에 약 800만 원 정도이며 운송 및 부대비용까지 한 그루당 약 2~3천만 원
이상의 값어치가 된다고 한다.
이 나무에게도 비밀이 있을까, 나무에는 비밀이 없겠지.
나무를 안고 나 자신의 비밀을 나무속에 몰래 숨기면 먼 훗날 기억 속의 추억으로 남으리라.
오늘은 숨을 헐떡이며 고지(高地)를 향해 오르는 게 아니다.
약간 비탈진 고갯길에서 산책을 즐기며 이야기를 듣는 거다.
복잡한 시장 통이나 도심을 걸으면 쉽게 피곤을 느끼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많고 복잡한 곳을 걸을 땐 시각과 청각이 쉬지 않고 정보를 주기에 담지 않으려 해도
나도 모르게 머릿속과 가슴속이 답답해지는데, 여기서는 오직 초록과 소나무에 관한 정보만
들어오기에 마음이 청량해진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어 다니며 제자를 가르친 거로 유명하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 학파를 소요학파(逍遙學派)라고 부른다.
이 학파의 공부 비결은 느리게 걷는 거니 나의 느림의 미학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열정으로 강의를 하는 해설사의 풍모에서 문득 아리스토텔레스의 멋이 풍긴다.
마음은 풍경이고 천천히 걸음은 마음의 풍경을 지니는 방법이라고 '리베카 솔닛'이
'걷기의 인문학'에서 말했지.
산속에서 천천히 걸음은 나에겐 산책(散策)이 아닌 책을 읽으며 걷는 산책(山冊)이다.
금강소나무 숲에서 마음의 여행을 하며, 속도를 선택하면 바보겠지.
이런 곳에서 속도를 선택하면 풍경은 사라지고 삶의 밀도는 현저하게 낮아지기에
해설을 들으며 책을 읽는 마음으로 머릿속에 기억하려 애쓴다.
비탈진 곳에 조금 비틀어졌다고 못난이로 이름 지어진 '못난이소나무'가 공간을 지킨다.
520년이 된 못난이 소나무는 키가 23m이고 둘레가 3.5m나 된다.
저 소나무가 못난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서운하지 않을까.
나무를 포함한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달아 발표되었는데 혹시나 들을까
걱정이 된다.
울진 금강송 군락지는 국내 최대로 2247ha의 면적에 500살이 넘은 보호수 2그루와 350년의
미인송, 200년이 넘은 노송이 8만 그루가 넘는다.
이곳에 사는 금강송의 평균수령은 150년에 이르며 나무 지름이 60cm가 넘는 금강송이 1600
그루가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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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울진삼척에 120명이나 되는 무장공비가 침투하여 많은 희생자가 생겨
화전민을 다 이주시켰다는 동네 주민의 말을 들으며 일정을 끝낸다.
1968. 10. 30~11.2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예하의 124군 소속인 유격대가 울진군, 삼척군,
봉화군, 명주군, 정선군 등지에 120명이 침투하여,
공비 113명 사살, 7명을 생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민간인 32명, 군경(軍警)이 38명이나
전사 하였다.
이들은 군경과 예비군에 의해 쫓기면서 평창의 계방산 자락에서 이승복 어린이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일 년의 반이 후딱 지나갔다.
7월로 달력을 넘기며 지난 반년동안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루었는가를 생각한다.
뭐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이 추억도 남기지 않고 달력이 반이나 넘어 갔기에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1년은 365일, 시간 8760시간, 분은 52만 5600분, 초는 3156만 6000초 중
절반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남은 시간은 무한(無限)이 아니고 유한(有限)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면 죽음을 목전에 둔 거 같아서 싫다.
또한 그 리스트에 얽매여 사는 것도 싫다.
팔목에 찬 시계의 초침이 째깍째깍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시간이 유한(有限)하다면 그냥 특별함 없이 일상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시간을 날짜로 나누어 쓰기도 싫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무한(無限)의 시간 속으로 수렴(收斂)이 되리라.
요즘 전화나 문자로 소식이 들어오면 대부분 나쁜 소식이다.
살면서 수많은 소식을 피할 수가 없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아서인지 세월 쌓인 소식은 대부분 가슴 아프고,
시린 사연에 코끝이 찡해진다.
며칠 전 지인의 담도암 소식이 들어왔고, 지금 나의 7형제 중 여러명이 암투병중이다.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동창의 소식도 들어오고, 요양병원으로 이송되었다는 소식도
들어온다.
살면서 얼마나 더 소중한 것들을 많이 잃어버리려나.
어제라는 하루는 사람 잡는 각화산에서 종일을 헤매었고,
오늘은 걷기만 해도 저절로 성인(聖人)이 되는 소광리 숲속에서 한나절을 보내며 후회와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반성의 시간이 된다.
2018. 7. 19. 울진 소광리 금강소나무 숲에서
석천 흥만 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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