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느림의 미학 30 신의 나라 태백산<1,567m>

김흥만 2017. 3. 21. 20:32


2009.  2.  5.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영월을 지난지 한 시간,

만항치에 눈이 많이 쌓였다. 

싸리재로 갈 걸 차가 두 번이나 핸들조작이 안돼 흔들리며 사고가 날뻔한다.

 

함백산 등산로 입구로 들어서니,

허리까지 빠지는 눈에 스패츠를 착용해도 러셀이 안된 등산로라 자신이 없어

그대로 화방재로 향한다.

 

몇 년전 러셀이 안된 선자령에 올랐다. 

그 때도 허리까지 눈이 차있었고 등산로 안내판마져 눈에 삼켜져 있어 고생을 하며

사고개연성까지도 있었던 순간이 생각난다. 

 

평일 오전 10시 인데도 단체 관광버스 등 유일사 입구가 엄청 소란스럽다.

그래도 유일사 코스가 태백산 종주코스로는 가장 무난해 이곳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도상거리는 약 11.1km로 이곳에서 천제단까지 4.1km, 천제단에서 당골까지 7km이니

제법 걸을 만한 거리이다.

 

태백이 워낙 가물어 급수제한을 할 정도 인데 지난주에 큰 눈이 와 지금 아니면 태백의

눈을 못 볼 거 같아 오늘 서둘러 왔다.

 

11;40

500m를 올라오니 낙엽송들의 기개가 예사롭지 않다.

 

삼국시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어 민족의 영산이라는 태백산(해발1567m)은 

높이에 비해 산세는 그리 험하지 않아 편히 다녀오기에 적합한 산이다.

 

출발고도가 890m이니 700m 정도만 고도를 높이면 정상에 설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백두대간 분수령에 우뚝 솟은 산답게 울창한 산림은 경관이 수려하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과 어우러진 주위조망은 매우 뛰어나며 우선 산세가 장쾌하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백두산의 장쾌함에도 지지않을 것 같다. 

 

봄이면 진달래, 산철쭉, 여름엔 울창한 수목과 계곡사이를 흐르는 맑은계류가 좋다.

또한 가을단풍도 절경이거니와, 그 중에서도 추운겨울이 되면 흰 눈으로 뒤덥히니 사계절

모두 사랑받는 산이지만, 난 단연코 겨울의 눈덮인 태백산이 최고라고 주장한다.

 

왜냐고?

태백산 최고의 아름다움은 한겨울 주목과 어우러진 눈꽃이기 때문이다.

흰 눈 덮인 백두대간의 장쾌한 능선에 무리지어 자라고 있는 주목이 피워낸 눈꽃은 태백산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신비로움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니 잘 조림된 낙엽송 아래 조릿대가 눈에 거의 파묻혔다.

스틱으로 깊이를 재니 약 60cm 정도 된다.

 

이 조릿대는 복조리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 좋은 나무이다.

천천히 임도를 올라가니 첫 번째 주목나무가 우릴 반긴다.

 

태백산엔 주목나무가 3,928본이 있다.

수령은 30년에서 920년까지로 평균수명이 약 200년 정도이며, 키는1~14m정도 크기이며,

이 나무는 식용, 관상용, 공업용, 약용, 건축재, 가구재 등 다용도 쓰이며 잎과 과실은

이뇨제로 쓰이기도 하는데 지금은 사용이 엄격하다.

 

속이 붉어 주목( 朱木)이라 하며, 워낙 단단해 오래 사는 모양이다.

대암산에서 근무시 주목나무를 작업할 때  톱이 먹히지 않아, 물에 3일 간 담갔다가

작업했다는 목공병의 말을 들기억이 난다.

군대에서는 벌써 그때부터 주목의 우수성을 알아  씨를 채집하고 가지를 꺾어 식재를 했다.

참고로 이 주목은 꺾꽂이도 가능하다.

 

주목은 학술명으로 'taxus'라고 한다.

이는 활(taos)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유래하는데, 영국의 '로빈후드'가 주목으로  만든

활로 의적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임금 앞에 나갈 때 손에 들고 가던 패가 주목으로 만들어졌고, 재질이 단단하고

빛깔이 붉기 때문에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주목을 으뜸가는 지위를 뜻하는 一位(이치이)라고 부른다.

영국이나 아일랜드등지에서는 묘지 앞에 심기도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 많은 주목은

강원도 정선 두위봉에 1,400년 된 주목나무가 있다.

 

12;30

천제단 1.7km 안내판이 있다.

 

이어 가파른 능선을 20여 분 오르니 아름드리 주목 두 그루가 장승처럼 우릴 반긴다.

 

고도를 높이면서 눈은 점점 더 많아진다.

곱게 늙어 품위 있는 주목들이 자주 눈에 뛴다.

화방재 넘어 아까 지나왔던 함백산(1,577m)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와!  크리스마스 트리다!

 

구상나무에 눈꽃이 피어 멋있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었다.

이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나무로 솔방울이 위로 열리는 특징이 있으며, 외국에서 

개량시켜 최고의 인기를 끈다.

 

눈을 맞으며 천제단으로 올라선다.

 

세찬바람 속에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천제단을 자세히 볼 수 없을 정도로 볼이 얼얼하며 정신이 하나도 없다.

 

천제단에서의 제는 삼국사기 때부터라 한다.

'원근에서 다투어 태백신에게 제사하는데 반드시 태백신사에 소를 바쳐야 하며, 소원하는 바를

빌고는 곧 일어나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 가야한다.

만약 돌아다보면 소가 아깝다는 뜻이 되어 신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를 퇴우라 하는데 이 소가 신사아래 득시글거려 산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잡아먹어도

아무 탈이 없었다.'는 전설도 있다.

 

13;30

태백산의 최정상인 장군봉(1567m)에 올랐다.

바람이 세차고 하늘은 간간히 눈을 뿌려댄다.

 

세찬바람에 노출된 얼굴이 완전 홍당무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동상에 걸릴 거같아 망경사로 급히 내려선다.

이곳 구간은 태백산 철쭉의 제일경이지만 지금은 나무 밖에 볼 수 없다.

 

망경사로 내려와 단종비각 앞에서 얼굴을 녹이려니 단체들이 버너를 피운 게 영 눈에 거슬린다.

남대문도 화재로 타버렸고, 이 단종 비각도 억울하게 죽어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의

슬픈 사연이 있는 비각인데 조심을 해야겠지.


동해의 용왕신이 거주한다는 망경사 용정(龍井)은 말랐다.

개천절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낼 때 제수로 쓰이는 이 샘물은 한국의 명수 100선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는데 심각한 가뭄으로 오늘은 맛볼 수 없다. 

 

'문수봉'길로 들어선다.

 

눈길은 러셀되어 문수봉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주목나무 옆을 스틱으로 찔러보니 눈 깊이가 약 60cm 정도이다.

 

주목나무 속이 빨갛다.

 

수백 년 된 자작나무가 바람에 슬피 운다.

 

갈림길이다. 

눈은 그치고 바람도 약해졌는데, 바로 호식총이 있는 반재로 내려갈까, 문수봉으로 올라갈까

망설이다 문수봉(1,517m) 방향으로 고도를 높인다.

 

문수봉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또 군데군데 거제수나무도 보인다.

거제수나무는 낙엽이 지는 키가 큰 나무이며, 자작나무, 박달나무, 오리나무와 같이 자작나무 과에

속한다.

자작나무는 줄기가 흰색으로 백화(白樺)라 불리며, 거제수나무는 줄기가 희면서 약간 누런빛을

띠어 황화(黃樺)라 불린다.

 

樺(자작나무 화)는 촛불이니, 자작나무는 하얀촛불, 거제수나무는 노란촛불인 셈이다.

왜 촛불이라는 의미가 있을까?

나무껍질이 붓글씨 쓰는 미륭지처럼 얇게 갈라지며, 기름성분이 많아 예로부터 불을 밝히는데

많이 써왔기 때문이다.

 

거제수나무는 다소 이색적으로 들리는데 '거재수(去災水)'라는 의미로 쓰였다.

즉, 수재, 화재 등 재앙을 없애는 물이 풍부한 나무라는 뜻이다.

지금 남녘에선 한창 고로쇠 수액을 채취한다. 

이 자작나무와 거제수나무에서도 수액을 채취하는데, 특히 곡우(穀雨)에 이 수액을 마시면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한다. 

 

문수봉 오르막길에 돌 의자가 있는데, 자연석인지 인공적으로 만든 건지 묘하게 생겨 잘 모르겠다.

 

15;00

문수봉은 정상부 전체가 큼직하고 깨끗한 바윗덩이가 많은 너덜지대인데 특이한 돌탑이

여러 개 있어 태백산의 명물이다.

 

치악산의 돌탑 3개보다도 더 단단하게 쌓았고,

멀리 천제단과 맑은 날 울릉도가 조망된다는 망경사가 눈구름 속에 조망된다.

 

당골로 가는 길은 제법 가팔라 안전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한다.

갈길은 아직도 4km남았고 한참 내려가니 제당골 낙엽송이 일품이다.

 

'당골'에 눈꽃축제가 한창이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여기까지 꼬박 네 시간 걸렸으니 제법 걸었다.


등산로가 부드러워 무릎과 발목이 전혀 이상 없다.

지난번 태백산 종주산행을 못해 아쉬웠는데 너무나 후련하다.

 

                                   2009.  2.  5.   태백산에서   석천  흥만  졸필